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빌딩 건축 붐
미 중부와 서부를 잇는 인구 300만의 도시 시카고는 세계 초고층 건축의 메카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카고가 그런 건 아니었다. 1871년 발생한 대화재로 도시 전체가 한순간 잿더미로 변한 그 자리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높이 16층 모나드낙이 들어서면서 현대판 바벨탑 신화는 시작됐다. 그리고 현재 세계 각국은 자국 건설기술 자랑과 경제번영, 관광수요 증대 등을 이유로 앞 다투어 초고층 빌딩 건설에 뛰어들고 있다. 1956년 미국 유명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꿈의 '1마일 빌딩(528층, 1600m)'은 지난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킹덤홀딩이 사우디 제다에 높이 1마일짜리 킹덤타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실화됐다. 이 건물은 추후 높이 1000m로 축소됐지만 완공만 되면 인류 건축사를 뒤바꿀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고층 건축 시장에 자존심을 걸고 나섰다. 현재 국내에는 초고층 빌딩이 총 9곳 들어설 예정이다. 초고층 빌딩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현대 도시공학 기술의 결정체다. 최첨단 IT기술이 모아진 초고층 빌딩은 동시 수용인구만 2만~3만명에 이르는 작은 도시(Compact City)라는 점에서 도시와 건축물의 전통적 개념마저 무너질 날도 머지않았다.
"더 높이…더 높이…하늘을 향해"한국은 지금 마천루 경쟁 중
"높이 1000m 빌딩 현실로"…국내 9곳 100여 층 건물 건설 추진
1. 잠실 롯데월드타워2. 부산 월드비즈니스센터3. 용산 랜드마크 빌딩4. 부산 해운대 엘시티타워5. 부산 월드비즈니스센터

6. 여의도 파크원7. 부산 해운대 제니스8.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9. 여의도 IFC10. 도곡동 타워팰리스 3차 15. 63빌딩※순위는 사업인허가 받은 건물 기준

초고층 빌딩, 누가 어디에 짓고 있나
롯데월드타워 지상 500m에 전망대 설치부산서만 3곳…인천 ∙ 용산서도 추진중
초고층 건축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건설사는 물론 서울, 부산, 인천 등 대도시 간 경쟁도 볼 만하다. 최근 경기침체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당초 지상 130층 이상 건설을 목표로 하던 프로젝트들이 대거 축소되고 있지만 초고층의 상징인 높이 100층은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움직임이다. 지금대로라면 앞으로 10년 내 국내에 들어서는 100층 이상 건물은 9개. 이 정도면 초고층 건축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모습 잠실 롯데월드타워지난 10월11일 잠실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 건설현장. 100여명의 외국인들이 현장 한켠에 마련된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10여 분간 동영상을 관람한 후 하얀 헬멧을 쓰고 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이들은 공사관계자들의 설명을 듣고는 국내 초고층 기술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들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두바이 버즈칼리파에서 처음 선보인 인공위성을 이용한 추량기술 외에도 초저발열콘크리트, 셀프레벨링(자동수평몰탈) 방식이 사용됐다는 것에 대해 큰 관심을 나타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공식 규모는 지하 6층, 지상 123층, 높이 555m다. 이 빌딩은 지난 1987년 건축계획이 수립됐지만 고도제한 등의 인허가 문제로 마스터플랜이 22번이나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지상 125층 500m에 전망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세계 최고 높이다. 이를 위해 분속 600미터의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장착된다. 이렇게 되면 지상부에서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하는 시간은 1분. 롯데그룹은 총 3조5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되면 연간 5000만명의 관광객 유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주변에 7개 부속건물이 들어선다. 부속건물은 영화관, 10~30대를 위한 패션몰, 유명스포츠 매장, 생활가전매장, 키즈랜드, 음식점, 애비뉴엘 패션 명품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에 위치한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8개 건물의 지하 1~6층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도 특징이다.
초고층으로 지어지는 롯데월드타워는 지상 1층부터 9층까지는 롯데면세점, 헬스케어센터, 식당 등 지원시설이, 11층부터 48층에는 사무실, 52층부터 76층은 오피스텔, 80층부터 110층까지는 6성급 호텔 수준으로 꾸며진 롯데호텔이 입주할 계획이다.

