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나탈레-팔레르모, 그리고 이동국

전성호 2011. 10.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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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일레븐)

'회춘'이란 단어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라이언 킹'의 포효가 K리그를 넘어 또 한 번 월드컵의 꿈을 향해 울리고 있다.

이동국(전북 현대)은 7일 폴란드와의 친선경기와 11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3차전을 앞두고 최근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1년 4개월 만의 재발탁이자 조광래호 출범 이후 첫 대표팀 승선이다.

K리그에선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음에도 줄곧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던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그 모습을 보고 떠오른 두 명이 있다. 바로 세리에A 우디네세의 간판 공격수 디 나탈레와 아르헨티나의 '불운의 골잡이' 팔레르모다.

세리에A의 정복자, 디 나탈레

디 나탈레는 1996년 엠폴리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작은 체구에도 날카로운 골감각과 저돌적 슈팅으로 세리에A 팬들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2004년 우디네세의 유니폼을 입은 뒤로는 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9-2010시즌에는 29골로 독일의 전설적 공격수 비어호프를 넘어 우디네세 공격수 한 시즌 세리에A 최다골 기록으로 득점왕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도 28골로 득점왕 2연패를 달성했다. 통산 454경기에 나서 183골을 넣었고, 우디네세에서만 116골을 넣어 팀의 레전드 자리를 예약했다.

하지만 디 나탈레는 아주리 유니폼만 입으면 유독 작아졌다. 기록은 표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A매치 통산 36경기 10골. 그러나 세리에A 무대에서의 높은 위용을 생각한다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큰 무대에서의 부진은 그에게 '국내용'이란 낙인을 찍었다. 유로 2008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치명적인 승부차기 실축으로 비난받았고, 2009 컨페더레이션스컵에는 무릎 부상으로 결장했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재승선한 디 나탈레는 등번호 10번을 받으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초라했다. 2-3으로 패배한 슬로바키아전 골이 유일했다. 결국 이후로도 자국 리그에서의 빛나는 활약은 '새가슴'이란 비난과 '국내용'이란 한계론에 뒤덮였다.

'불운의 골잡이' 팔레르모

팔레르모라는 공격수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999년 코파 아메리카 콜롬비아전에서 벌어졌다. 당시 대표팀의 떠오르던 공격수였던 팔레르모는 그 경기에서 무려 세 차례의 페널티킥을 실축하며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대회 4경기에서 3골을 넣었던 활약은 잊혀졌고. 이후 팔레르모는 10여 년간 A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했다.

불운은 소속팀에서도 이어졌다. 2000년 리켈메와 함께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를 세계 클럽선수권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듬해 비야레알로 이적해 17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성공적으로 스페인 무대에 안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세레모니 도중 왼발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재활 이후 감각은 예전만 못했고, 결국 레알 베티스,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등을 전전한 끝에 2004년 여름 친정팀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오게 된다.

자국 무대로 돌아온 팔레르모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강인한 정신력 속에 재기에 성공했다. 폭발적 득점력과 헌신적 팀 플레이 능력이 살아났고, 이는 보카 주니어스 클럽 사상 역대 최다골(236골) 기록이란 결실로 이어졌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마라도나 감독은 신예 공격수 라베치 대신 37세의 이 노장 공격수를 대표팀에 승선시키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페널티킥 3연속 실축 이후 11년 만에 찾아온 A매치, 그리고 월드컵 첫 출전의 기회였다. 물론 메시, 이과인 등 쟁쟁한 주전 공격수들 틈바구니에서 팔레르모가 경기에 출장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첫 경기 나이지리아전은 물론 한국전에서도 벤치를 지켰다. 2연승으로 16강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그리스전. 이번에도 선발 출장 명단에서 팔레르모의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후반 34분, 지친 기색을 보이던 디에고 밀리토를 대신해 마라도나 감독은 팔레르모를 투입했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 메시의 슈팅이 골키퍼 맞고 나온 것을 달려들어 그대로 슈팅, 골망을 갈랐다. 37세의 생애 첫 월드컵 무대이자 자신의 A매치 경력의 마지막 순간 득점포를 터뜨렸다. 그리고 팔레르모는 더는 '불운의 공격수'가 아닌,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이동국

이들 못지않게 굴곡 많은 선수 생활을 경험한 이가 있으니 바로 이동국이다. 자국 리그에서만큼은 눈부신 활약을 이어왔지만, 지독하리만큼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부진했다. 특히 월드컵과의 악연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약관의 이동국은 네덜란드전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일약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월드컵이 그에게 준 웃음은 그게 전부였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반쪽짜리 선수'란 평가 속에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고, 4년 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야심 차게 도전했던 잉글랜드 무대에서도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돌아왔다.

절치부심한 그는 2009시즌 K리그에서 생애 첫 득점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12년을 기다려온 무대. 기회도 찾아왔다. 우루과이와의 16강전 후반전, 1-2로 뒤진 후반 42분 이동국은 골문 앞에서 골키퍼와 1:1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다. 그 순간 그는 1994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 서정원의 골을 떠올렸다. 정확하게 밀어 차려고 했다. 하지만 비가 왔던 터라 그라운드도 공도 미끄러웠다. 슈팅은 힘없이 골문으로 굴러갔다. 차라리 강하게 찰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그렇게 12년을 기다려온 월드컵은 이동국에게 잔인한 작별 인사를 건넸고, 다시 한 번 '국내용'이란 비난이 그를 휩쌌다.

그렇게 이동국은 대표팀과 멀어져 갔다. K리그에선 매 경기 불같은 활약을 이어갔지만, 새롭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 감독은 매번 그를 외면했다. 마음을 비웠다. 그러자 그의 발끝에 다시 불이 붙었다. 올 시즌 27경기 동안 16골을 넣은 이동국은 통산 115골로 K리그 역대 최다 골(116골) 기록에 한 골 차로 다가섰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서도 현재 9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타적 플레이에 눈을 떴다. 2009년 득점왕 당시 도움이 한 개도 없던 그는 현재 15도움으로 K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K리그 29년 역사상 최초의 한 시즌 15골-15도움도 달성했다. 활동 반경은 중앙은 물론 측면으로까지 넓어졌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서른세 살이란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업그레이드'. 13년 전 프랑스에서 발견했던 대형 공격수의 가능성이 비로소 실현되고 있는 듯했다.

'라이언킹', 대표팀의 신무기로 날아오를까

당초 조광래 감독은 이동국을 '조커'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조광래호가 추구하는 축구와 맞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달라진 이동국의 플레이는 조 감독의 생각을 바꿨다. 오히려 새로운 신무기의 장착을 구상케 했다.

조 감독은 이동국에 대해 "예전에 봤던 그 경기력이 나온다"고 흡족해 했다. 더불어 "득점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날개 자원과의 호흡을 잘 살린다면 새로운 공격 패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동국을 활용한 또 다른 공격 옵션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성공을 거둔다면 대표팀이 한층 강해지는 것은 물론, 이동국의 브라질행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매번 "대표팀에 대한 미련은 없다"던 이동국이었다. 그러나 자존심과 명예 회복을 향한 의지는 감출 수 없다. 그동안은 디 나탈레와 닮아 있던 그였다. 하지만 비난은 비난일 뿐, 이동국은 팔레르모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능력과 자격이 충분한 공격수다. A매치를 앞두고 이동국의 발끝에 우려보다는 기대와 격려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전성호 기자(spree8@soccerbest11.co.kr)사진=베스트일레븐DB/PA(www.pressassoci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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