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 OB전] 농구인들이 말하는 정기전의 추억

한국농구 라이벌의 역사를 언급할 때 있어 고려대와 연세대, 연세대와 고려대를 빼놓을 수 없다. 1965년 10월22일, 「고려대·연세대 정기 친선농구전」이란 타이틀로 시작된 정기전은 매년 가을, 많은 농구팬들의 관심 거리였다.국내 농구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또 수많은 인물을 배출해온 두 대학교간의 자존심 대결은 그야말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이자 1년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경기 전날 잠 못 이루고, 이긴 쪽은 개선문을 통과하던 영웅처럼 당당히 학교 응원단과 함께 가을 하늘에 함성을 수놓았던 그들. 고연전이자 정기전이라 불리는 그 격전의 한 가운데 서있었던 선수들의 추억을 들어보았다.
< 점프볼 편집부 / 점프볼 2007년 10월호 中 >
고려대학교
조동표 (원로 체육기자)
8·15 이전의 연보전은 스포츠 진흥에 앞장섰던 매개체였다. 특히 농구와 축구가 두각을 나타냈다. 민족 사기를 올려주는 역할을 했었다. 사실상 연보전에서 뛰어났던 선수들이 한국을 대표해서 일본 농구팀을 꺾는데 주도적인 활약을 했으니 말이다. 특히 47년의 보전(고려대)은 천하무적이었다. 고세태, 이혜재, 안병석, 이인선, 김성태 등으로 구성됐고, 이들은 일본에서 열린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최강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고세태와 안병석은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어 48년 올림픽에 출전했다.
박제영 (수원대 교수)
고연전 전날은 항상 긴장된다. 거의 잠을 못 이룰 정도다. 감독님께서는 부담을 덜 주기 위해 평상시 연습한 대로만 하라고 편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었다. 이기면 세상을 다가진 것 같고 지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1학년 때(73년) 우리 학교는 전승을 했는데, 정기전에서만 유일하게 졌었다. 공식기록에 안 들어가서 연승기록에 해당되지는 않았다. 코치 시절이던 86년 우리가 1-3-1 존디펜스를 내세웠는데 연대의 유재학에 의해 1-3-1 지역방어가 깨졌다. 종료 2분 30초 가량을 남기고 지는 상황이었는데, 이러다가는 지겠다는 생각에 박한 감독님께 연대가 1-3-1 디펜스에 적응 해서 통하지 않으니 수비를 바꾸는 것이 어떨지 말씀을 드렸다. 감독님은 내 의견을 받아들여 수비를 2-3존디펜스로 바꿨다. 수비를 바꾸자 유재학이 주춤하면서 연대는 공격의 맥이 끊어졌고 그 사이 우리가 활발한 공격을 펴 역전을 시킬 수 있었다. 작전 권한은 감독이 쥐고 있는 것이지만 코치는 감독에게 조언을 구할 임무가 있다. 우리 프로 농구는 코치들이 너무 조용하다. 감독과 코치의 조화가 있었기에 승리 할 수 있었던 경기라고 생각한다.
김동광 (KBL 경기이사)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정기전이 1학년과 4학년 각 한 번씩 딱 두 번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경기 모두 졌다. 그 당시 우리가 전승 우승에 48연승인가 할 때였는데, 다른 것은 다 져도 농구는 이겨야한다는 마음으로 했었는데, 이상하게 정기전에서만 졌다. 다른 대회에서는 아마 다섯 번 만나 다 이겼던 것 같은데, 방심을 하지 않았나 싶다. 정기전은 단 한 경기만으로 승부를 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멤버가 어떠냐보다 그 날 컨디션이 어떤지가 승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감독은 한 일주일 전부터 선수들 비위를 맞춰주기도 했다. '잘한다, 잘한다'칭찬만 해주셨던 기억도 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정기전은 상당히 비중 있는 경기였다. 고려대와 연세대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화제 거리였다. 지상파에서 TV 중계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기전의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농구에 대한 인기가 하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도 없어진 느낌이다. 예전이 더 집중이 잘 됐었던 것 같다.
