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나주 나씨 반계공파 宗婦 '김치 명인' 강순의씨



당진(唐津)에서 나주(羅州) 가는 길은 멀었다. 자개장롱, 이부자리, 미싱을 바리바리 싣고 친정 떠난 트럭이 황톳길을 끝없이 달렸다. 붉은 길은 내앞의 행로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주 나씨 반계공파 25대 종부(宗婦)로의 삶이었다.
고대광실(高臺廣室) 종택에서 세번째 날을 맞았을 때였다. 새벽 4시 시조모께서 담뱃대를 화로에 툭툭 치는 소리에 잠깨는 게 그새 습관이 됐다. 그 아침 시어머니를 따라 비로소 주방에 들어갔다. 거기에 천년 이어진 법도가 있었다.
맨 먼저 장독을 반짝반짝 윤나게 닦고 잿물로 행주를 깨끗이 삶고서야 비로소 밥짓고 나물 무치고 국을 끓일 수 있었다. 하루 세끼 사이사이 세차례씩 윗분들께 새참을 올려야 했다. 제사(祭祀)는 한달에 2~3번씩 어김없이 찾아왔다.
사방 80리 드넓은 문중(門中)땅에서 나는 그렇게 어른을 섬기고 제사를 모시며 서른명 넘는 하인을 거느리는 법을 혼나며 배우고 익혔다. 그러는 사이 42년이 지나갔다. 세월이 유성(流星)처럼 흘러 이제 황혼(黃昏)을 건너고 있다.
살아온 날만큼 풍파도 많았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종택이 팔려 돈많은 이가 사들였다. 역사는 허물고 기둥뿌리만 뽑아갔다고 한다. 고향 떠난 나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에 산다. 그렇다고 가문의 전통까지 무너진 건 아니다.
김치를 매년 2만포기 담다보니 지문이 닳아 없어졌고 배추만 만져도 간이 맞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바란 것은 아니나 그리살다 '국보급 김치명인'이란 소리를 듣게됐으니 이것도 팔자렷다. 그렇다. 공들인 것은 헛됨이 없는 법이다.
◆ 명인의 이면(裏面)
하늘 파랗고 햇빛 따가운 날 종부 강순의(姜順義·65)의 집을 찾았다. 대문 너머 항아리 행렬이 보였다. 마당에도 뒤꼍 땅에도 묻혀 있었다. 속에선 간장, 된장, 김치가 익고 있었다. 뚜껑을 열자 나는 냄새, 그것은 곰삭은 시간이었다.
―종부가 왜 김치의 장인(匠人)이 됐습니까.
"남편(나도균·羅燾均·68)이 하던 사업이 몇차례 실패했어요. 세상물정을 잘 몰랐기 때문일 거예요. 무려 아홉번이나. 재산 다 처분하고도 빚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아홉번이면 많이 망하셨네요.
"그이는 '김삿갓' 같은 분이에요. 처음엔 신광여고에서 사무봤는데 얼마 안 가 그만뒀고 사진기술 배우다 그만뒀고 컴퓨터 사업하다 그만뒀고 오락실 하다 그만뒀어요. 빚쟁이들이 몰려와 집 세간에 빨간 딱지 붙인 게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큰아들이 고3일 때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게 지금도 제일 가슴 아파요."
―이런 얘기 종손이 들으시면 화내시겠는데요.
"그래도 할 수 없죠. 용산구 청파동 살 때였어요. 하도 화가 나서 저 혼자 근처에 집을 얻어 나갔어요. 얼마 뒤 야쿠르트 아줌마로부터 집안 소식을 들었어요. 아이들이 라면만 먹다 몸에 탈이 났다고. 그날로 아이들을 거둬 왔어요."
―가출하는 종부도 있습니까.
"집 나갈 생각을 열번도 넘게 해봤어요. 죽어보려 한강에도 두번 가봤는데 무서워서 그만 뒀어요. 그렇지만 싸움은 딱 두번밖에 안했어요. 마이동풍(馬耳東風)인데 싸워봤자 소용없잖아요. 제가 일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입니다. 할 줄 아는 게 시어머니께 배운 음식 솜씨밖에 없잖아요. 처음엔 폐백, 이바지 음식을 만들었는데 곧장 입소문이 났어요."
