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웨이'의 성실·신뢰·인내자세 망각 아쉬워

2011. 4. 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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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을 창립한 고 이희건 명예회장 추도식이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20층 강당에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추도식에서는 신한사태 이후 처음으로 신한지주 라응찬 전 회장, 신상훈 전 사장,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등 신한금융의 '빅3'가 공식 대면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의도하기라도 한 듯 지난달 21일 한동우 신임회장 취임 직전 별세한 것에 대해 신한금융 안팎에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과연 고인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빅3는 화해할 수 있을까. 고 이 명예회장의 장손녀로 임종을 지켰던 이훈 씨(40ㆍ일본명 히라타 가오루)를 만나 고인의 임종 전 상황과 그가 전하려던 메시지를 들어봤다. 이 회장은 말년에 뇌경색으로 의식이 혼미했다. 2009년 초부터 병세가 악화해 별세하기 전에는 가족만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그 가족에 신한 빅3가 포함돼 있었다. 이씨는 "할아버지는 라 전 회장 등 세 분을 항상 '우리 효자들'이라고 불렀어요. 아버지와 삼촌들보다 세 분을 더 아끼셨죠"라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2일 신상훈 전 사장 고소로 촉발된 신한사태를 모르는 채 별세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씨에 따르면 이 회장은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할아버지는 별세 직전 한 달여를 제외하면 대체로 정신이 맑은 편이셨다"고 전했다. '세 효자'가 심상찮은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11월께 할아버지가 갑자기 비서에게 '첫째(라 전 회장)한테 전화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한참 통화를 하더니 끊고는 '이번엔 둘째(신 전 사장)와 연결해라'고 말씀하셨어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다투지 말고 잘 지내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전해 들었어요." 가족들은 이 회장이 이전투구로 치닫고 있는 신한 사태를 낱낱이 보고받게 되면 병세가 더 악화할 것을 우려했다. 신한 측이 몇 차례 공식 방문을 시도했으나 차단했다.

이씨의 회고다. "할아버지는 항상 신한이 성장하는 걸 보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할아버지 건강이 괜찮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을지 의문이에요." 한때 일본 최대 신용대부조합을 운영하던 고 이 회장은 조합 파산으로 말년에 곤경을 겪기도 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신한 본사를 들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라 전 회장 등은 이 회장을 극진히 모셨고 문제가 됐던 고문료도 현금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그는 여비 정도만 받고 나머지는 '신한을 위해 쓰라'며 돌려줬다고 한다.

이씨는 "신한 사태와 관련해 서울지검에 불려가 3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았어요. 검찰 조사를 통해 고문료 횡령 의혹까지 야기된 전말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고 밝혔다.

이씨가 전한 임종 순간이다. "3월 20일 급히 연락을 받고 일본으로 가 중환자실에 계신 할아버지를 봤어요. 말씀은 하지 못했지만 손녀들이 "할아버지, 숨을 쉬세요"라고 하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으로 반응을 보이셨어요.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신한금융의 주주총회 직전 숨을 거두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믿어요. 신한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할아버지만의 방식이었다는 느낌을 선명하게 받았습니다."신한 분쟁은 여전히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신한의 현실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씨는 답변 대신 이 회장이 88세 생일을 맞아 친지들에게 나눠준 수정 구슬을 꺼내 보였다. 자그마한 비단 주머니에 들어 있는 직경 1cm 크기의 수정구슬 10여 개에는 성(誠), 신(信), 인(仁)이라는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성실, 신뢰, 인내를 뜻해요. 할아버지가 지금 신한 임직원이 가슴에 새기길 바라는 말씀도 바로 이것일 거라고 믿어요." 이씨는 고 이 회장 장남인 이승재 전 신한종합연구소장의 첫째딸로 2002년 한국으로 건너올 때까지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 아들만 셋을 두었던 이 회장은 그를 딸이라 부르며 공식행사나 사적 만남에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여자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3년여 동안 고교 교사생활을 했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폴란드인 야코프 씨와 2006년 결혼했다. 이씨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소재로 쓴 단편소설집 '칠석(七夕)'을 펴내 각별한 혈육의 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故 이희건 회장은 누구 지난 3월 21일 향년 95세로 별세한 고 이희건 명예회장은 1917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6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 돈을 벌려고 혼자 일본으로 건너가 단순 노무자 생활을 하면서도 주경야독해 메이지(明治)대학을 졸업하고 오사카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30세 때 공제조합을 만들어 동포사회 리더로 떠올랐다. 1955년 동포 상인들을 위해 오사카 흥은이란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20여 년 만에 일본 최대 조합으로 키웠다. 1974년 '재일한국인 본국투자협회'를 통해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했고 이것이 모태가 돼 1982년 신한은행이 태어났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갑내기 죽마고우라는 것도 신한은행 설립의 동기가 됐다. 1985년 신한증권, 1990년 신한생명보험, 1991년 신한리스 설립을 주도하면서 2001년 금융지주회사 출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100억엔 모금 운동을 해 한국 정부에 기부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도 '모국송금운동'을 주도해 무궁화 훈장을 받았다. 2000년 대판흥은이 파산해 말년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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