- 1, 2. 잠실 롯데월드타워3. 부산 해운대 엘시티 타워 부산 해운대 엘시티 타워
부산 해운대구 중동 옛 극동호텔 부지 옆 4만9900㎡에 477m 108층 높이로 들어선다. 이 땅은 원래 지난 20년간 국방부 소유 적치장이었는데 부산시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하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현재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 건설사와 청안건설 등 SI(전략적 투자자), 산업은행, 하나은행 등 FI(재무적 투자자) 등 20개사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 (주)엘시티 PFV가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
시행사인 엘시티는 지난 3월 부산시로부터 건축심의를 얻은 데 이어 지난 10월10일 인허가처인 해운대구청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았다.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에는 108층짜리 랜드마크타워와 87층짜리 주거용 건물 2개가 지어진다. 높이 8층 포디움에는 쇼핑몰, 워터파크 등이 있는 사계절 종합레저타운이 들어선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타워는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이르면 오는 12월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만 지역시민단체들이 부산시와 해운대구가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의 방식으로 주거시설을 허용해 민간개발업자에게 이익을 안겨주려 한다며 사업 추진에 반발, 진통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부산 해운대 엘시티 타워

용산 랜드마크 빌딩
용산역 코레일 화물·차량 센터가 있는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800㎡을 정비해 지상 높이 500m, 100층짜리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과 오피스, 호텔, 백화점, 아파트 등을 짓는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다. 그중 핵심인 랜드마크 빌딩은 연면적만 30만5836㎡로 여의도 63빌딩의 두 배나 된다. 당초 이 사업은 지난 2007년 11월 개발사업자가 선정되면서 공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됐지만 시행사 자금난과 경기침체 등이 겹치면서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이유는 비싼 땅값 때문. 전체 땅값 8조원 가운데 시행사가 지급한 돈은 1조원이어서 나머지 땅값을 지불하는 것을 놓고 이견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코레일이 나머지 땅값을 완공시점인 2016년에 받기로 한 데다 시설물 일부를 4조원에 매입하는 조건으로 계약이 변경돼 사업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삼성물산이 시공을 책임진 랜드마크 빌딩은 공사금액만 1조4000억원이다. 이 건물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와 미국 뉴욕타임스 타워 등을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자로 참여한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일대 민간보유 토지를 어떻게 보상해줘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경우에 따라 추가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시행사인 용산역세권개발에서는 "상당수 대기업과 외국 투자자들이 빌딩 매입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며 자금 조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이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선뜻 투자를 결정할 곳이 많겠느냐"며 사업 추진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류 또한 여전하다.

- 용산 랜드마크 빌딩 / 부산 롯데타운 부산 롯데타운, 월드비즈니스센터부산 중앙동 옛 부산시청 부지 내 높이 510m, 107층 규모로 짓는 프로젝트로 지난 2002년 부지 매입과 함께 개발인허가를 따냈다. 시행사인 롯데쇼핑과 롯데호텔은 건물 저층부에는 어린이 놀이시설 등 편의시설 고층부에는 6성급 호텔과 전망대를 건립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짰다. 시행사측은 현재 지하 6층 터파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중 바닥 구조체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해운대구 센텀시티 내 들어서는 월드비즈니스센터는 418m 107층 높이로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해 솔로몬그룹은 지난 2007년 부지매입을 완료했으며 현재 시공사 선정을 준비 중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당초 월드비즈니스센터는 호텔, 오피스 등 업무시설만 들어선 건물로 추진하다가 지난해 12월 주거시설 40% 미만, 업무시설 60% 이상으로 용도가 변경됐다.