―어떻게 만드셨길래요.
"폐백·이바지음식은 경제사정에 따라 가짓수가 달라요. 보통 분들은 9~11가지를 만드는데 여유있는 분들은 20가지가 넘습니다. 제 음식이 호평받은건 육식·해물·떡·한과 같은 것 외에 김치를 포함했기 때문일 겁니다. 백김치, 물김치, 동치미 등을 추가했는데 받아보신 분들이 '이런 김치맛은 육십평생 처음 봤다'며 단골이 되셨어요. 그러면서 김치 주문이 늘었고요."
―폐백·이바지음식을 팔면 생활에 도움은 되던가요.
"그게 보기보다 꽤 비쌉니다. 워낙 양도 많고 재료도 많이 들어가는 데다 만드는 것 자체가 간단치 않거든요. 9~11가지 만들면 보통 300만원이 넘고 20가지 이상 되면 800만원 이상 합니다. 절차가 까다로워 1주일에 두분 이상 주문을 받지 못해요."
―일주일에 1600만원이면 한달에 6400만원이네요?
"생전 처음 제 힘으로 그런 돈을 벌어본 겁니다. 음식 만드는 사이사이 하숙도 쳤고요. 그렇게 해서 빚도 갚고 집도 사고 다시 합치게 된 거죠. 제가 점을 본 적이 있어요. '남편은 손대는 것마다 안되는데 당신은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한다'더군요."
―김치 주문이 느는 것과 유명해지는 건 다른 문젠데요.
"제 김치 맛을 본 분들과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이들이 서울시에 제보를 했대요. 그게 계기가 돼 시민을 상대로 강의하다 TV에 출연하고 '김치명인(名人)'되고 김치 특허내게 됐어요. 대학에서 교수직 제의도 받고 여러 대회에 나가 상도 탔고요."
―대회 출전은 호승심(好勝心)때문인가요.
"누군가 김치대회에서 상을 탔다고 하도 자랑해서 정말 대단한 건 줄로만 알았어요. 맛도 별로였는데…. 그래서 저도 나가본 거죠."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닐 뒀으니 세 아들 모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들은 불평만 해댔는걸요. 남들은 햄이니 참치통조림이니 불고기만 싸오는데 전 김부각이니 콩장이니 무말랭이같은 건강식만 챙겨줬으니까요. 큰아이와 셋째는 아무 말 안했는데 둘째가 불평이 심했어요. '왜 우린 이런 것만 싸주느냐'고. 어느날은 다른 반찬 빼고 김부각만 두봉지를 싸달래요. 그게 같은 반 아이들에게 인기여서 햄과 바꿔먹었다더군요."
―요즘 세대 입맛에도 좀 맞추시지 그러십니까.
"전 퓨전이나 인공적인 거 싫어해요. 번거로워도 양념은 믹서기나 분쇄기 대신 학독에 갈고 화학조미료 대신 마른 멸치를 씁니다. 젓갈은 그늘에서 3~4년 숙성시킨 걸 쓰고 군내와 잡맛 없애는 데는 찹쌀풀을 쓰고요. 설탕은 아예 안 쓰고 소금은 간수를 뺀 걸 2~3년 묵힌 뒤 쓰죠. 김치 익는 속도는 부추로 조절하고요. 그래서 처음 제 김치 맛본 분들은 맛이 없다고 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열광하는 거죠."
◆하늘이 내는 종부
'종부는 하늘이 낸다'고 한다. 엄한 가풍을 지켜야 하며 식솔 거느리고 대소사(大小事) 관장하며 손님 접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종부의 몫이다. 뭇 여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 그게 강순의의 어깨에 얹혀진 게 스물네살 때였다.
―종부 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시이모와 친정 이모가 서울 사직공원 앞에서 아래윗집에 살았어요. 두 분을 통해 중매가 이뤄졌는데 처음 보니 얼굴이 너무 무섭더라고요. 안 만나려했는데 한참 후 연락이 왔어요. 아마 그동안 이 여자 저 여자 다 만나고 다녔을 거예요. 지금은 종부 되길 싫어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부담이라기보단 영광이었죠."
―종가에 가니 어떻던가요.
