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춘, 천상배우의 두 얼굴 '만년소년과 아버지' (인터뷰)


[서울신문NTN 전설 기자] 폭우가 잦아들었던 지난 24일 일요일, 분홍색 팸플릿을 쥐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앉는 아늑한 공간,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막이 오르고 천상배우 김병춘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오타쿠들 : 그거 아세요? 사실은 딸기우유님이 여자가 아니라는 거?
(3명의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오타쿠들이 떠들어댄다. '딸기우유'는 애교가 넘쳐흐르는 소녀 말투로 팬카페에서 화재가 된 수수께끼의 인물. 이때 수상한 사나이가 무대에 난입한다.)
우비로 얼굴을 숨긴 채 등장한 그는 정체를 밝히지도 않은 채 무대 위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돌연 분홍색 머리띠를 쓰고 자신을 1년 전 자살한 아이돌스타 '키사라기 미키짱'의 팬 '딸기우유'라고 소개했다. 이 음흉한 오타쿠의 출연은 관객에게 웃음과 공포를 선사했다.
# 첫인상, 배우
2시간이 빠듯할 만큼 웃음과 눈물로 꽉 찬 공연이 끝났다. 곧바로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 혹시나 힘에 부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괜찮아요. 이 시간이 제일 편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시원한 웃음에 음흉한 오타쿠의 첫인상이 깨끗이 씻겨 나갔다.
"대본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저도 관객들처럼 '이거 뭐야 변태야?'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극이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음흉 오타쿠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는데…그때 내가 느꼈던 걸 관객들에게도 느끼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거다'라는 확신이 있었죠."
공연을 마친 직후였다. 배우로서 '오늘 잘 살았다'고 만족되는 장면이 있는지 궁금했다.
"한 장면 있었는데. 살벌 오타쿠에게 위협을 받는 장면이요. 평소라면 몸을 사리는데 오늘따라 '그래 어디한번 해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을 앞으로 더 내밀면서 약을 올렸죠. 계산된 건 아니었어요. 연극의 매력이죠. 순간순간 계산하지 않는 생생하고 진실 된 반응."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2003년 일본에서 초연돼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오타쿠 라는 기묘한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원작 연극이나 영화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영화가 있긴 한데 일부러 안 봤어요. 나를 후퇴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본 역시 일본 희곡을 그대로 우리 쪽으로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 정서에 맞춰 신명과 흥을 돋우기 위해 새롭게 해석된 부분이 많아요. 무엇보다 자신 있는 건 원작이 좋다는 거예요. 좋은 대본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지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한 신이 끝나면 바로 다음 신이 이어졌다. 무대 끝에서 끝까지 쉴 틈 없는 볼거리로 관객들을 즐겁게 괴롭혔다. 그만큼 배우들끼리의 협동심이 중요하게 생각되는 공연 같았다.
"사실 그걸로 소문이 많이 났죠. 가면 갈수록 좋아진다고. 웃음을 끌어내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호흡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걸 느껴요. 지금 우리팀 막내와 20년 차이가 나는데 그저 편하고 즐거워요. 막내 아버지가 저랑 4살밖에 차이가 안 난데요. 아들 뻘이죠.(웃음)"
김병춘은 영화 '죽이러 갑니다'의 엄사장과 SBS 수목드라마 '시티헌터'의 부장검사 정우현까지 주연과 명품 조연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드라마 영화 연극 할 것 없이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배우로서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영역은 무엇일까.
"연극은 좋은 토양이고 영화와 TV드라마는 거기에 심어진 좋은 곡식이라고 생각해요. TV나 드라마로 좋은 곡식을 거두다가 힘에 부치는 순간이 있잖아요. 밭의 영양분이 고갈 됐다고 느껴지는 그 때 연극을 하면 고향에 돌아온 것 같죠. 좋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어요."
# 알수록, 소년
연기 인생 31년 김병춘에게 물었다. 배우로 살아온 길이 꽃밭 가득한 평지는 아니지 않느냐고. 그가 말했다.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중요하지 않다. 꺾이지 않는 삶은 지치지 않는다. 피곤한 적은 있어도 지친 적은 없다. 왜냐면 배우는 내 삶의 전부였으니까."
김병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꿋꿋이 한 길을 걸어왔다. 무엇이 그를 배우로 살아가도록 만들었을까. 기억의 숲에서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70년대 후반, 소년 김병춘이 전라도 영광에서 만난 세상의 우상은 코미디언 이기동과 배삼룡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어요. 그때 시골에서 소작을 할 형편도 안될 만큼 집이 너무나 가난했거든요. 그런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어머니는 농사 일을 마치고 남의 집에 들러 이기동과 배삼룡을 보고 왔어요. 그런 날은 그게 그렇게 웃기고 기쁜지 밤에 잠도 못 주무시는 거예요. 어머니의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코미디언이 대단해 보였죠."