- 부산 월드비즈니스센터 뚝섬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
현대차그룹은 현재 서울 뚝섬 삼표레미콘이 임대해 사용 중인 3만2548㎡ 부지에 지하 8층, 지상 110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이 건물을 양재동, 강남역 부근, 계동에 분산돼 있는 전 계열사들을 한데 모아 그룹의 상징물로 키운다는 생각이다. 서울시와 벌이고 있는 인허가 과정도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도시계획 사업 부지의 용도를 변경할 때 사업 시행자에 요구하는 기부채납 대상을 토지뿐만 아니라 건축물 시설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도시계획 조례를 시행키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 그룹입장에서는 도서관, 주민센터, 체육시설 등의 공공시설로 기부채납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최근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결정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자체확인 결과 확정된 사항이 아니었다"면서 "GBC프로젝트는 서울시의 인허가가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개발계획 전체가 뒤바뀔 수 있는 만큼 공식적으로 밝힐 것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상암동 DMC랜드마크타워
133층 규모로 마포구 상암동에 들어설 계획이었던 랜드마크타워는 층수를 100층으로 낮춰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만 3조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교원공제회·대우건설·대림산업·산업은행·우리은행·한국토지신탁 등이 공동으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이라는 2500억원짜리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했다. 공사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사규모 축소를 제안해 검토단계에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를 위해서도 최고층수를 100층은 넘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1. 뚝섬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2. 상암동 DMC랜드마크타워3. 인천 송도 인천타워 인천 송도 인천타워, 청라지구 프로젝트인천 송도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151층 규모의 인천타워는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미 부동산 개발회사 포트만홀딩스와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이 건물은 원래 송도신도시 6, 8공구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금조달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면서 당초 계획했던 층수에서 대폭 낮춘 100층 안팎으로 높이를 재조정하려는 모습이다. 인천 청라지구 국제업무단지에 들어설 103층 규모의 초고층 프로젝트도 지난 2007년 네덜란드 투자펀드 팬지아와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아직까지 공사 추진이 제자리걸음이다.
초고층 빌딩에 적용되는 최첨단 기술
건물 2~3층 높이에 '무게추' 설치각도 90° 유지 위해 인공위성 사용

- 국내 최고층 아파트인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초고층 빌딩 건설 분야에서 국내 건설사들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주요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중국, 인도 등의 추격이 거세지만 공정관리, 시공력 등 최고의 기술을 요하는 초고층 분야는 단연 우리 건설사들이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국내에서는 삼성래미안 등의 주택 사업이 주력이지만 해외에서는 초고층 분야에 특화된 건설사로 유명하다. 사내 별도로 초고층전문부서까지 마련한 삼성건설은 초고층 건물을 시공한 인력만 120여 명에 달한다. 수주한 프로젝트만 해도 현재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기록된 828m의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말레이시아의 명물 페트로나스타워 등 상당하다. 용산역세권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용산 랜드마크타워 역시 이같은 시공력을 인정받아 삼성건설이 최종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밖에도 현대건설은 뚝섬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대림산업 ∙ 대우건설 등은 상암동 DMC랜드마크타워 시공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분야의 기술력은 어디서 좌우될까. 대표적인 것이 내풍, 내진 설계다. 100층 이상인 초고층 건물은 건축시 강풍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가장 큰 난제다. 이 때문에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최대풍속 70m/s의 바람과 진도 7.0 이상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풍, 내진 설계가 적용됐다.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타워 역시 진도 6.0~6.5는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 측량기술 진도 7.0에도 끄떡없는 내진 설계
내풍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 전체가 한 치의 오차 없이 한 몸을 이루느냐에 있다. 강한 바람이 불 때는 강력한 지지대를 바탕으로 건물이 한 몸을 이뤄 수평으로 움직여야지 상중하층부가 제각각 따로따로 놀 경우 구조물 전체가 위험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초고층건물들은 3~4곳에 아웃리거 벨트웰이라는 철골조 벨트를 끼워 넣는데 고난이도를 요하는 기술이다. 또 모든 초고층 건물에는 수평진동을 제어하는 부가감쇠장치가 있다. 이중 하나가 바로 TMD(동조질량감쇠기)라고 불리는 '추'이다. 이 추는 건물이 기우뚱거릴 때 진동방향과 반대로 움직이게 설계하는데 보통 건물 상층부에 장착돼 있다. 지상 70층의 일본 요코하마 랜드마크타워에는 이같은 원리의 600톤짜리 추가 2개나 장착돼 있다. 보통 TMD는 전체 건물 중량의 1% 내외로 건설되기 때문에 높이만 해도 건물 2~3개 층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최근 건설되는 초고층 건물들은 3~4일 만에 1개 층씩을 올리는 게 기본이다. 그래야만 제때 공사를 완료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고층부까지 배관을 통해 콘크리트를 보내야 한다. 초고압 특수 콘크리트 펌프가 동원되는 다이렉트 펌핑 수직 콘크리트 기술은 초고층 건물 시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높은 압력으로 콘크리트를 보내는 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갈과 모래, 시멘트를 잘게 부수는 것까지 포함돼 있다. 그래야만 중간에 막히지 않고 최상층까지 도달할 수 있다. 두바이 버즈 칼리파 이후 지어지는 초고층 건설에는 건물 연직도 관리에 인공위성 측량 시스템까지 동원된다. 가령 잠실 롯데월드타워만 해도 지상 500m까지 오차 없이 연직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3대의 인공위성이 동원된다(그림). 건물 최상층에 위성측량 시스템 수신기를 설치하고 지상에 위치한 상시관측소에 여러 곳과 인공위성이 수시로 데이터를 교환해 건물이 90°도로 곧게 서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만 오차범위를 ±20mm 내로 유지할 수 있다.
얼마나 에너지를 절감시키느냐도 관건이다. 옥상 및 건물 외벽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고 건물 지하에 열교환기를 설치해 지중열을 냉난방으로 활용한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송파대로를 통과하는 광역상수도 배관 내 물을 재활용해 냉난방용으로 활용한다. 지난 9.11테러 이후에는 소방 등 방재시스템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기준이 마련돼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보통 25~30층마다 별도의 피난처(안전구역)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또 여기서 지상1층까지 내려오는 피난용 승강기만 20여대씩 마련하고 있다.
Tip. 국내 초고층 건물 역사
31층 삼일빌딩 국내 초고층 효시
국내에서 초고층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 삼일빌딩이 효시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가장 높았던 빌딩은 남대문 옆에 위치한 국제보험빌딩(25층)과 서소문 한진빌딩(23층) 등이었다. 삼일빌딩은 당시로는 처음으로 대형 H형강을 사용한 건물로 지상 31층으로 지어졌다고 해 삼일로빌딩(현 삼일빌딩)으로 명명됐다.