"제가 5남1녀 중 맏이였는데 혼기(婚期)가 돼서 1년간 친정어머니께 요리 만드는 법이며 이런저런 걸 훈련받았지요. 친정어머니도 음식 솜씨가 꽤 소문난 분이었어요. 시댁에 처음 내려와서 이틀 동안은 시어머니께서 광이며 이런저런 집 구조를 안내해주시죠. 음식은 사흘째 되는 날 아침부터 만듭니다."
―종가엔 사람도 많지요.
"처음에 놀란 건 식솔도, 받들어야 할 제사도 너무 많았다는 거예요. 어른들께는 아침, 점심, 저녁식사 외에 간식도 하루에 세 번씩 내야했고요."
―간식은 뭡니까?
"쑥떡이나 인절미, 때론 얼려놓은 감이나 식혜를 내지요. 간식거리가 없다고 그냥 넘어갈 순 없어요. 하다못해 찰밥이라도 쪄내야합니다. 참, 간식 이야길 하다보니 어란(魚卵)얘길 빼놓을 수 없네. 맛에 따라 어란도 순서가 있어요. 최고로 치는 게 숭어, 둘째가 민어, 그다음이 동태알, 대구알, 청어알 순섭니다. 만드는 게 힘들지만 그만큼 별미죠. 굴비도 실한 놈으로 말려놓았다가 쪄 먹으면 맛있고요."
―그렇게 좋은 음식만 드신 어른들은 장수합니까?
"제 시어머니(문사재)께선 89세까지 사셨고 시조모가 97세, 시증조모께선 103세까지 사셨어요. 장수 집안이지요."
―신혼때는 당연히 어른들에게 혼이 났겠지요.
"종부에겐 일하는 순서가 있어요. 새벽 4시쯤 일어나 항아리 닦고 행주 삶는 게 먼저죠. 밥은 가마솥에 한끼에 두말을 짓고 음식 가짓수도 대단해 장아찌 같은 밑반찬 외에 김치만 20~30가지를 만듭니다. 친정에서 훈련은 받았지만 이 많은 일은 처음이라 처음 1~2년 시어머니께 꾸중을 많이 들었어요."
―음식말고도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
"시누이, 시이모가 아홉 분이었어요. 키가 작다, 인물이 어떻다는 가슴 아픈 얘기를 듣긴 했지요. 제가 시어머니께 입바른 소릴 가끔 하면 우르르 몰려들었어요. '너는 안 늙느냐?' '시어머니가 시키면 된다 안 된다 얘길 하지말라'고."
―충청도 음식과 전라도 음식이 어떻게 다르던가요.
"충청도 음식은 깨끗한 맛이지만 구수하진 않아요. 전라도로 시집와 놀란 게 양념을 아끼지 않고 팍팍 쓰는 거였어요. 젓갈의 종류도 다양했어요. 젓을 끓이고 달이다 보면 한 달이 훌쩍 가지요. 그렇게 정성을 쏟으니 2~3번 데워 먹어도 맛이 변치않는다걸 알게 됐지요."
―옛말에 며느리 신세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말이 맞군요. 남편은 좀 도와주던가요?
"남편은 혼인만 올린 후 떠났어요. 직장이 서울이었으니까요. 추석과 설에만 왔는데 남편만 왔다 하면 애가 생기는 거예요. 종가에서 5년쯤 보내자 시어머니께서 '이제 내 아들 밥 해먹일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며 서울로 가라더군요."
―5년이면 시집살이 오래한 건 아니네요.
"서울로 왔어도 실제로 서울에 산 건 1년에 한달도 안될 겁니다. 이런저런 행사가 있으면 보름이나 한달 전부터 종가로 내려와야했거든요."
―종부 생활이 사십년을 넘었는데 종부의 조건이랄까 그런 게 있을까요.
"몸이 가냘프면 안돼요. 키는 작아도 뼈마디 굵고 우둥퉁해야 힘이 좋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고된 일을 배겨낼 수 없어요. 성격도 둥글둥글해야해요. 남편이 속 많이 썩였지만 전 웬만한 일로 울어본 적이 없어요."
