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에서 이어짐)
당시 UFC에서 손꼽히는 천재였던 비토 베우포드를 이렇게 제압한 커투어는 이어 모리스 스미스까지 꺾으며 당당히 UF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때 커투어의 종합격투기 통산 전적은 고작 4전 전승에 불과했다. 아무리 UFC의 위상이 지금과는 달랐다고 해도 4전 만에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는 건 커투어의 별명이 왜 'The Natural'인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커투어VS스미스 전의 모습)
하지만 커투어의 상승세와는 반대로 UFC를 주최하던 SEG 사의 자금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당시 커투어의 파이트머니는 모리스 스미스와의 타이틀전이 6만 달러, 다음 경기는 8만, 그 다음은 10만 달러로 계약되어 있었고, 심지어 UFC 측에서 월 훈련비 4천 5백 달러를 지원해 준다는 조항도 계약서에 존재했다. 하지만 UFC 측은 스미스 전이 끝난 후 커투어에게 바스 루튼과의 경기를 제안하면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2만 5천 달러를 주겠다고 통보했다. 일방적으로 원래 액수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을 제시한 것이었다. 커투어는 당연히 거부했고, UFC는 곧바로 그의 타이틀을 박탈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 UFC의 사정은 그 정도로 어려웠다. 많은 선수들에게 비행기 티켓조차 지급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커투어의 파이트머니를 올려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커투어는 한동안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활약했다. 사진은 슈토의 발리투도 제팬 98 대회의 메인이벤트에서 엔센 이노우에의 암바에 걸려 종합격투기 첫 패배를 당하던 커투어의 모습이다. 커투어는 이 경기에서 3만 5천 달러의 파이트머니와 슈토 대회들 중 총 아홉 개 이벤트의 북미 방영권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커투어가 UFC에 컴백한 건 딱 3년 만이었다. 올림픽 및 일본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패배의 쓴 맛을 겪으며 한층 더 성장한 커투어는 그 당시 UFC 최강자로 꼽히던 케빈 랜들맨을 꺾고 통산 두 번째 UFC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특히 랜들맨 전은 커투어가 처음으로 100% 종합격투기에만 완전히 집중한 시합이었기에 그 승리의 의미가 너무도 각별했다. 당시 커투어는 RAW 팀에서 독립해 댄 핸더슨, 맷 린들랜드와 함께 팀 퀘스트를 설립해 메인 훈련을 소화하는 동시에, 모리스 스미스, 바스 루튼, 프랭크 섐락, 존 루이스, 페드로 사우어, 맷 흄 등 여러 파이터들 및 트레이너들을 초청해 부족한 부분을 보강했다. 종합격투가로서 커투어의 큰 틀은 이 때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커투어는 RAW 팀에서 독립한 후 댄 핸더슨과 피트니스 센터를 겸한 대형 체육관을 오픈했지만 경영 노하우가 전무했기에 손해만 잔뜩 본 후 문을 닫아야 했다. 이때 커투어가 장비를 팔아치우려고 낸 광고를 보고 전화한 게 옛 동료인 맷 린들랜드였다. 당시 자동차 판매장을 막 오픈한 상태였던 린들랜드는 자신의 매장 옆 창고에 장비를 설치해 같이 운동하자는 제안을 던졌다. 커투어는 두말없이 이를 받아들였고 댄 핸더슨이 모든 장비들을 직접 트럭에 싣고 날랐다. 이후 종합격투기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명문 '팀 퀘스트'의 시작은 이처럼 '조촐'했다.)
이후 랜디 커투어의 커리어는 종합격투기의 살아 있는 역사로서 많은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조쉬 바넷, 리코 로드리게즈 등 거구의 헤비급 파이터들에게 패배하며 한계를 드러내는 듯 했지만, 라이트헤비급으로 전장을 옮겨 또다시 챔피언에 등극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2005년부터는 리얼리티 쇼 'The Ultimate Fighter'에 출연하며 UFC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2007년엔 다시 헤비급으로 돌아와 통산 세 번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챔피언 벨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사나이, 랜디 커투어)
이런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랜디 커투어는 사실 국내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인물은 결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나 세미 슐트처럼 '절대 강자'의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30전 19승 11패라는 커투어의 전적을 살펴보면, 다른 챔피언들과 비교해 봤을 때 굉장히 등락이 심했던 걸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커투어는 늘 주최 측에서 '밀어주는'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 UFC를 운영했던 SEG사가 커투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이 글에서 몇 차례 설명한 바 있는데, 그런 성향은 배턴을 이어받은 ZUFFA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UFC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았던 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리얼리티 쇼 'The Ultimate Fighter' 시즌 1의 코치도 원래 커투어 몫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UFC의 포스터 보이로 활약해 온 티토 오티즈와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켄 섐락이 원래 코치 후보 1순위였지만, 이들과 대화가 잘 진전되지 않아 결국 커투어에게 차례가 돌아온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커투어는 항상 UFC 흥행의 중심에서 활약해 왔지만, UFC 측이 늘 그런 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TUF가 방영되기 전까지 UFC는 무려 4천만 달러가 넘는 적자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쇼를 계기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고, 현재 UFC는 세계 종합격투기를 집어삼킨 절대 맹주로 집권한 상태다.)
