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곳을 바라볼 때.."그때 가족이 완성되더라"

김윤덕 기자 sion@chosun.com 입력 2011. 2. 27. 00:00 수정 2011. 2. 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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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스'展 여는 사진작가 이선민

결혼과 동시에 여자는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애 낳고 직장도 다녀야 한다면 그 성향은 더욱 격해진다. 기세가 한풀 꺾이는 시기는 대개 결혼 10년 전후해서다. 한국식 가부장제의 산물이라 몰아붙였던 남편의 뒷모습이 문득 안쓰럽게 느껴지고,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란 울타리를 튼실하게 지켜가고픈 소명이 새록새록 솟는 것이다.

중학생 딸,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사진작가 이선민(43)이 '엄마와 딸'의 일상에 맞췄던 카메라 앵글을 '아버지와 아들'로 옮긴 것도 그맘때다. "4년 전 가을이었죠. '트윈스(Twins)'란 타이틀로 386세대 엄마들과 그 딸들이 사는 풍경을 찍어 전시했는데 주변에서 물어요. '왜 아빠는 없어?' 나의 시선이 늘 여자에게만 꽂혀 있었고, 남편과 아빠들은 액세서리로만 다뤘다는 자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왜 아빠는 없어?"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을 담기 위해 그녀는 '같은 남자'인 아들을 활용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서는 아버지. 함께 등산하고, 낚시하고, 캠핑하고, 배를 타는 실제 가족을 찾아나섰고, 어색하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아버지들을 삼고초려해 카메라 앞에 세웠다. 일몰의 대천 앞바다를 등진 채 카약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한 아버지와 아들, 땅거미 내린 오대산 중턱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운 아버지와 아들, 스키장 꼭대기에 눈보라를 맞으며 선 아버지와 아들, 이제 막 비행을 마치고 내려온 패러글라이딩 부자(父子)….

상식대로라면 연속촬영 기법 같은 걸 사용해 부자간 풍경을 자연스러운 스냅사진으로 찍었을 법한데, 이선민의 사진 속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같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제가 그렇게 주문했어요. 설정이죠. 카메라를 힘 있고 당당하게 바라봐달라 요구했어요. 아빠와 아이가 집 밖에서 뭔가 주도해 나가는 모습, 자랑스러운 일이니까요. 우리 집안 풍경이라는 게 늘 엄마가 중심에 있잖아요. 아빠와 아이들 모두 엄마에 의해 컨트롤되잖아요. 그런데 집 밖으로 나서면 운전대 잡는 것부터 아빠가 주도권을 잡아요. 캠핑 준비도 그렇고, 요리도 그렇고, 일단 밖으로 내몰면 아버지의 존재감과 포스(force)가 강력해지지요. 멀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에게 아이들이 다가서고 쉽게 교감하고요. 집 안과 밖의 차이일 뿐인데 '관계'에 생기는 변화는 굉장히 컸습니다."

집 밖으로 남자들 몰아내기

실제로 모델이 되어준 아버지와 아들 중에는 야외활동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회복한 경우가 꽤 있다. "자랄수록 점점 말이 없어지고 아버지와는 말 그대로 대화단절이라, 이 아버지,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뭘까 고민하다 패러글라이딩을 선택했죠. 그렇게 무뚝뚝하던 아들이 주말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니, 장비 구입에 투자한 목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며 웃으시데요."

낚시광인 아버지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혼자만 다니기 뭣해서 아이들 데리고 부산서 배 타고 대마도까지 갔었대요. 하필 밤새 눈앞에 벼락이 떨어지고 풍랑이 이는데 낚시는커녕 뜬눈으로 텐트를 지키며 날밤을 새웠다네요. 다행히 이튿날 평온한 아침이 밝아왔고, 벼락 치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자고 난 아이들이 '와~ 잘 잤다' 하고 나오는데 가슴이 뭉클하더래요. 날자연 속에서 극대화된 가족애를 맛본 셈이죠."

아버지와 아들뿐 아니다. 야외에서의 취미생활을 가족이 공유하게 되면 엄마와 딸까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고, 그러면서 결속이 굳건해진다. "사진 작업하는 동안 남편 직장 때문에 6개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저희 네 식구가 거의 매주 캠핑을 다녔어요. 텐트 치고, 불 피우고, 밥해 먹고, 잠자고, 다시 이동하고…. 서울에선 식구들 모여 저녁 한 끼 먹기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주말에도 집에 틀어박혀 보드게임만 하던 부자와 모녀가 거대한 자연의 품으로 겁 없이 들어갔던 거죠."

가족은 후천적인 쌍둥이

꼭 야외가 아니어도 좋다. 고등학생 아들과 클래식 듣고 품평하는 걸 취미로 공유하는 아버지의 사진에도 돈독한 애정과 신뢰가 흐른다. "고3인데도 방에 만화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한쪽엔 또 드럼이 놓여 있었죠.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부자간 오가는 대화가 환상적이에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백건우 들어볼까요?' 했고,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자 둘 다 눈을 감고 진지하게 감상하더군요. 연주가 끝나자 아들이 이래요. '역시 백건우는 ○○년도 음반이 최고죠?' 다 큰 아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부러웠지요."

2월 25일부터 두 달간 서울 홍대앞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아버지와 아들' 전시의 제목은 '트윈스'다. 4년 전 '엄마와 딸' 전시 때와 같은 이름이다. "가족은 결국 후천적인 쌍둥이 아닐까요. 얼굴이 닮은 것뿐 아니라 취미와 취향, 욕망까지도 대물림될 확률이 높지요. 대자연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성장하듯 나와 내 가족의 잉태와 순환, 성장과 스러짐을 카메라에 담아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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