◆ 5가지 비결
종부의 김치에는 다섯가지 특징이 있다. 아무리 묵혀도 군내가 나지 않는다. 맛있게 익고 6개월이 넘으면 발효가 멈춘다. 재료의 초록빛이 마지막까지 살아있다. 오래 묵혀도 물러지지 않는다. 다른 김치보다 유산균이 3배나 많다.
―그래도 요즘엔 날씬한 종부도 많던데.
"그런 사람들 언론매체에서 많이 나오는데 전 '픽' 웃고 말아요. 가짜들이라고. 무슨 종부가 S라인에 주름 하나 없는 공주(公主) 같은 손을 가져요? 일 한번 안해본 손이지. (양손을 내밀며) 제 손이 이렇게 거칠잖아요."
―진짜 지문이 없네? 일해본 손은 이런 모습이군요.
"고무장갑 끼고 하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에요. 위생 때문이라지만 사람 손에서도 효소가 나오거든요. '음식맛은 손맛'이란게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다 과학적 근거가 있어요."
―그런데 오른손 중지(中指)가 왜 이렇습니까.
"하도 김치를 많이 담그다 보니 남편이 마늘 가는 기계를 사다줬어요. 그걸 처음 쓰다 2㎝가량 잘려나갔어요. 손톱도 빠졌는데, 몇년 고생했어요."
―만들 수 있는 김치가 200종류가 넘는다는데 그 조리법을 다 기억합니까.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전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하면서 다 몸에 익은 거죠. 200종류라는 건 그만큼 계절별 재료가 다양하다는 뜻이에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오는 나물이 다 다르잖아요. 옛분들은 자연을 김치에 녹여넣은 겁니다."
―예를 들면?
"봄에는 유채, 냉이, 달래, 취나물, 명이나물, 산취, 곰취 등을 쓰고 여름엔 오이, 양파를 쓰는 식이지요."
―그중에서 제일 자신있는 건?
"고추씨 백김치와 동치미. 고추씨 백김치는 가문의 비전(秘傳)이 있어요. 동치미도 쉬워보이지만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요즘 여름이라 만들지 않지만 겨울에 꼭 맛 보여 드릴게요. 아삭아삭하고 정말 시원해요."
―동치미는 그냥 무 썰어넣고 배(梨) 띄워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희 집안 종(從)가운데 한 명이 간암을 앓았는데 시어머니가 살린 적이 있어요. 동치미와 우거지 무청 삶은 것으로요. 쉬울 것 같지만 사이다 넣는 건 동치미도 아니고 배도 원래 넣는 게 아닙니다. 제 남편이 술고래인데 전 술국을 끓여본 적이 없어요. 동치미 한 그릇이면 되거든요. 몸에 좋은 게 김치지만 그중에서도 물김치와 백김치는 환자(患者)치료도 됩니다."
―몸소 김치를 담그니 다른 김치도 맛보셨겠지요.
"전 밖에서 외식(外食)을 해도 김치는 아예 입에 대지 않아요. 아주 유명한 김치제조업체 공장에 초청받아 가봤다가 놀랐어요. 썩은 마늘 쓰는 걸 본 거예요. 저 같으면 버릴 재료였는데."
―직접 공장을 차리지 그러셨습니까, 홈쇼핑 판매라도 하든가.
"그런 유혹을 꽤 받았지만 살림만 하던 사람이라 공장은… 종부로서의 체면도 있고. 홈쇼핑 판매하자는 제의도 많이 있었어요. 묵은지 열풍이 불었을 땐 묵은지만 공급해달라는 요청도 받았고요. 하지만 양심을 속여가며 돈벌기는 싫더라고요. 홈쇼핑에서 파는 김치 중 최고가가 10㎏에 3만9900원인데 제대로 된 재료를 쓰면 그 단가(單價)에 맞출 수가 없거든요."
―적정가가 얼만데요?
"전 최고의 재료 아니면 쓰지 않거든요. 제맛도 안나고요. 배추는 해남, 고추는 나주, 마늘은 당진, 젓갈은 멸치젓·까나리액젓·새우젓·황석어젓을 써야하는데…적어도 세배는 받아야 할 거예요. 그 가격에 누가 사겠어요. 게다가 김치는 보존기간이 중요하거든요."
―보존기간이라뇨?
