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지도 속의 백두산 왜 점점 강조됐을까

18세기 후반 채색 필사본 지도집인 '여지도(輿地圖)'(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에 수록된 함경남·북도 지역을 한 장에 그린 함경도(咸鏡道) 지도(사진)를 보면 흰색으로 칠해진 대택(大澤·천지)을 둘러싼 백두산이 실제보다 더 위쪽으로 독립된 공간에 묘사돼 있다. 이와 함께 1712년(숙종 38) 분수령에 세운 정계비(定界碑)는 비석의 형태만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일대를 두른 목책에는 '책문(柵門)'이라 표기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북관장파지도(北關長坡地圖·국립중앙도서관 소장)'도 백두산을 흰색으로 칠해 민족의 영산(靈山)으로서 신성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장백산으로 경계를 이루는 무산 이북 지역을 그린 채색 필사본 지도에서 백두산과 천지는 왼쪽 상단에 위치하며 그 남쪽에 정계비와 목책이 그려져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이하 한중연)은 1910년 이전에 제작된 고지도에 묘사된 백두산의 모습을 통해 영토의식을 살펴본 '고지도와 사진으로 본 백두산'(한중연 출판부)을 최근 발간했다. 한중연의 이서행 부원장과 정치영 교수가 엮은 책은 백두산이 기록된 각종 지도 중에서도 의미가 특별하고 지도로서의 자료적 가치와 제작 수준이 높은 지도 80여점이 간략한 해제와 함께 수록돼 있다. 백두산이 기록된 지도를 ▲세계 및 동아시아 지도 ▲조선전도 ▲도별도 ▲군현도 ▲관방지도로 분류해 실었으며 지도마다 원도와 백두산 부분을 확대한 부분도, 그리고 원도에서 부분도의 위치를 표시한 색인도 등 세 가지를 싣고 설명을 붙여 고지도에 대한 이해를 돕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백두산의 사계를 찍은 사진도 실려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9개 기관에 1200여종의 고지도가 산재해 있다. 백두산은 거의 모든 유형의 고지도에서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로 1402년 권근·이회 등이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에도 이름이 작은 글씨로 등장한다. 16세기 중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팔도총도(八道總圖)'부터 대한제국 때인 1907년 제작된 '대한신지지부지도(大韓新地志附地圖)'까지, 책에 수록된 백두산 지도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조선 후기 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백두산이 더욱 강조돼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초기엔 대개 독립된 산봉우리로 묘사됐던 백두산이 18세기 이후에는 다른 산과 분명하게 구분되도록 강조돼 묘사되고 백두대간도 뚜렷하게 표현된다. 특히 18세기 중반 이후에 그려진 지도에는 천지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백두산 정계비가 반드시 포함돼 있다. 이는 백두산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결과란 게 책을 엮은 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 부원장은 서문에서 "중국이 2004년 백두산을 '중국의 10대 명산'에 선정하고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하려고 하는 등 백두산에 대한 중국의 입지를 강화해가고 있다"며 "여러 방면으로 우리도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