삼일빌딩은 김수근과 함께 한국 현대 건축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김중업 합동건축사소장이 설계했다. 김중업 소장은 프랑스대사관,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등을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가다. 이후 서울 전역에 도심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롯데호텔, 힐튼호텔(현 밀레니엄힐튼호텔), 삼성생명, 교보빌딩 등이 들어섰다.
그러던 중 국내 초고층건축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1979년 여의도에 신동아그룹이 63빌딩(사진)을 지으면서부터다. 63빌딩은 1987년 당시 아시아 최고 높이로 완공됐는데 미국 SOM와 국내 박춘명건축이 공동으로 설계에 참여했다. SOM은 지금도 세계 유수의 초고층 건물을 시공하고 있는 종합설계엔지니어링 회사로 여의도 LG트윈타워 역시 이 회사가 설계를 담당했다. 63빌딩의 정확한 규모는 지하 3층, 지상 60층이다. 63빌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지하층까지 포함돼서다.
일부에서는 63빌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데는 최고층 60층 위로 있는 첨탑높이까지 포함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복남 선임연구위원은 "현존하는 최고층 빌딩인 버즈 칼리파도 실제 사람이 갈 수 있는 높이는 143층까지고 시행사가 말하는 166층이라는 것은 200m짜리 첨탑 높이까지 포함된 것이며 이같은 관행은 초고층건축계에서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초고층 빌딩과 부동산 시장
초고층 빌딩 지어지면 경기급락한다?…경기여파 탓 건설 중단된 건물 많아

