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관타나모 기지는.. '쿠바의 심장'에 위치
2002년에 수용소 들어서
2002년 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송돼 온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20명의 용의자가 사슬로 연결된 채 관타나모만(灣)의 미 해군 기지 안의 임시 수용소로 들어섰다. 미국은 이들을 전쟁 포로가 아닌 '불법 적(敵) 전투원'(Unlawful enemy combatant)으로 명명했다. 이들은 민간인도 군인도 포로도 아닌 만큼 제네바 협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사실상 고문이나 다름 없는 다양한 기법의 취조와 신문을 한다 해도 법적인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이 생긴 것. 관타나모 수용소가 전 세계의 이목을 받으며 테러 용의자의 수용소로 역사에 등장한 순간이다.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면적 117㎢의 관타나모만 해군기지(Guantanamo Bay Naval Base)는 쿠바 속 미국 땅으로 불린다. '기트모'(Gitmo)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는 뉴욕 맨해튼 크기의 이기지는 카리브해 지역 함대의 전략 거점이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이 해군 기지의 일부분.
미 해군 기지가 쿠바의 심장부에 세워진 계기는 18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당시 쿠바를 식민지배하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고 기지를 세운 것. 이후 쿠바가 독립하자 미 정부는 1903년 2월 쿠바 초대 대통령인 토머스 에스트라다 팔마와 연간 2,000달러에 상당하는 미 금화를 내는 조건으로 관타나모에 대한 임대협정을 맺는다. 34년에는 사용료를 연간 4,085달러로 인상하며 양국이 모두 동의해야만 협정을 파기할 수 있도록 불평등 조항을 삽입한다. 59년 쿠바혁명으로 집권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심장에 꽂힌 단검'인 관타나모 기지 반환을 요구하며 사용료 수납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관타나모에 공을 들이는 것은 플로리다주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위치, 작전을 펼칠 때 미 해군의 행동 반경을 크게 넓혀 주는데다 쿠바를 직접 견제할 수 있는 교두보로서도 군사적 가치가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2년 처음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20명을 수용한 '캠프 X레이'의 천장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수감자를 항상 X-레이로 감시하기 위해서다. 2002년 4월에는 2,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 델타'가 완공돼, 이를 대체했다. 캠프델타는 현재 7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캠프 1~3은 예비용으로 남아있고 캠프4는 수용소 규칙을 잘 따르는 수감자를, 캠프5와 캠프6은 주로 테러 용의자를 수용하는 시설로 알려져 있다. 캠프7엔 9·11 테러 용의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등 미 중앙정보국(CIA)이 가장 위험한 인물로 분류한 이들이 수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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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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