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화산 폭발史, 백두산은 폭발할까?

2011. 3. 10. 12:5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쇼핑저널 버즈] 백두산은 전과를 갖고 있다. 그래서 '백두산 폭발설'이 폭발력을 지닌다. 약 1천 년 전, 백두산에서 대규모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지난해 4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강도는 화산폭발지수(VEI) 4급이었다. 1천 년 전 백두산 폭발은 VEI 7급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79년 폼페이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보다 수십 배 더 강력했다. 이 폭발로 인해 발해가 멸망(926년)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 북단·만주 파괴, 지금도 마그마 엄청나다서기 900년대의 어느 날 백두산 천지의 분화구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산 폭발이 시작된다. 마치 샴페인 뚜껑이 따진 듯 마그마와 가스로 이뤄진 거대한 기둥이 순식간에 대류권을 뚫고 성층권까지 치솟는다. 하늘 높이 치솟은 화산재 기둥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땅을 향해 붕괴되기 시작한다.

붕괴된 파편들은 백두산 천지를 중심으로 마치 화로에서 연기가 흘러 넘치듯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화산 폭발로 분출된 파편들이 고온의 가스와 함께 화산의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화쇄류'가 시작된 것이다.

700∼800도에 달하는 거대 화쇄류는 최대 시속 150㎞의 속도로 질주한다. 강풍이 나무를 한쪽 방향으로 쓰러뜨리고 그 위로 뜨거운 퇴적물이 두껍게 쌓인다. 화쇄류는 동식물 생태계를 절멸시켜 100㎞ 이상 먼 곳까지 단숨에 생명체가 없는 화산재의 백색사막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편 거대 화쇄류 상공에 머물던 화산재 구름은 때마침 불던 강한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확산된다. 초속 120m(시속 400㎞)의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는 화산재 구름은 3∼4시간 뒤 동해를 넘어 일본 열도 북부에 도달한다.

20세기 후반 주로 일본의 화산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이 땅속 지층을 탐사하면서 재현한 백두산 대폭발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역사상 최고,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데 백두산 대폭발은 인류의 역사 시기, 다시 말해 지난 2000년 이래 최대의 폭발이었다.

화산 폭발시 분화구에서 대기 중에 분출되는 파편들을 통틀어 '테프라'라고 하는데 10세기 백두산 폭발에서 분출된 테프라의 부피는 100㎦로 추정된다. 100㎦는 0.002㎦ 부피의 잠실 주경기장 5만개를 합친 크기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남한 땅 전체를 1m 두께로 뒤덮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동북아 어느 지역의 기록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백두산에서 1000여 년 전 그토록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매우 드문 이유다.

백두산이 영원히 잠자는 산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마그마를 땅속에 품고 있는 화산이라는 사실을 비롯해 백두산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상당 부분 깨트리고 바로 잡아준다.■ 발해 초토화시킨 백두산 화산 미스터리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은 그 규모가 놀랍기도 하거니와 앞서 말했듯 고문헌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기에 미스터리한 사건이기도 하다. 정확한 폭발 시기에 대해선 지질학자, 화산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발해가 멸망하던 시기(926년)와 엇비슷한 것으로 추정됐다.

거란의 침략으로 일순간 망해버린 것으로 기록된 발해 멸망 사건의 배후에 혹시 백두산 대폭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일순간에 땅속으로 묻히며 멸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일본 화산학계의 권위자로서 일본에서 발견된 독특한 화산재 단층을 분석, '백두산-도마코마이 화산재'라고 이름붙인 마치다 히로시는 이런 가설을 제시했다.

이에 대한 각국 역사학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에 관한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다의 가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어진 후속 연구에서 백두산 대폭발이 발해 멸망연도인 926년보다 수십 년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들이 나왔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이 발해 멸망과 연관이 있든 없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일부학자들은 백두산 대폭발을 멀리서라도 목격했던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한민족뿐 아니라 백두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상했던 민족의 사가들이 백두산의 대폭발을 흉사(兇事)로 여겨 차마 언급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당시 백두산 일대의 정세가 혼란스러워 꼼꼼한 역사 서술이 이뤄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록이 있는데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 땅이 기록해둔 1000여 년 전 역사를 왜 인간이 기록하지 않았는가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반면 백두산의 화산폭발을 기록한 사실들은 조선시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기록을 보면 1413년, 1420년, 1597년, 1668년 그리고 1702년에 천지를 중심으로 화산회와 가스를 내뿜었거나 이를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이 있다.