이충희 (KBS 해설위원)
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있다. "다져도 좋으니, 정기전만큼은 패하지 말라."그만큼 정기전은 운동부에게 있어 1년 중 최고의 행사였다. 원로부터 신입생까지 모두가 긴장하고, 또 기대했던 경기가 바로 정기전이었다. 선수들의 부담감은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1학년때 가졌던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실 당시 정기전에선 모두가 연세대가 8:2 정도로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결국 이기다가 무승부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쏟아진 극찬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이후 49연승 행진을 달렸다.
김진 (창원 LG 감독)
그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훈련량이 엄청났으니까. 아마 지금 선수들은 절대 소화하지 못할 것 같다. 훈련에서만큼은 박한 감독님도 굉장히 엄하셨으니까. 지금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그 당시 정기전은 거의 전쟁에 가까웠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였고, 그래서 더 치열했다. 부담이 되긴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정기전은 여전히 우리들의 최고의 안주거리로 남아있다.
서동철(대구 오리온스 코치)
정기전 전날의 기분은 아마 전부 같을 것이다. 너무 긴장 되서 잠을 못잤다. 새벽이 되야 억지로 한 두시간정도 잠을 청하는 정도였다. 잠을 못자고 경기에 임하는 탓에 고연전을 치르고 나면 피로에 지치고 말았다. 고연전이 열리기 3일전부터는 부담가지지 않도록 감독님께서도 편하게 해주신다. 어떤 것을 주문하기보다는 간략하게 기본적인 것만 주문하셨다. 이겼을 때는 일부러 캠퍼스 한복판을 돌아다녔다.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 못한다. 반대로 졌을 때는 골목길로만 다녔다. 허무함과 좌절감이 정말 심했다.
이지승 (서울 SK 코치)
1992년도 정기전이었는데, 연대 멤버가 워낙 좋아서 8대2 정도 연대의 우세를 점치던 때였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서는 줄곧 시소게임을 하다가 마지막에 아쉽게 한 골 차로 졌다. 지기는 했지만 후회 없는 경기였다. 정기전은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기면 항상 야구장으로 단체 응원을 갔다. 맥주도 많이 마시면서 응원을 하기 때문에 기분 좋게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에서 지면 조용히 숙소로 들어간다. 비록 정기전은 친선 경기로 하는 것이지만, 이기기 위해 무조건 100일 합숙에 들어간다. 감독님도 따로 말씀은 없으시지만, 무조건 이겨야 되는 분위기가 흘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빨간 모자와 파란 모자가 거리에 쏟아져 나와서 바닥에서 막걸리도 마시며 응원하는 것을 봤다. 그 때 너무 멋있다고 느끼고 무조건 저 대학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정기전이 있었는지도 모를 때다. 이후에 고대에 입학하고 정기전을 할 때는 정말 이 학교에 잘 왔다고 느낄 정도의 뿌듯함이 있다. 잠실 체육관을 가득 채운 빨갛고 파란 물결 속에서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생기고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운동을 하려면 이렇게는 해야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 개인적인 생활이 우선되는 것 같아 정기전에 대한 분위기가 한 풀 꺾인 것이 아쉽다.
김일두 (안양 한국인삼공사 포워드)
연맹전 같은 일반 대회에서의 고연전과 정기전은 분위기가 정말 천지차이다.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이다. 이겼을 때는 회식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좋은 곳으로 간다. 하지만 지면 그렇지 않다. 다음 정기전까지 부담이 장난 아니고 동계훈련도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1학년때 가진 정기전에 기억에 남는다. (오)용준이 형이 49점 넣었던 경기인데, 내가 거의 풀타임을 뛰면서 팀에서 용준이 형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했다. 아직도 그 경기를 가끔 보곤 한다. 게다가 4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유일한 정기전 승리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연세대학교
방열 (건동대 총장)
61년에 입학할 당시 고려대도 김무현과 같은 실력파들이 가세하면서 전력이 좋았다. 하지만 우리 때는 정기전이 없었다. 당시 고려대 체육회가 대한체육회에서 탈퇴해 활동을 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나 역시도 단 한번 출전했던 기억 밖에 없다. 대신 연고OB전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졸업 후에야 비로소 연고전이라는 것을 치렀던 셈이었다.
