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6주년 버려진 '독립운동 유적'
정부·지자체 무관심 속 사적지 1391곳 멸실·훼손
[로컬세계]
신간회는 모텔 들어서고 독립선언 장소는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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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조재만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북 영천의 백학학원. 1921년 설립돼 지역 민족교육의 산실이던 이곳은 관리가 되지 않아 현재는 무너지기 직전이다. 사진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1945년 광복 이후 66년이 지났지만 국내 항일독립유적지가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방치·훼손돼 시급한 보호노력이 요구된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1577곳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조사한 결과 1391곳(88%)이 멸실·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의 가희동 자택은 3·1운동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28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 장소와 절차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곳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사라지고 필지가 분할된 상태로 청남한의원과 전통음식점, 개인 주택 등이 들어서 있다. 기념 표석만이 덩그러니 남아 손병희 선생의 집터였다는 사실만을 알려주고 있다.
근현대사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신간회는 1927년 좌우익 세력이 합작해 결성한 일제강점기 최대 항일민족운동 단체다. 신간회 창립본부가 있던 서울 종로구 관수동 143번지에는 나이스코리아 빌딩과 모텔 등이 들어서 있고 1929년 본격적인 민족적 정치투쟁을 모색할 당시 본부가 있던 종로2가 46번지는 현재 도로로 편입돼 버스정류장이 들어섰다.
경기 용인시 양지면에는 을사5적 중 하나인 송병준 별저가 있었다. 양지 별저는 의병들의 주요 타격지 중 하나로 독립운동가 남태희 선생은 1907년 8월24일 이곳을 습격해 일진회를 비롯한 친일세력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이곳의 건축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은 상태며 최근 부지를 소유한 온누리 세계선교센터는 새 건물을 신축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구한말 전 국민이 참여한 경제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의 시발점이 된 북후정도 사라진 유적지 중 하나다. 북후정이 위치했던 대구시 중구 태평로 2가에는 대구시민회관이 들어섰고 국채보상운동기념비만 세워졌다.
경남 진주시 수정동 43-1 일대에 세워졌던 시원 여학교는 일제 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폐교처분을 받은 첫 기독교재단 학교로 현재 멸실돼 그 원형을 알아볼 수 없다.
1927년 경북 영천시 화남면에 설립된 백학학원은 이육사를 비롯한 조재만, 이원대, 이진영 등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해 경북지역 민족교육의 산실로 불렸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폐가로 마당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있고 건축폐기물 등이 주변에 방치돼 있어 흉물로 남았다.
지자체가 이들 문화재를 보호할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옛 사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은 문화재로 지정되기 불과 한 달 전에 서울시가 주변건물 증축을 허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의회 이정찬 의원(민주·양천 2)과 김인수 백범사상실천연합 대표는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1년 3월 강북삼성병원 건축허가는 서울시의 직무유기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2001년 2월 삼성병원 증축 심의에서 경교장이 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시 비지정 문화재라는 이유로 참석인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의원은 "서울시가 종로구청에 문화재 주변 건축허가 지침위반을 통보하고 조치지시 공문을 발송했지만 이에 대한 종로구 처리결과는 문서로 남아 있지 않다"고 허가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교장은 2005년 서울시 문화재에서 국가 사적으로 승격됐으며 시는 뒤늦게 복원사업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항일독립유적지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이기에 미국의 국립공원청과 같이 문화유적지를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현행 문화재청과 보훈처 등 각 기관이 별도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개선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통합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라진 역사의 현장… 민족 자긍심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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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의 옛 사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 바로 뒤에 강북삼성병원이 들어서 있다. 경교장의 내·외부 원형 복원과 주변환경 정비가 요청되고 있다.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 따르면 독립운동 사적지 중 522곳(33%)은 변형, 9곳(0.5%)은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원형이 보존되거나 복원된 곳은 각 125곳(8%)과 62곳(4%)에 불과했다. 6.25 사적지도 335곳 가운데 139곳(41%)이 변형, 62곳(19%)이 멸실, 11곳(3%)이 훼손된 것으로 조사됐다. 원형이 보존되거나 복원된 곳은 121곳(36%)과 2곳(1%)뿐이었다.