-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 버즈 칼리파 부동산시장 속설 중 하나가 바로 초고층 건물이 지어지면 몇 년 뒤 경기가 급락한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를 가리켜 '초고층 빌딩의 저주'라고 부른다. 이 속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999년 도이체방크의 경제분석가 앤드로 로렌스가 '초고층건물 지표(Skyscraper Index)'라는 개념을 만들면서부터다. 당시 그가 초고층 빌딩의 예로 든 것은 1930년 미국 미국 뉴욕에 319m 77층으로 들어선 크라이슬러 본사와 이듬해 같은 뉴욕에 381m 102층 규모로 건립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공교롭게도 이 두 빌딩이 완공될 시점인 1929년 미국은 사상 유례 없는 대공항에 돌입했다. 그리고 1973년 지금은 테러로 사라진 417m 110층짜리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1974년 시카고의 명물 시어스타워 건립 직후에서 미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장기 침체)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명물 452m 88층짜리 페트로나스타워가 준공되자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금융위기의 광풍이 몰아쳤다. 지난해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828m 160층짜리로 들어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도 역시 부동산 불황에 따른 경기 침체를 피해나가지 못했다. 당초 버즈 두바이로 불렸던 이 건물은 완공 시점 찾아온 금융위기로 공사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못한 두바이정부가 형제 국가인 아부다비 지원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건물명을 아부다비 통치자 이름을 따 버즈 칼리파로 바꿨다는 설이 유력하다. 로렌스는 이같은 사례를 들며 "초고층건물 공사가 시작됐다는 것은 곧이어 나타날 불황의 전조라고 봐도 좋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학계에서는 초고층 빌딩은 대체로 건립기간만 5~10년 걸리는데 대체로 공사계획이 발표되는 시점이나 착공시점은 부동산 시장 호황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다. 경기가 최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실물경기에 후행하는 부동산 시장의 특성상 꼭 초고층 건물 계획이 발표되는 것이다. 또 이들 초고층 빌딩은 랜드마크라는 상징성 때문에 경기가 위축되더라도 침체여파가 덜하며 상승기에는 다른 부동산 상품에 비해 회복속도가 빠르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같은 마천루 저주로 나타나고 있다.

- 삼성건설이 시공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초고층 빌딩, 거품 부동산 경기 대명사
이 때문에 최근 불어닥친 세계 경제침체는 초고층 건물 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상당수 프로젝트가 초기 단계부터 공정이 중단된 것이다. 특히 이번 경제침체는 금융권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이들 마천루 프로젝트에게는 커다란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초고층 건축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건설을 지원하는 자금줄이 무엇보다 절실한데 지금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어 상당수 프로젝트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세계 최고층으로 짓겠다고 밝힌 시카고 스피어(Spire) 빌딩 건설의 경우 금융위기 여파로 수년째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이 빌딩은 150층, 610m 높이로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완공이 목표였다.
두바이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나킬이 시공하는 높이 1㎞의 나킬타워도 모기업인 두바이월드의 자금난으로 지난 2009년 개발이 잠정 중단됐다. 지난 8월 높이 1㎞짜리 빌딩을 지어 두바이 버즈 칼리파를 뛰어넘겠다고 밝힌 사우디 킹덤타워 역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다. 사우디 무역 금융 중심지인 제다시에 들어서는 공사비 12억3000만달러의 이 프로젝트는 경제성은 둘째치고 건립으로 인해 고유한 이슬람 문화가 훼손될 수 있다는 여론의 역풍에 직면해 있다. 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인도 뭄바이의 인디아타워(828m) 역시 글로벌 경기침체로 공사가 수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초고층도시건축학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개발진행 중이거나 이미 건립된 초고층 건물 10곳 중 4곳이 현재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집계됐다. 독일 건설정보업체 '엠포리스'는 지난 2009년 낸 보고서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사가 진행 중인 높이 100m 이상 건물 1431개 가운데 124개가 경제위기로 공사를 중단됐다고 밝혔다.
Tip. 르포-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 현장
2014년 말 지상 123층 외관 마무리
"언제까지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만을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건축물이 있어야만 관심을 끌 수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은 지난 1985년 그룹 신년사를 통해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건축물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물론 신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롯데월드타워(잠실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됐다. 현재 롯데월드타워 공사는 전체 공정의 10%가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 3조5000억원에 공사에 동원되는 인원만 400만명에 이른다.
현재 지하 6층까지 파낸 터파기와 지하층 공사부에 하루 동원된 인부는 500~600명. 공사가 최고조에 이르는 2013년에는 하루 동원되는 인원만 2500~ 3000명으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공정에서 가장 난코스였던 것은 지난 6월4일 진행된 기초 콘크리트 타설 공사. 67만톤에 달하는 건물 전체를 제대로 지탱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가 뒷받침돼야 한다. 가로×세로 72m, 두께 6.5m짜리 매트(MAT)기초에 콘크리트를 쏟아붓기 위해 투입된 콘크리트량은 3만2000m3, 32시간 쉼 없이 진행된 레미콘차량을 일렬로 세우면 53㎞에 달한다. 서울부터 오산까지 가는 거리다. 기초공사만 현재 세계 최고층 건물인 '버즈 칼리파'의 2.5배에 달했다. 이 공사가 세계 건축계 주목을 받은 이유는 롯데건설이 자체 개발한 초저발열공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물이 뒤섞이면서 화학반응으로 자체 발열을 하게 되는데 중심부로 갈수록 온도는 더 뜨겁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시공된 면적에는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 온도차이가 21~25℃나 되기 때문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잠실월드타워 공사를 진두지휘하는 롯데건설 이종산 현장소장(공학박사 ∙ 기술사)은 "1년 동안 자체적으로 수많은 실험을 실시한 끝에 미세 균열을 최대 0.3mm로 낮추는 데 성공했는데 이렇게 넓은 면적에 초발열시멘트로 타설해 성공한 것은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에 이어 두 번째"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4일 기초 콘크리트 공사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를 비롯해 롯데그룹 수뇌부가 대거 참석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연말쯤이면 지하공사를 마무리하고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또 내년 말이면 지상 60층, 2014년 말에는 555m 지상 123층의 외형이 지어질 계획이다.
앞으로 지상부 공사에서 중요한 것은 모듈화공법과 양중관리시스템. 지상에서 공정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한 치 오차도 없이 마무리해 고층부로 올려야만 제때 공사가 마무리될 수 있다. 철근 등 구조물을 지상에서 선조립해 타워크레인으로 고층부로 올리는 것도 중요한 노하우다.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면 1개 층을 짓는 데 지상 70층 이하는 4일, 70층 이상는 3일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윌리엄 페더슨 KPF 부회장
"건물끼리 대화하듯 자연스럽게디자인하는 게 초고층 설계 미학"

