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 노린 '미두시장 영웅' 반복창, 日에 철저히 놀아난 사연은?

뉴스엔 2011. 2. 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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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조연경 기자]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돈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1920년대 '미두시장'을 떠들석하게 했던 반복창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미두시장의 정식명칭은 '미두취인소'. 이 곳은 미곡의 품질과 가격의 표준화를 꾀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쌀과 콩을 현물 없이 10%의증거금만 가지고 사고 팔던 곳으로 오늘날의 선물거래에 해당하는 '미두거래'가 성행했다.

반복창은 이 미두시장에서 명성을 날리던 일본인 아라키의 집에 들어가 하인으로 일하다가 1918년 19살의 나이로 시장 대리인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그는 1차 대전 직후 폐쇄 됐다가 조선 총독부의 자본금 100만원으로 재개장된 미두시장에 500원을 투자하며 제대로 뛰어들었다. 팔면 파는대로 사는대로 이득을 얻게 된 반복창은 단 1년만에 40여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축적해 '미두계의 패왕'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또 그는 조선팔도에서 미의 여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김두홍과 결혼까지 성공해 승승장구 하는가 했다.

하지만 이듬 해 갑자기 패측을 시작한 반복창은 적은 손해를 한 번에 만회하기 위해 한꺼번에 투자, 결국 2년만에 전재산을 순식간에 탕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혼과 사기사건에 휘말려 서른 살에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된다.

알고보니 이러한 반복창의 실패 뒤에는 바로 일본이 있었다. 사실 미두시장은 조선인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뺏을 수 있도록 일본이 설립한 것이었다.

반복창이 성공하자 많은 조선인들이 제2의 반복창을 꿈꾸며 미두시장에 투자했고 일본은 이 돈을모두 쓸어갔다. 또 천하의 반복창이 실패를 거듭하자 일본은 이 돈까지 모조리 빼았아 갔던 것. 재주는 반복창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 불린 것이다.

이를 몰랐던 반복창은 돈을 다시 벌기 위해 도박에 까지 빠지며 정신 이상 증세까지 생겨 마흔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한편 반복창이 죽은 후 20일 만에 미두시장은 조선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조연경 j_rose1123@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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