김인건 (전 태릉선수촌장)
연고전은 한동안 열리지 않다가 65년부터 다시 열리게 됐다. 그때가 내가 4학년이었다. 양 교의 자존심 대결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경기 중에 시비가 붙기도 했을 정도였다. 연고전은 '독수리 대 호랑이'로 대표되던 60년대 스포츠의 심벌 중 하나였다. 최고의 축제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에는 경기가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는데, 종로와 을지로 등을 가득 메워 응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승패를 떠나 즐거웠던 추억이었다. 우리 뿐 아니라 시민들도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니까. 다만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아 아쉽다.
이명진 (MBC SPORTS PLUS 해설위원)
정기전은 이긴 팀에게나, 진 팀에게나 늘 각별한 사연을 안겨주었다. 내가 뛸 무렵에는 데모가 심해서 2번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1973년 정기전에서는 야구장에서 화재가 나서 모두의 축제가 돼야 했을 정기전의 분위기가 어두웠다. 농구부는 개막식만 참가하고 저녁에 있을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모든 종목에서 패해서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마침 내가 1학년때는 우리가 고대에게 한번을 제외하면 모두 이겼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때마침 스카우트 파동 때문에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고, 결과는 아쉬웠다. 그래서일까. 그 때 정기전은 아직도 우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박인규 (전 삼성생명 감독)
매년 정기전이 다가올 때면 우리는 100일 정도 합숙훈련을 했다. 초여름부터 선수단을 엄습한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만큼 연습량도 대단했다. 당시 선배님들이 긴장하지 말라고 한밤중에 묘지에도 데려다놓고, 산에 가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내가 입학하기 이전에 70년대에는 신동파, 김인건씨 같은 훌륭한 선배들이 늘 팀을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우리로선 반드시 그 계보를 이어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정기전을 승리한 다음에 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만큼 뿌듯할 때가 없었다. 정말 의기양양했다. 10일간의 휴식도 주어졌으니까. 그때는 힘들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농구 선수로서 최고의 라이벌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 대단한 행운이 아닌가 싶다.
최희암 (전 인천 전자랜드 감독)
2007년 챔피언 결정전에 앞서 유재학 감독이 울산 모비스 선수들을 불러놓고 촛불 의식을 가졌다고 했을 때, 나 역시 연세대 감독 시절이 떠올랐다. 정기전을 앞두고 항상 선수들과 촛불을 켜고 둘러서서 아카라카를 외치면서 각오를 다지곤 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케이크를 서로 얼굴에 묻혀가면서 장난도 치고, 그간의 고된 훈련을 정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도 가졌다. 우리에겐 그 경기가 정말로 큰 경기였다. 1년에 단 한 경기뿐이니 말이다. 지면 다음은 없다. 내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박건연 (대학연맹 전무이사)
90년대 한창 멤버가 좋을 때는 고려대를 이겨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대표선수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고대와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95년에 서장훈의 버저비터로 역전승을 거둔 것이었다. 정말 짜릿했다. 연대와 고대는 늘 전력이 비슷했기 때문에 늘 만날 때마다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게다가 라이벌 의식이 투철해 "다른 학교에게는 져도 고대한테는 안 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선수들에게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으니 부담 갖지 말라고 말해주곤 했다. 감독으로 치른 작년, 재작년 연고전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뛰어줬던 선수들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
김성헌 (인천 전자랜드 홍보/운영팀장)
