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52) "보라! 조혼의 해독!.. 어린 신부의 남편 모살"

김영철 디지틀뉴스부 편집위원 입력 2011. 8. 15. 03:22 수정 2011. 8. 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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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는 1932년 1월 10일자 1면 '시평'에서, "조선에는 특수한 범죄란 자가 성(性)을 중심으로 두어가지 잇스니, 하나는 묘령기의 출가한 여성의 남편 모살(謀殺) 죄…"라고 지적했다. 꽃다운 나이 여성이 남편을 죽이는 범죄가 조선에 특이하게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925년 1월 23일자 사회면엔 '보라! 조혼(早婚)의 해독! 11세의 본부 교살(本父絞殺)'이란 큼지막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5살 먹은 신부가 11살 신랑이 잠든 틈을 타 목졸라 죽였다는, '엽기적'인 기사였다. 기사는 말미에 "…장차 엇지될지는 모르나 사회의 일반은 이러한 일이 생김은 조혼의 폐혜라 하야 조혼제도를 저주한다더라"고 밝혔다. 그 며칠 전엔 어린 신부(17)가 '남편(25)을 보면 범가티 무서워'하다, 물에 양잿물을 타 죽이려했다는 기사도 실렸다.(1925년 1월 17일자) '빈발하는 본부 독살, 18세의 소부가 독살기도'(1935년 2월 2일자),'조혼의 죄? 소부 남편 밥에 치독(置毒)'(1938년 12월 10일자) 같은 기사가 그치지 않았으니, '남편 모살'이 '조선에 특수한 범죄'라 할 만했다.

이는 자식을 어려서 혼인시킨 데서 온 대표적 폐해였다. 조혼이 빚은 또 하나의 폐해는 자살이었다. 개성 송도고보생 박수복(20)은 어려서 결혼했지만 마음에 없는 아내와 이혼하려 했다. 그러나 완고한 부모가 반대하자 비관해 양잿물을 마셨다. 조선일보는 '박수복의 사(死)는 강제조혼의 폐해에 헤매이며, 다수 청년남녀의 원한을 한데 뭉쳐 완고한 머리를 깨우친 죽음'이라고 지적했다.(1926년 1월 31일자) '조혼녀 음독자살'(1926년 7월 27일자), '백만장자의 3대독자 자살, 조혼과 연애로 생긴 일'(1931년 11월 7일자) 같은 기사가 비일비재했다.

조선일보는 창간 초기 '미성년자에게 조혼을 금하라'는 논설을 싣고(1920년 6월 4일자), "장건완전한 후손을 얻고, 장래 문호융성과 민족발육을 원하거든, 조혼을 금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백년 내려온 풍습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조혼의 관습을 타파하자'(1925년 12월 25일자), '조혼의 악습을 타파하자'(1926년 2월 21일자),'조혼의 폐해'(1934년 12월 26일자) 같은 비슷한 사설과 논설을 툭하면 지면에 실어야 했다.

심지어 '어린이 차지'난에 '조혼하게 되면 큰 인물이 못됩니다'란 제목 아래, "일즉 장가 들고 시집 가게되면…나희 젊은 청년인 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잇게 된다"며 위협(?)하기도 했다.(1931년 9월 12일자) 기독교계 중등학교 교장들이 모여, 결혼한 남녀생도의 '입학 거절'을 결의하기도(1933년 8월 2일자) 하는 등 노력한 결과인지, '조혼풍의 대폭 퇴각'이라는 제목 아래, "지난해 경성 시내에서 결혼한 사람의 9할이 적령기에 결혼한 호현상을 보였다"고 전하기도 했다.(1936년 4월 18일자) 그러나 2년 뒤 '조혼의 폐해' 사설(1938년 5월13일자)이 재등장한 것을 보면, 뿌리가 너무도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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