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전수일 감독 신작 '핑크'

임미나 2011. 10. 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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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황량한 잿빛 갯벌과 갈매기들…. 퇴락한 항구 한켠에 잿빛 양철 지붕의 작은 선술집이 하나 자리해 있다.

이곳을 지키는 여주인 옥련(서갑숙)과 그녀의 정신지체 아들 상국(박현우) 앞에 어느 날 젊은 여자 수진(이승연)이 나타난다.

수진은 다른 할 일이 많은 옥련을 도와 술집을 함께 꾸려나간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진은 이따금씩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움찔 놀라 얼어붙는다.

옥련은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를 지키기 위해 철거 반대 운동에 열심이다. 옥련은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농성을 하다가 급기야 경찰에 끌려간다.

수진을 이따금 놀라게 한 허상도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는데..수진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 늙은 남자는 수진을 뒤에서 안거나 몸을 만지고 어떨 땐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수진은 이 남자의 허상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자 괴로워한다.

전수일 감독의 새 영화 '핑크'는 낡은 항구의 한 선술집을 배경으로 한 두 여자 이야기다.

중년의 여자 옥련은 장애가 있는 아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젊은 여자 수진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분투한다.

영화는 수진의 등장비중이 조금 더 크지만, 그렇다고 수진의 시선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그저 관찰자의 위치에서 수진과 옥련, 상국 등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응시한다.

감독은 전편에서처럼 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고 직접 들고 찍는 방식을 통해 화면에 미세한 떨림을 줬다. 화면의 그런 떨림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의 풍경을 어딘가에서 몰래 엿보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런 방식은 관객이 영화 속 인물의 감정에 몰입되지 않게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이 아무리 처절하다 해도 보고 있는 동안 슬프거나 아픈 감정이 들지 않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대신, 그저 '이런 삶도 있다' '이런 풍경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하다.

영화는 스토리텔링보다는 미장센(화면구도)이 강조돼 있다. 군산의 오래된 내항 주변에서 촬영된 갯벌과 바다, 영화 세트로 지어진 선술집의 쓸쓸한 풍경, 철거 직전 폐가의 창틀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장면 등 구도와 색감이 돋보이는 '그림'들이 많다.

스틸컷들을 모아 사진전을 열어도 될 만큼 장면 하나하나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전수일 감독의 일관된 '작가주의'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배우 서갑숙의 연기도 볼거리다.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대사는 적지만, 전라 노출신과 정사신 등 과감한 연기를 노련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가수 강산에의 출연도 흥미롭다. 강산에는 극 중 관찰자 역할인 '방랑객'으로 서너 차례 등장하는데, 대사가 한 마디밖에 없고 나머지는 노래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인데, 무겁고 건조한 영화에 촉촉한 감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10월 27일 개봉. 상영시간 97분. 청소년관람불가.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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