4학년 때 정기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4년 전승으로 졸업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서장훈과 이상민이 국가대표로 차출되고, 우지원은 부상을 당했다. 또 김훈은 배탈까지 나서 거의 2진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초반엔 비슷하게 나갔는데, 후반 들어 10점 이상 점수가 벌어지면서 졌다. 정재근 선배가 4년 전승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지만 져서 아쉬웠다. 사실, 일반 다른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기전 승패가 가장 중요했다. 다른 경기는 다 져도 정기전에서 한 번 이기면 무마할 수 있었다. 그 해는 그 경기 하나로 평가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경기에서 이기면 이대 앞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을 지나 연대 정문 사거리까지 코스가 있다. 이 코스를 단체로 걸으며 '아카라카~' 노래를 부르고 방방곡곡에 승리를 알리면서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요즘은 전지훈련 기간과 많이 겹쳐서 정기전에 많이 가지는 못 했는데, 의미가 많이 작아진 것 같다. 예전엔 정기전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정체성 표출의 장이었다. 문경은 (서울 SK 감독대행)항상 연고전은 나를 긴장시키고 최고의 빅게임으로 팬들에게 인식되었다. 물론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 내가 겪은 4번의 연고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다. 그 중에서도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93년도, 내가 4학년일 때의 연고전이다. 당시 우리 팀은 나를 비롯해 (이)상민,(우)지원,(서)장훈이가 있었다. 물론 그 멤버로 그 해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했으니 최강의 멤버라고 자부심을 가질 만 했다. 고려대에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이 있었다. 경기는 시종일관 우리팀의 리드로 진행됐다. 경기 중에 나에게 노마크 속공찬스가 생겼는데, 처음으로 경기 중 백 덩크를 성공시켰다. 그 전에는 연습때 주로 했지만 실전에서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나도 그렇게 성공시킬 수 있을 지 몰랐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우리팀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그 경기에서 우리는 고려대에 74-6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순간이 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지금 다시 그 장면을 연출시키라면 물론...
은희석 (안양 한국인삼공사 가드)
정기전의 목적은 두 학교간의 우정이 아닐까? 오랜 라이벌 관계인데, 유독 정기전에서는 더욱 적대시한다. 정기전 전 날은 유독 선수들끼리 말도 없고 긴장감이 흐른다. 밥 먹을 때 젓가락도 떨어뜨리면 안 될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였다. 하지만 또 정기전이 지나면 축제를 즐기고 우애를 쌓아간다. (이)규섭이와 어릴 적부터 굉장히 친한 사이인데, 정기전에서 서로 일으켜주고 격려하면서 더 깊은 우정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농구 선수를 하면서 관중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에서 뛸 기회가 많지 않다. 정기전은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보다 더 뜨거운 열기 속에 경기를 하게 되는데, 농구를 하면서 최고의 분위기 속에서 경기한 경험으로 기억된다.
이정석 (서울 삼성 가드)
연고전 전날에는 잠을 설쳤다. 감독님께서는 자신감을 키워주기 위해 좋은 말만하시고 뭘 해도 봐주실 만큼, 싫은 소리는 안 하셨다. 반면에 이겼을 때와 졌을 때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기면 바랄게 없지만 반대로 지면 학교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다. 또한, 지면 운동이 힘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2학년 정기전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종료까지 7~8초 남았고 우리가 2점 이기는 상황에 내가 자유투를 얻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자유투 2개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다행이 우리 팀에서 리바운드를 잡아 다시 파울을 얻어내는 바람에 승리를 할 수 있었다. 그 경기를 통해 내가 한층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졌었다면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김재환 (서울 SK 센터)
2004년 정기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는 2학년이 주축이었는데, 모두가 의기투합해서 2년 연속으로 승리(88-74)했다. 쟁쟁한 형들도 많았는데 마침 2학년들에게 기회가 왔고, 기대에 부응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당시 2학년은 김태술, 이광재, 김재환 등 03학번들이었다)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1-06-15 손대범 기자( sondaebu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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