실록을 찾아보면 "세종 2년(1420년) 5월 천지의 물이 끓더니 붉게 변했다. 소떼가 크게 울부짖었고 이러한 현상은 열흘 이상 지속됐다....검은 공기는 인근지역으로 가득 퍼졌다"라고 적혀있다.

이어 "현종 9년(1668년) 4월에 한양과 함경도 등 일대에 동시에 검은 먼지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고 적혀 있다. 또 "숙종 28년(1702년)6월 한낮에 함경도 지역 일대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린내가 나는 황적색 불꽃이 날아왔다....같은 날 인근 지역 현성에서는 연기가 가득한 안개가 갑자기 북서쪽 지역에서 몰려들어...사방에 생선 썩는 냄새가 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눈송이 같이 날라 다니던 재는 1촌(약 3cm) 두께로 쌓였고, 재는 마치 나뭇조각 같았다"고 적혀있다. 백두산은 이후 1903년 마지막으로 분화한 후 100여 년 넘게 화산활동을 멈추었다.■ 아이슬란드 추가 화산 폭발 우려도한편 올초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로 유럽 전역의 항공 교통이 일주일째 마비시켰던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아이슬란드 역사상 이번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은 세 번째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쌍둥 화산인 카틀라의 경우 10차례가 넘게 폭발한 바 있다. 활화산인 카틀라는 930년 이후 16차례나 폭발했으며, 1755년에는 격렬한 폭발로 화산재가 스코틀랜드에까지 내려앉았다.

또 1918년 폭발 때는 아이슬란드 미르달스요쿨 빙하의 얼음을 산산조각 내 날려보냈으며, 빙하가 녹아 내리면서 아마존, 나일, 미시시피강의 수량을 합친 것에 견줄 만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카틀라가 10세기 이후 평균 1세기에 두번 폭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학자들은 카틀라의 폭발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과거 전 세계 각지의 화산 폭발 역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1783년 발생한 라키 화산 폭발로 기근이 와 아이슬란드 인구의 25%와 가축의 절반이 사라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산 폭발은 서기 79년 8월 24일 지중해 연안 베수비오 화산 폭발이다. 이 화산 폭발로 로마 귀족들이 휴양지로 즐겨 찾던 고대 도시인 폼페이가 사라졌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는 화산 분출물에 덮여 자취를 감췄으며 돌과 흙이 뒤섞인 화산재의 두께는 최대 6m에 이르렀다.

16세기 베수비오 화산 인근에서 라틴어가 새겨진 대리석 조각과 옛 로마 시대 수도관이 발견되면서 사라진 도시에 대한 전설이 역사로 살아났으며, 고대 도시의 약 30%가 아직 땅속에 남아 있어 발굴 작업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빙하기가 도래해 인류 전체를 위협했다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스탠리 앰브로즈 교수 등 전문가들은 약 7만3000년 전 수마트라섬 토바 화산 폭발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6년 동안이나 태양을 가려 지구 기온이 뚝 떨어져 1,800년간 빙하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화산재 피해는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인한 것이었다. 탐보라 화산 폭발로 다음해 6∼8월 유럽에 눈과 서리가 내리는 등 극심한 냉해를 불러왔다.

20세기 들어서는 필리핀에서 지난 1991년 폭발한 피나투보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8500킬로미터 떨어진 아프리카 동부 해안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피나투보 화산재에 포함된 황산 분자는 이후 2년 동안 지구의 온도를 1도 가량 낮출 만큼 후폭풍이 컸다.

한편 한반도에서도 화산 폭발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유럽, 동남아와 같은 대규모 피해는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고 있다. 다만 939년 1월 발생한 백두산의 화산 폭발 때문에 발해가 멸망했다는 설이 학자들 사이에서 나온 바 있다.

[ 관련기사 ]▶ 원자력 비중 80%, 프랑스는 왜 전기가 부족할까?日, 택시도 위성전화로 재난 대비 훈련한다승강기 안전사고, 정책없인 예방도 없다美 정어리 떼죽음 원인은 자연재해

이버즈 트위터에 추가하기

이정직 기자(news@ebuzz.co.kr)

'IT 제품의 모든것'-Copyright ⓒ ebuzz.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