커피 한잔 하듯 들르는 '동네 변호사' 사무실

김은지 기자 2012. 5. 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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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경기도 의정부 시내에 들어서 변호사 사무실을 찾으며 운전을 하던 취재진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무릇 변호사 사무실은 법원·검찰청 근처에 있기 마련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내비게이션은 법원·검찰청을 지나쳐 시장을 가리켰다. 의정부 제일시장 한구석, 1층에 약국이 있는 건물의 2·3층에 '동변 이미연'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맞은편에는 건어물 가게·생활용품 가게 따위가 보였다. 지난 2월 개원한 '동네 변호사' 사무실이다.

자기를 '동변(동네 변호사)'이라고 소개하는 이미연씨(31)는 사법연수원 41기로 올해 연수원을 수료했다. 성폭행범을 '때려잡는' 검사를 꿈꾸며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연수원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변했다. 검찰 같은 조직 생활 자체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연수원 생활을 거듭할수록 동네에서 사람들과 수다 떨고, 같이 분노하고, 도움을 주는 게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시작할까' 고민하다 고향인 의정부로 눈을 돌렸다. 가족과 친구가 있고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는 곳!

ⓒ김흥구 카페와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연 이미연 변호사(왼쪽)와 동생 이세나씨(오른쪽). '서민을 위한 동네 밀착형 변호사'를 내걸었다.

2층은 카페이고, 3층은 변호사 사무실이다. 변호사 사무실에다 카페를 차린 이유는 누구나 찾아오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커피 한잔 하러 카페를 가듯, 편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한 로펌을 방문하면서 이씨의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동료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서초동의 한 대형 로펌을 들어가는데 자기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는 "변호사인 내가 이 정도면 보통 사람에게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얼마나 높을까 곱씹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변호사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다고 느껴지는 게 아닐까 되묻다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사무실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 도구로 커피를 선택했다.

동네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서면 커피 향부터 난다. 3층 변호사 사무실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2층 카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은 이씨의 동생 이세나씨(28)이다. 자매가 같이 출자해 카페와 변호사 사무실을 함께 열었다.

동네 변호사의 '첫 손님'은 동네 할머니였다. 지나가다 간판이 보여서 들어왔다는 한 독거노인은 전 재산과 마찬가지인 집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해 있었다. 500만원 중 300만원을 받지 못한 것. 집주인이 노인에게 엉터리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생긴 일이었다. 문제는 소송을 할 경우 드는 비용이 떼인 돈만큼이라는 사실.

첫 손님은 보증금 떼인 할머니

ⓒ동네변호사 제공 동네변호사는 의정부 제일시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답답해하는 할머니를 위해 이씨는 먼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송 절차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고지하자, 험한 말을 쏟아내던 집주인은 다음 날 바로 돈을 보냈다. 고맙다며 다시 찾아온 노인의 손에는 골뱅이와 화장품 그리고 수임료가 쥐어져 있었다. '서민을 위한 동네 밀착형 동네 변호사'라고 내건 기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상담료는 30분에 3만원이다. 처음에는 2~3시간씩 상담을 하고도 상담료를 받지 못한 때도 많았다. 변호사 사무실에 흔히 있는 사무장·비서와 같은 인력 없이 이씨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다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실컷 상담하고도 상담료 이야기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의뢰인을 그냥 돌려보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입구에 상담료가 얼마인지를 써붙여 놓았다. 전화도 이씨가 직접 받는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변호사 바꿔달라'고 하는 의뢰인도 많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이제는 대응 노하우도 슬슬 생겼다. 인력을 더 뽑을 계획은 없다. 사람을 고용하기 위해 수임을 많이 하기보다는, 적당히 일하고 자기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게 이씨의 마음이다.

"대형 로펌에 들어간 동료 변호사들은 돈은 많이 벌지만 정말 일이 많다. 한 번에 사건 30개씩 맡는 동료들을 보면 그 돈도 적다 싶을 정도다. 반면 나는 한 번에 소송을 4~5개 정도 맡는다. 커피 한잔 할 여유가 있어서 행복하다."

여성 인권과 동물권 분야 소송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씨는 현재 성폭행 사건을 여럿 맡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법률 조력인(수사·재판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국가가 지정한 국선 변호인 제도로 지난 3월부터 시작되었다)으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공부하느라 들인 돈 많을 텐데' '그래도 변호사인데' 하는 세간의 우려와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씨 자신이 '변호사'라는 직업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변호사 업무라는 것을 법률 지식을 기반으로 동네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 여기면, '집에 반찬값 낼 정도는' 벌면서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직업이란다. 이씨는 '가늘고 길게 가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나이 들어 시장 한구석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민들과 일상을 나누는 할머니 변호사가 되겠다는 포부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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