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일년에 열두 번 이삿짐 싸는 EU 의회

정우상 논설위원 2011. 7. 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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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벨기에 브뤼셀 의 유럽의회 건물은 평일 예배당처럼 조용했다. 유럽연합(EU)의 입법기관으로 27개국에서 선출된 의원 736명으로 북적거려야 할 본회의장은 구경 온 고등학생들이 점령했다. 이곳에 있어야 할 의원들과 보좌진, 사무처 직원들은 450㎞ 떨어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또 다른 유럽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유럽의회는 벨기에 의사당에서 상임위원회를, 프랑스 의사당에서 본회의를 여는 이중구조다. 우리의 국회 사무처에 해당하는 유럽의회 사무국은 룩셈부르크 에 있다. 유럽의회라는 이름을 쓰는 건물이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 등 세 곳에 분산돼 있는 것이다.

본회의와 상임위가 열리는 장소가 떨어져 있으니 유럽의회 관계자들은 1년이면 열두 번을 이런 식으로 짐을 싸고 풀며 벨기에와 프랑스를 오가는 이사를 해야 한다. 유럽의회가 이렇게 1년 동안 거리에 버리는 물류 비용만 2억8500만달러(약 3013억원)에 달하고, 비행기와 자동차가 쏟아내는 이산화탄소가 1만9000t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브뤼셀과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는 유럽의회 의원들에게는 그때마다 일당 300유로가 지급되고, 항공료와 숙박비는 따로 지급된다.

비(非)유럽권 사람에겐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유럽의회의 이중구조에 대해 유럽의회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한다. 한 관계자는 "EU 본부가 브뤼셀에 있으니 업무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럽의회도 당연히 브뤼셀로 통합돼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 유럽의회는 프랑스에 있었고 EU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고 했다. 전자(前者)는 벨기에 사람이고, 후자(後者)는 프랑스인이다. 유럽의회를 어디에 두느냐를 두고 20년간 신경전만 벌이고 개혁을 위한 수술은 회피하고 있다.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2층을 가득 메운 통역 부스들이다. 유럽의회는 본회의 때 27개 회원국이 쓰는 EU 공식 언어 23개를 동시 통역해야 한다. 이를 위해 23개 언어마다 3명씩 통역사를 모두 69명 쓰고 있다. EU 집행위와 각료이사회 등 EU 전체로 보면 통역과 번역에 드는 비용만 매년 11억유로(약 1조6000억원)가 넘는다. 유럽연합이란 '이상'과 개별 국가 협의체란 '현실' 사이에서 회의만이라도 영어와 불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하자는 방안도 길을 잃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정상들이 22일 재정 위기에 처한 그리스 에 1586억유로를 긴급 지원키로 합의했다. 유럽의회는 남유럽에 도미노처럼 번지는 재정 위기와 관련해 해당 국가들에 긴축 재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고비용 구조에는 칼을 대지 못하고 있다. 회원국들의 재정이 악화되면 EU 살림살이도 줄여야 할 텐데 유럽의회는 작년에 예산 5.9% 인상을 요구했고, 지난 3월에는 보좌관 급여로 의원 1인당 1500유로를 추가 지급하는 세비(歲費)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우리 국회는 제2 의원회관을 만들면서 의원 주차장을 더 확보하려고 세금 148억원을 더 썼다. 이런 식으로 총공사비는 당초 1802억원에서 622억원 늘어난 2424억원이 됐지만, 국민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감사(監査) 사각지대에서 세금을 자기 돈처럼 펑펑 쓰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유럽의회의 헤픈 씀씀이를 보면서 혹시 엉뚱한 위안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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