"초고층 설계에서 중요한 점은 주변 건물, 지역과 연계성(relationship)입니다. 아무리 높다손 쳐도 주변건물과 어울리지 않고 나 홀로 우뚝 솟아 있다면 그건 건축적으로 볼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그렇듯 고층건물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듯 자연스럽게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윌리엄 페더슨(William Pedersen) KPF 부회장은 초고층 건물 설계는 나무(건물)보다는 숲 전체(지역)를 아우르는 거시적인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건축설계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76년 유진 콘, 웰든 폭스와 함께 이름 한 자씩을 따 KPF를 공동으로 설립한 페더슨 부회장은 초고층 건축 설계에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가 설립한 KPF는 SOM과 함께 세계 초고층 설계 분야를 양분하고 있다. KPF는 홍콩과 중국 상하이에서 가장 높은 국제통상센터(ICC), 상하이 국제금융센터, 일본 도쿄의 명물 롯폰기힐스 등을 설계했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건축물을 설계해 서초동 삼성타운, 태평로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이같은 실적에 힘입어 KPF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성장하는 아시아시장에서 연거푸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다. 서울 잠실에 짓는 잠실 롯데월드타워와 인천 송도 국제비즈니스센터, 뚝섬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등은 KPF가 세계 건축계에 선보일 야심작이다.
시니어 디자인파트너 직을 함께 맡고 있는 페더슨 부회장은 "앞으로 10년 내 한국은 초고층 분야에 가장 많은 노하우를 가진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그 이유로 국내 건설사들의 높은 기술력, 다수의 프로젝트를 꼽았다. 그의 관심사는 초고층 건물의 사회적 통합이다. 그가 말하는 통합이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요소들이 한데 결합된 복합구조물이다. 그는 "주거용, 상업용, 쇼핑몰 등으로 용도를 한정 짓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면서 "런던,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들마다 '도시화'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초고층건물은 이 모든 요소를 한데 묶는 통합형(complex tall building)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산, 건물주의 요구가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모든 건축 디자이너들의 이상은 건물을 어떻게 베이징 스타일, 도쿄 스타일, 서울 스타일로 설계하는지에 있을 겁니다. 동시에 이 건물이 어떤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지도 표현해내야겠죠."
경제성 논란에 대해 그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도시집중화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초고층 외에는 답이 없다"면서 "친환경, 안전성 등의 기술이 발달되면 초고층 빌딩은 새로운 도시건축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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