하지만 커투어에겐 아무도 모르게 가슴 속 깊이 감춰놓은 특유의 뚝심이 있었고, 누가 뭐라 악담을 퍼붓든 간에 본인이 세운 목표를 꼭 달성해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커투어의 이런 면은 그가 선수 생활 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맞을 때마다 힘을 발휘했다. 본인 생애 최악의 패배 중 하나로 커투어가 꼽는 기억은 2002년 UFC 39에서 펼쳐진 리코 로드리게즈 전 때였는데, 경기 내내 밀리던 커투어는 로드리게즈의 팔꿈치 공격을 눈에 맞은 후 곧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갑자기 모든 게 비뚤어져 보이며 구토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락커룸에서도 그런 상태는 계속되었지만 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몰려들었고, 급기야는 분노한 코너맨 네이트 쿼리가 "다 꺼져 이 자식들아! 사람이 다쳤으면 일단 병원에 가야할 것 아냐!"라 소리를 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커투어의 부상은 아주 심한 형태의 안와 골절로 밝혀졌는데, 이후 오랫동안 참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눈 근육이 늘어나고 신경이 손상되었기에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구토를 참을 수 없었고, 치료가 끝난 후에도 사물이 계속 두 개로 보였다. 또, 뭔가를 오랫동안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비스듬하게 움직여 각도를 맞춰야만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은퇴를 생각하거나 타격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케이지에 영영 돌아오지 못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커투어는 차근차근 회복을 끝낸 후 체급을 낮춰 라이트헤비급 파이터로 컴백, 당시 최강자로 꼽히던 척 리델과 티토 오티즈를 연파하며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이미 마흔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은퇴한 후 제 2의 인생을 한창 설계할 만한 나이에 최악의 부상을 딛고 컴백해 다시 한 번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나이를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은퇴전이 된 료토 마치다 전에서 아무것도 못해보고 치아까지 손상되며 패배했지만, 이미 본인이 '의지의 사나이'임을 파이터로서의 인생 내내 증명했던 커투어의 얼굴에서는 아쉬움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들 안 된다며 오르지 말라 했던 험한 산 정상을 결국 정복한 후 씩 웃으며 미련 없이 내려가는 모습 같았다고 할까.
마지막으로 종합격투기의 살아 있는 전설 커투어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커투어는 리코 로드리게즈에게 패배한 후 라이트헤비급으로 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UFC 매치메이커 조 실바는 처음에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농담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UFC 42에서 커투어는 원래 안드레이 알롭스키와 싸우기로 되어 있었는데, 알롭스키가 손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고, UFC 43에서 커투어는 결국 라이트헤비급 체중으로 척 리델과 격돌해 승리를 거두며 그 체급 잠정 챔피언에 등극했다. 당시 감량 과정은 아주 수월했다고 한다.
*원래 도발을 즐겨하지 않는 커투어지만, 척 리델 전에서 승리한 후 옥타곤 안에서 티토 오티즈를 겨냥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티토, 만일 벨트를 원하면 이리 와서 가져가 봐." 그런데 이는 사실 인터뷰 직전 데이나 화이트가 귓속말로 티토 오티즈를 도발하라 시켰기 때문에 했던 것이었다.

(티토 오티즈를 일방적으로 두들겼던 랜디 커투어)
*티토 오티즈를 꺾으며 최초의 2체급 석권 챔피언에 오르는 순간, UFC 현지 해설자 조 로건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캡틴 아메리카'
*2006년 은퇴 선언 후 복서 제임스 토니와의 경기, 프로레슬러 커트 앵글과의 경기가 추진되었지만 결국 둘 다 무산되었고, UFC 측에선 독일에서 군인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커투어에게 유럽 지부장 직을 제의했으나 커투어가 거절한 바 있다.

(은퇴 후 커투어는 한 그래플링 이벤트에서 초특급 그래플러 자카레와 격돌, 무승부를 기록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커투어는 컴백을 선언하게 된다.)
*은퇴한 후 유유자적하던 어느 날 커투어는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컴백해서 팀 실비아와 싸우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곧바로 데이나 화이트에게 문자 보냄. 다혈질인 화이트는 '급흥분'해 곧바로 전화해 진심이냐고 물었고 커투어는 해보자고 답했다. 결국 둘의 경기가 펼쳐진 UFC 68은 당시 북미 최고 입장객 기록(19049명)을 남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이 여리기로 유명한 팀 실비아는 자신과 친하다고 생각했던 커투어가 이 대결을 제안하고 결국 실현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굉장히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