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점의 '직장 잔혹사'] "여자는 좋은데.. 여자 동료는 무서워"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유모(남·33) 대리는 얼마 전 책상 앞에 인터넷에서 찾은 '달마도' 이미지를 붙여놓았다. '달마도'가 남성의 양기(陽氣)를 보호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다음이다. "회사에 여자 동료들이 많은데 그 속에서 내 양기를 뺏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 대리의 회사에 여자는 70여명. 남자는 30여명으로 절반밖에 안 된다.
이모(남·29) 과장은 자꾸 지각을 하는 여자 후배를 나무랐다. 그날 저녁 우연히 보게 된 그 후배의 메신저 대화창. '우리 과장XX 또 열폭(열등감 폭발)했다.'이씨는 "남자 후배였다면 같이 담배 한 대 피우며 금방 잊었을 텐데 여자들은 오래 담아두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팀은 5명. 팀장인 그를 빼고 모두 여자다.
아직은 남성 중심적이라는 한국 사회지만 직장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남성들도 있다. 패션·화장품업체, 일부 홍보대행사처럼 여자가 다수인 직장에 다니는 남자들 얘기다. 이들에게 여자의 마음은 이해하기 어렵고, 여자들의 대화는 '외계인의 그것'처럼 생소하다. 오죽하면 "남자 많은 곳의 여자는 '공주'가 되고, 여자 많은 곳의 남자는 '바보'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 "여자들 대화 끼려고 드라마 공부해요"
유통업체 최모(29) MD는 "어제 누구누구 나오는 ○○ 드라마 봤어?"로 시작되는 점심시간 대화에 끼기 위해 주말마다 드라마를 챙겨 본다. 그의 부서에 남자는 4명. 여자는 30명이 넘는다. 그는 "직장생활의 활력소인 점심시간에 아무 말도 못 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좀 낫다"고 했다. 최씨는 "기혼 여성 동료들이 남편 흉보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남편 입장인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성 직원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패션업체의 김모(34) 과장은 "'○○○씨 참 예쁘다'고만 해도 성희롱 손가락질을 받거나 뒷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런 어려움은 '남자 상사'들도 마찬가지다. 구모(남·50) 부장은 "여자 후배들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온 날 얼굴에 다 드러난다"며 "이런 날은 후배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여성 후배들은 업무상 지적을 자신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好不好)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도 했다.
◆ 홍일점은 공주, 청일점은 머슴?
서울대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여성은 관계 지향적인 성향이, 남성은 목적 지향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청일점들이 홍일점에 비해 더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여성은 금전문제, 차량사고 등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면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반면 남성은 그러기보다는 "돈 빌려줄게" "내 차 대신 써"라는 식으로 현실적 해결책부터 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남성의 건조하고 일방적인 의사소통 습관이 여성이 다수인 조직 안에서의 대화와 교감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서강대성평등상담실 변혜정 교수는 "홍일점은 남성들이 배려해주지만 청일점은 배려를 받기보다는 힘든 일을 도맡게 되기 때문에 직장생활에 더 애로가 많다"고 했다. "남성이 어떤 조직에서 소수가 되면 자신이 머슴처럼 쓰인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교사만 숙직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 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적인 남자 될 필요는 없어
전문가들은 "여성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꾹꾹 눌러 쌓아놓지만 말고 그때그때 대화나 상담으로 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보대행사 김모(여·35) 차장은 "여자들은 울기라도 하면서 감정을 푸는데 남자 후배들은 그러질 못하더라"고 했다. 화장품회사의 박모(여·34) 과장은 남자 후배가 자신의 지적에 상처를 받은 사실을 그가 퇴사한 다음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내색을 안 하니까 괜찮은 줄 알았어요. 솔직히 표현해 줬으면 다음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얘기했을 텐데…."
그렇다고 여성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억지로 '여성적인 남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여성들은 그런 남자들을 부담스러워한다고 한다. 다만 동료에 대한 배려로서 '어떤 주제에도 관심을 갖겠다'는 열린 마음은 필요하다. 변혜정 교수는 "조직 안에서 성(性)에 따라 역할을 나누기보다는 성 구분 없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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