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변한다] (1) 승효상이 설계한 '퇴촌 주택


집은 사는(買) 것인가, 사는(住) 곳인가. 재산 증식 수단에 가까웠던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갑갑한 아파트 탈출을 꿈꾸거나 작지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집을 소망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단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집, '사는 맛' 돋워주는 집이 늘어간다.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우리 시대 집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주는 집과 건축가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 시대 한국의 집은 편리함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장비와 빵빵한 냉·난방 장치를 탑재한 채. 편리함이 주거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면서 정작 집 자체는 숨 쉴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대표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승효상 (60·이로재 대표)씨는 이런 한국 주택의 조급함을 달래는 행보를 보여온 인물이다. '수졸당', '수백당' 등 한국적인 공간 구성을 접목한 주택 작품으로 '채움보다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자신의 건축철학 '빈자(貧者)의 미학'을 실천해왔다. 그가 다시 "편리한 집이 과연 좋은 집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지난해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설계한 단독 주택 '퇴촌 주택'을 통해서다. 이 집은 재즈피아니스트 박준오(31)씨가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연습실을 겸한 주택이다.
9일 이 집을 찾았다. 연면적 165㎡(50평)로 대저택은 아니었지만 엇비슷한 전원주택과 농가 사이에서, 제 개성을 오롯이 새긴 집이었다.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하얀 사각 박스 7개가 흩어져 배치된 형태다. 집 규모에 비해 동선이 길다. 박스 하나하나가 독립된 방(房)을 구성한다. 집 전체로 보면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뉜다. 주방·침실 등으로 쓰이는 5개의 박스는 실내가 연결돼 있고, 다른 박스 하나는 정자 같은 다목적 공간으로, 나머지 한 박스는 피아노 연습실 겸 침실이다. 다른 방에 갈 때 '한 집 안'인데도 신발 신고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안채에서 행랑채로 가려면 신을 신어야 하는 한옥처럼.
승씨는 이 집을 "반(反)기능적 집, 기분 좋은 불편함이 스며 있는 집"이라 설명했다. "방과 방 사이를 될 수 있으면 떨어뜨렸다. 방을 이리저리 거닐며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다. 불편함이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맑게 해 결과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편리한 집이 인간을 나태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승효상식 반기(反旗)'인 셈이다. "집을 짓는 것은 삶의 시스템, 즉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건축관이 투영돼 있다.
직선이 빚어내는 실루엣으로 집의 겉 인상은 심플하고 현대적이다. 하지만 공간 구성은 한옥에서 비롯됐다. 승씨는 방의 쓰임에 주목했다. "한국 집은 안방, 건넌방, 문간방처럼 위치에 따라 방이 구성됐다. 쓰임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방에 요를 깔면 침실이 되고 서탁(書卓)을 두면 공부방이 되는 식으로. 반면 서양 집은 침실, 주방, 거실처럼 미리 공간 구성을 정해 놓고 쓴다."
이 집의 방은 한옥처럼 다른 용도로 바뀔 수 있다. 예컨대 정자처럼 마당에 독립돼 있는 방은 손님방이 됐다가 공부방이 됐다가 거실이 될 수도 있다. 건축가는 거주자의 의지에 따라 쓰임이 바뀌는 한국 주택의 '창조적 기능'을 이 건물로 실현하려 했다고 한다.
승씨는 "현대적인 방, 나아가 한국 주택 구조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이 집은 가족이 모여 사는 공동 공간인 동시에, 방 자체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개개의 사생활이 존중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거의 모든 방에 화장실이 딸렸다. "방 하나하나가 독립된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1인 주거가 늘어나는데 정작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창조적 주택은 부족하다"며 "주택이 변화하는 개인의 삶의 패턴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서다"라고 했다. "방 하나로도 완결되는 건축"을 이 집에 담은 이유다.
실제 사용자에겐 이 '불편함'과 '독립성'이 어떻게 다가갈까. 집주인 박씨는 "처음엔 집이 좀 차갑지 않나 했다. 시간이 가니 집이 생각할 여유를 주더라. 잡념이 들지 않는 절간 같아 좋다"고 했다. 그의 연주실은 순백색으로 꾸며져 음표 하나 없는 깨끗한 오선지 같았다. 박씨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현대 음악가 필립 글래스의 작품에 자신의 집을 비유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복잡한 글래스의 선율처럼 이 집도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한 듯하다." 이성적인 건축가와 감성적인 건축주는 이 집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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