"예를 들어 백김치는 3개월 이상 두면 안돼요. 보쌈김치 같은 것은 1주일 내에 드셔야하고요. 그때그때 만들어 먹지 않으면 진정한 김치가 아닙니다."
◆ 일본을 경계하라
음식업계는 요지경세상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누구는 하루 세끼를 전부 음식점에서 시켜다먹는 사람인데 한식(韓食)세계화의 대명사처럼 둔갑했다. 그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그 얘기로 넘어가자 종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대 비법이라는 게 꽤 특이하던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나요.
"제가 전에는 그 비법을 남김없이 가르쳐드렸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애써 가르쳐준 제자 몇 때문에요. 제게 몇달 배워선 '자기네 친정어머니께 배웠다'고 떠들고 다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나주 나씨 종가에서 내려온 맛을 배웠다'고 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요? 돌아가신 시어머니 뵐 면목이 없어요."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요.
"난생 처음 소송까지 했어요. 화병에 시달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들더군요. 예전에 그런 말 있잖아요. 청자 만드는 장인이 기술 가르쳐주지 않고 죽었다고. 전 처음엔 그 장인이 속 좁은 사람인 줄만 알았어요. 막상 제가 당해보니 실감이 가더라고요. 산업정보 유출이란 말 있잖아요, 음식도 마찬가집니다. 기술, 경험을 존중해주지 않으면 누가 애써 그걸 개발하고 전수하겠어요."
―○가 한식의 대가로 둔갑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는데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그리 정직하지 못해서야.
"그이 이야기 저도 알아요. 이 세계가 원래 그래요. 돈쓰고 뒤에서 남 험담하고. 말하다 보면 끝이 없을 겁니다."
―그래도 종부의 홈페이지를 보니 생각있는 제자들이 해원(解怨)의 글을 올려놓았던데.
"그게 한가닥 위안이라면 위안이지요."
―종부가 이리 화가 나셨으니 우리 김치의 위기입니다.
"김치는 저희 세대가 없어지면 정말 위기를 맞을 것 같아요. 지금 주부들이나 젊은 여성들은 김치 자체를 많이 먹지 않아요. 애써 배워도 두 포기 만들어서 몇달을 먹는다니 할 말이 없지요. 김치는 한 포기 익히는 것과 5~6포기 익히는 게 다르거든요. 일본도 경계해야해요."
―일본의 '기무치'는 사이비로 판명난 거 아닌가요?
"제 제자 중에 40대 일본 남성이 있어요. 정말 무섭게 공부를 하고 있어요. 벌써 8년째래요. 아마 제게 오기 전에 이름난 김치 장인에게도 배웠겠죠. 김치 공부하러 다니는 이들 사이에 저는 마지막 코스로 통하거든요."
―그럼 하다못해 큰며느리에게라도 가르쳐야되는 것 아닌가요.
"하하! 그 아이에게 가르치려 했지요. 그런데 말로만 배우겠데요, 그렇게 해선 안 되는데…. 얼마전에 아이를 낳았으니 돌이나 지나야 배우겠지요."
―요즘도 김치를 많이 담급니까.
"많이 담그지요. 김장 때면 배추 1000포기, 백김치 1000포기, 알타리·갓·파·석박지 100단씩에 동치미는 무 스무단을 담그니까. 그렇게 만들어서 다 남 퍼주는 게 일이에요. 제가 원래 손이 크거든요."
―나주 종택 찾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큰 집 팔고 100평쯤 되는 집 한 채가 있는데 관리를 못하고 있어요. 비각(碑閣)도 열 개가 넘지만 수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 제대로 못하고 있고요.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 생각이 나요.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께선 누가 족보 훔쳐갈까 봐 방문 앞에 칼을 갖다놓고 주무실 정도로 가문을 지키려 하셨거든요."
―종부의 말씀 듣다보니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가 찹쌀 동동주도 잘 만들어요. 문 기자님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종부들이 점점 사라지는데 2세, 3세로 넘어가면 우리 고유의 맛이 사라질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교육에 신경쓰지 않으면 전통 김치의 맛이 사라질 겁니다. 제가 철없는 아이들 때문에 욱한 적도 있지만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노하우를 꼭 가르쳐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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