이처럼 관리가 미흡한 건 해방 이후 6.25 전쟁 등을 겪으며 상당수 유적이 파괴됐고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해 방치됐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운동 유적지는 여운형의 생가나 태화관처럼 건물이 대부분이어서 도시개발과 함께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학계에 따르면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독립운동 유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나 지자체마다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내세워 생가를 복원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현장 정밀조사를 통해 독립운동의 현장을 보존하기 보다는 경관 좋은 곳에 표석이나 기념비를 세우는 등 성급하게 기념사업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독립운동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나 대부분 3.1절, 광복절 등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돼있어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다"며 "예산에 있어서도 다른 사업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조 총장은 "이를 해결하려면 역사 인식을 개선하고 독립운동 유적은 물론 일제침략사도 함께 조명해 우리역사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독립운동 유적지 관리를 위해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전국에 있는 모든 독립운동 유적지를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유적지의 중요도에 따라 선정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등급별 지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정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동상을 세워야 할 곳과 표지석을 세워야 할 곳이 있는데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혼선을 빚어왔다"며 "보다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에 분산돼있는 비슷한 사업을 통합해 단일 기구화하거나 상시 운영되는 협의체를 만들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현재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사적지, 6.25사적지를 관리하고 국방부는 6.25전적지를 관리해 성격이 비슷하고 이 중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은 문화재로 분류돼 문화재청 업무에 속해 있다"며 "중복 사업을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독립운동 유적을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지역별 특수성을 고려한 보존방안을 모색하고 사이버 탐방 등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독립운동 유적지를 알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독립운동 유적지도 국가와 지역의 문화유산인 만큼 국민적 인식전환과 함께 우리 주변의 유적지를 역사와 책임감을 느끼는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학생들 교육 장소로 활용하거나 인근 문화와 연계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연구위원은 "오래된 역사유적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우가 있지만 독립운동 유적은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며 "예컨대 고무신 하나라도 독립운동가가 사용하던 것이라면 의미가 달라지는 만큼 주변 문화재와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복원 박물관으로…무관심 속 불행중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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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번지에 위치한 자양영당은 1895년 시행된 단발령에 대항해 전국 최초로 의병을 창의한 곳이다. 현재 이곳은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제천시 문화관광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진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국내 항일독립운동유적지가 대부분 멸실·훼손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일부 지자체는 유적지관리에 공을 들여 원형 그대로 유지하거나 복원해 박물관과 전시관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475번지에는 1895년 시행된 단발령에 대항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창의한 자양영당이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조선후기 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은 1895년 단발령이 시행되자 "문경을 포기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자양영당에서 8도 유림을 모아 창의의 비밀결사활동을 벌였다.
자양영당은 1889년 자양서사로 시작했으며 1906년 전면 3칸, 측면 2칸의 툇마루가 있는 팔작집으로 건립됐다. 1976년 12월21일 충북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제천시 문화관광과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조선후기 건축사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경내 화동강목 판목은 조선말 목판 인쇄술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시는 자양영당주변에 제천의병 기념탑과 전시관을 건립하고 의병봉기활동에 대한 전시물과 다양한 독립운동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대전시는 1991년 7월10일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 터인 중구 어남동 233번지 일대를 대전기념물 제26호로 지정하고 1992년 발굴조사와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생가를 복원했다. 시는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지낸 생가와 함께 동상, 기념비 등을 설치하고 주변을 공원화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구한말 대표적인 사학자 및 언론인이었으며 평생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했다. 이후 '가정잡지'와 '권업신문', '신대한' 등을 발행했다. 그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 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는 서양식으로 건립된 2층 고택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이 건물은 광주에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은 미국인 선교사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내 친지들이 보낸 성금으로 1914년 건립됐다.
오웬 기념관은 종교집회는 물론 문화공연과 교육시설 등으로 활용됐으며, 민족적 성향이 짙은 연극이 공연되는 등 흥학관과 더불어 광주지역 문화·사회운동의 근거지였다. 이곳은 1998년 5월7일 시 유형문화제 제26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기독간호대학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322번지 제암리 교회터 일대에 조성된 3·1 운동순국기념관은 일제의 한민족 탄압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암리 사건은 1919년 3·1운동 이후 제암리 지역의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고 3월31일과 4월5일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자 일본은 4월15일 일본군 제20사단 보병 79연대 소속 수비대를 이곳에 보내 제암리 교회 일대 주민들을 예배당에 가두고 총격을 가해 23명을 학살했다.
정부는 1982년 이곳을 국가사적 제299호로 지정하고 3·1운동순국기념관을 조성해 3·1 운동 만세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희생된 23명의 선열들을 추모하고 있다.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에는 1953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운동순국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당시 제암교회 모형을 비롯한 외국 언론사의 보도기록, 유해 발굴 조사 당시의 사진, 발굴 유품 등이 전시돼 있으며 현재 화성시가 관리하고 있다.
한편 항일독립유적지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시대상을 알려주는 유적지를 지자체가 잘 보존한 사례도 있다.
부산시와 목포시는 일제강점기 한국농민의 수탈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 목포지점을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해 세운 특수회사다.
부산지점은 광복 이후 미군주둔지 건물, 미문화원, 미국대사관으로 사용되다 1996년 폐쇄된 후 1999년 정부에 반환됐다. 부산시는 정부로부터 건물을 인수한 후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보수를 실시하고 2002년 7월3일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목포시도 1989년 이후 방치되던 목포지점의 전남도 기념물 지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1999년에 도 기념물 174호로 지정받았다. 이후 내부수리 등 개보수를 거쳐 2006년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해 일제강점기 수탈된 역사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부산과 목포의 근대역사박물관은 근현대사 유물을 비롯한 영상물, 모형물 등의 다양한 전시물을 활용해 일제강점기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뉴스룸 = 박형재·라안일 기자 news34567·raan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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