이기동 배삼룡은 시골 소년 김병춘의 가슴속에 작은 불씨를 남겼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시절 운명처럼 만난 한 연극인 이었다.
"시골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기회가 왔어요.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거예요. 집이 아주 쫄딱 망했죠. 그렇게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됐어요. 그런데 정말 운명 같았던 건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애 앞에 하필 학교와 집 사이에 아동극단이 생겼다는 거죠.(웃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마음에 '아 저기 가면 TV에도 나올 수 있나보다' 생각하고 덜컥 시험을 봤어요. 그랬더니 웃기는 법은 안 가르쳐 주고 매일 연기만 시키데요?"
김병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짧은 연극 한 편을 감상하는 것 같다. 단순히 추억속 아련한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 있었던 일인 듯, 어떻게 중학교 3학년의 어린 소년이 배우의 길을 걷게 됐는지의 과정을 담은 1인극이 펼쳐졌다.
"그때 특강을 하러 어떤 배우분의 연기를 봤어요. 그 중후한 목소리가 공간을 파르르 울리는 데…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율이란 걸 느꼈어요. 온몸에 세포들이 확 열리는 것 같은 감동이 있었죠. 그분이 성악을 했으면 성악을 했을 테고 요리사였으면 요리를 했을 텐데 연극배우였어요. 그래서 제가 배우가 됐죠. 그 선택을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요."

# 든든한, 아빠
세상은 그를 중년 배우라고 쓰고 명품 조연배우라고 읽는다. 김병춘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던지 배우로 살아간다. 연기에 대한 진정성에 비해 선택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좁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하소연 대신 소박한 꿈 하나를 털어놓았다.
"대중이란 늘 배우에게 국민배우라는 애칭을 주고 싶어해요. 배우들을 사랑할 준비가 돼있죠. 사람들이 나를 중년이라고, 조연이라고 하는 것도 거역할 수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중 스스로 '저 중년배우가 이런 연기도 가능하네'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거예요."
김병춘은 중년, 조연의 틀을 깨고 나갈 먼 훗날을 기약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그에게 만약 멜로영화나 드라마에 캐스팅이 어떤 사랑이야기를 선보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진한 러브신 대신 "내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보고 싶다"고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랑을 풀자면 그건 바로 내 아들 이예요. 제게 6살 된 아들이 있어요. 아내보다도 예뻐요. 아니,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내가 내 곁에 있다고 실감하는 사랑은 그런 거예요. 45살 아빠와 6살 아들의 관계 같은 것들 말이죠."
배우로 처음 만난 김병춘은 문득 소년이 됐다가 어느새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10시가 가까워진 늦은 시각. 그를 아들에게 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은 아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정직한 연기일 거예요. 내 아이는 아파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어요. 아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 치열하고 재미있는 아빠로 살아 갈 수 있는 거죠.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전부니까요. 아이에게 숟가락 놓고 반찬 놓고 밥 먹는 법을 가르쳐요. 먹고 난 뒤에 그릇은 혼자 치우죠.…. 내가 아들 곁에 남아있는 동안 그런 것들, 그렇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의 아들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쉽게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과 아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대해 말했다.
"이 아이의 인생과 싸우지 않겠다, 그렇게 마음먹었어요. 욕심으로 아이를 상처 입힐 수 없었고 희망과 싸우고 싶지 않았죠. 내 아이에게 다른 애들처럼 살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가게에서 사이다를 혼자 사오는 것, 그게 내 아들을 위한 공부예요. 나는 내 아이가 특별한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해요. 너무 예쁘거든요. 요즘에는 '시티헌터'에 나오는 나를 보고 막 좋아라하는데, 정말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 "지금, 여기"
김병춘은 인터뷰 끝머리에 "내게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아내와 아들과 나 셋이서 유랑극단을 만드는 거다. 유랑 단원 3명이서 이 세상을 즐겁게 떠돌아다니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우리는 조그마한 태양의 서커스단이 될 거다."고 소소한 바람을 전했다.
김병춘은 천상 배우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만년 소년이다. 그의 꿈은 소박하고도 진실했다. 그를 만나기 전, 연극배우는 모두 힘겹고 외롭고 추운 길을 가는 줄 알았다. 그 오해를 풀고자 김병춘이 아픈 청춘들에게 전하는 당부 몇마디를 덧붙인다.
불행이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순간, 배우는 어마어마한 행운을 갖게 된다. 나는 45살에야 그걸 알았다. 그러니 나보다 몇 년은 더 앞서있을 여러분들은 훨씬 유리한 삶을 사는 거다. 사람들은 '내 삶은 왜 이따위야'하고 한다. 이따위 것이면 안 되는가? 앞으로 남은 평생이 몇 년, 몇 십 년인지도 모르는데 지금 불행한 삶에 불만을 품는다는 것은 얼마나 건강한 것인가. 지금, 여기, 오늘에 충실해라. 오늘을 살아라!
전설 기자 legend@seoulntn.com사진 = CJ E &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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