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경향〉[그곳은 지금]'발칙한 상상? 유쾌한 상상!'..강화 세계춘화박물관
강화도의 명소 마니산. 화도면 상방리에 있는 주차장 입구를 지나다보면 이전에 없었던 낯선 깃발이 손짓하듯 펄럭이며 관광객의 발길을 불러 세운다. 지난 1월 문을 연 세계춘화박물관이다. 묘한 호기심에 이끌려 이 곳에 들어서면 누구나 두번 크게 놀라게 된다.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춘화의 양에 먼저 입이 딱 벌어지고,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춘화들의 기기묘묘함에 또 한번 놀란다.

강화도에 있는 세계춘화박물관 내부. 160여개국에서 수집된 5000여점의 춘화가 전시돼 있다. 춘화박물관은 오지열 시인이 운영하고 있는 사설 박물관으로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조진호 기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곳은 춘화에 특화된 성문화박물관이다. 소장하고 있는 춘화는 진품과 사진을 합쳐 160개국 5000여점이나 된다. 또 성물도 700여점이나 되지만 공간이 좁아 130점만 나와 있을 정도로 빈 곳 하나없이 남녀상열지사가 빼곡이 펼쳐진다.
이 곳에 춘화 보따리를 풀어놓은 사람은 시인이자 전각가인 오지열 전 중앙대학교 행정실장. 평소 취미로 모은 수석을 전시할 공간을 준비하던 와중에 툭 던져진 지인의 한마디가 환갑을 바라보는 그를 '색(色)다른 세상'으로 몰고 갔다.
"수석 전시하면 누가 찾아 오겠어? 일본에 가니 섹스박물관이 엄청 잘되던데…."

무릎을 탁치게 만든 한마디, 옳다구나 싶었다. 1층에 수석을 전시하고 2층에 성박물관을 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수석도 보게 되겠지…. 그런데 일단 시작하자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수집품을 모으면 모을수록 쫄깃쫄깃 맛깔나는 온갖 색의 세계가 그를 사로잡았고 결국 아예 주객이 전도됐다.
권태로운 양반의 삶을 살아가던 사대부 집안 자제가 어느날 일생 처음 보는 난삽한 책을 접하면서 묘한 흥분을 느끼게 돼 급기야 자신이 직접 음란소설을 써 '대박'을 터트리는 영화 < 음란서생 > 의 주인공이 꼭 그였다. 영화에서 소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소설이 큰 인기를 끄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삽화, 즉 춘화였는데 그를 매료시킨 것도 바로 춘화의 세계였다.
낯이 확 달아오를 만큼 노골적이고 야하지만 요즘의 포르노와는 다른 뭔가가 분명 있었다.

취미로 한점 두점 모아들이다 아예 작정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 있는 180개국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 협조를 요청하는 발칙한 일을 꾸민 것. 이런 방법으로 모은 것이 5000점에 이르는 세계각국의 춘화다. 중국 세관에 걸려 물건을 압수당하는 등 별별 일을 다 겪은 끝에 얻어낸 아랫도리 뿌듯한 결과물이다.
이 박물관에는 세계 곳곳의 춘화가 출신국의 국기와 함께 전시되는데 이것 또 볼거리다. 나라별 문화권별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드러내는 춘화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춘화하면 일본을 연상하고 들어왔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의 춘화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오 관장에 따르면 한국의 춘화는 은근하고 중국의 그것은 유쾌하며, 야하기로는 일본이 최고다. 그렇지만 유럽의 춘화는 충격 그 자체다.
유럽 춘화의 특징 중 하나는 동물과의 행위를 묘사한 것이 유난히 많다는 점. 성의 쾌락을 억압하던 중세 유럽에서 그런 작품이 어떻게 나왔나 싶을 정도지만 '춘화 자체가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는 오관장의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춘화는 점잖은 유교문화속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포르노이기도 하지만 양갓집 규수가 시집갈 때 혼수에 넣어 보내던 성교육 교재로 사대부를 포함한 양반사회에 은밀하게 널리 퍼졌다고 한다. 특히 유교적인 규범에 얽매여 그런 데 눈 돌리기가 어려웠던 당시 양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욕구를 해소할 청량제의 역할을 했고 그 영향으로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 등에 의해 조선식 춘화가 등장했다고 한다.
전시장에 옛시대의 춘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녀합일의 장면을 새겨넣은 공예품과 식기류부터 사이버섹스를 묘사한 서구 현대작가들의 그림, 이전에 세운상가에서 은밀히 팔던 포르노 만화에 남녀용 정조대까지…. 여자 정조대는 많이 알지만 남성용의 용처를 물으니 영주가 전쟁을 나가면서 하인에게 채웠던 것이란다.
그런데 현대의 포르노와 춘화는 결국 같은 것 아닐까?
오 관장은 둘은 절대 같지않다고 말한다. 오관장에 따르면 춘화는 상상력의 발현인데 그것은 예술의 본질과 통한다는 것이다. 포르노에는 아름다움이 없고 천박함만 있지만 춘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알듯 모를듯,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이다.
오관장의 이같은 철학(?)에 따라 세계춘화박물관에 없는 게 있다. 다른 성문화박물관에 가면 흔히 한켠에서 상영되는 포르노 비디오와 교성이 흘러나오는 사운드 효과다.
관람객들의 요구로 한때 시도한 적이 있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돼 치워버렸다는 설명이다. 이런 치열함(?)은 아예 스스로를 작품속으로 밀어넣었다. 남녀를 묘사한 조각상에 자신과 부인의 얼굴을 새겨 넣은 것. 절대 못하겠다는 부인을 어르고 달랜 끝에 해낸 '쾌거'로 보면볼수록 뿌듯하단다.

오관장의 다음 계획은 '옹녀촌' 건립. 현재의 공간을 증축해 민속품을 테마로한 새 볼거리를 준비 중인데 이것이 완성되면 볼만할 거라며 벌써부터 자랑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뒤늦게 발동걸린 '환갑 청년'이 만들어낸 이색 공간인 '세계춘화박물관'. 강화도를 찾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러볼만한 재밋거리임이 분명하다.
삼척 '해신당 공원'남근 조각 60점 빼곡
국내 성박물관중 유명한 곳은 강원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에 있는 '해신당공원'이다. 풍랑에 휩쓸려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나무로 남근 모형을 깎아 제사를 올린 풍습에서 실마리를 얻어 조성한 조각공원으로 60여점의 크고 작은 남근 조각상들이 줄지어 서 있다. 또 제주도의 '제주러브랜드'와 '건강과 성 박물관'은 국내 성박물관의 대표격이다. 서울 인사동의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도 춘화와 전통 여성용 자위기구인 '각좆' 등을 전시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경기 포천시 소흘읍의 일명 '남근카페'는 건물 외벽부터 실내 화장실까지 모두 남성 성기를 본뜬 '물건'들로 채워 주부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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