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에서 기업가로] (29) 유영호 화우테크놀러지 대표이사

이유범 2011. 1. 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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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 화우테크놀러지(이하 화우테크) 대표이사는 경영자인 동시에 아이디어 넘치는 제품 개발자다. 그가 경영만 관여하는 보통의 경영자였다면 화우테크는 컴퓨터 자동화 공작기계(CNC)를 생산하는 장비회사에만 머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 대표가 제품 기획과 개발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회사 수익에 치중하기보다는 우수한 제품 개발에 전폭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회사로의 전환은 물론 선두권 업체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도전'과 '정도 경영'이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하는 유 대표. 그의 도전과 비전 이야기를 경기 부천 화우테크 본사에서 들어봤다.

■ 문제아에서 모범생으로

유 대표는 어린 시절에 대해 묻자 주저 없이 '문제아'였다고 대답했다. 공부는 안하고 매일같이 싸움하며 놀러 다닌 개구장이가 자신이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어울렸던 친구들도 흔히 말하는 '노는' 친구들이었다고 유 대표는 기억했다. 그러던 그를 바꿔놓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이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교내 문제아 중 하나였던 유 대표를 설득, 문제아에서 모범생으로 탈바꿈시켰다.

유 대표는 "선생님은 10여 년 전 돌아가셨지만 부모님 다음으로 큰 은혜를 입었다"며 "결코 잊을 수 없는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 같은 그의 변화는 결국 성과로 이어져 1979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유 대표가 들어간 철학과는 학내에서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한 학과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데모에 참여하면 자격이 박탈되는 ROTC후보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학년때까지 몰래 데모에 참가하기도 했다.

■ 힘들었던 취업, 우연한 창업

대학 졸업과 장교로 군대 생활을 마친 유 대표에게 사회는 녹록지 않았다.

당시 노조가 태동하던 시점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운동권 출신이 많은 철학과 졸업생의 원서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기업에 원서를 넣으려 했지만 원서조차 나눠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ROTC출신을 선호한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에 어렵게 취업했다. 그후 3년여가량 유 대표는 취미였던 검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사회생활의 단맛을 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검도 연습 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가 됐다. 병원침대에서 누워 있던 유대표는 문득 평범한 직장 생활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퇴원 후 회사에 사표를 던졌고 서울 청계천에서 기계 관련 일을 했던 작은형 가게 3층 다락방에서 기술을 배우며 조그만 회사를 차렸다.

■ 자금난, 기술개발로 극복

사업초기 그는 독일에서 연구소용 CNC를 수입해 국내 연구소에 판매하는 일을 했고 틈틈이 관련 설계를 독학하면서 사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늘 돈이 발목을 잡았다. 1993년 자체 CNC를 개발했고 서울 영등포 양평동으로 공장을 옮겼지만 월세를 내기 힘들 정도로 상황은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까지 닥쳤다. 돈줄이 말라버리면 자칫 부도가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당시 국내 한 방송사에서 유망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방송을 보고 투자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결국 투자자들로부터 12억원을 모았고 사업에도 숨통이 트였다.

그후 경기 부천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할 수 있을 만큼 회사도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유 대표는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했을 때가 창업하면서 가장 기뻤던 시기로 집을 샀을 때보다 더 좋았다"며 "아마도 그때 맛봤던 기쁨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 LED조명으로 세계 누빈다

CNC사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한 1998년 유 대표는 국내 한 회사로부터 43.18㎝(17인치) 모니터에 사용되는 백라이트유닛(BLU)용 도광판을 공급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CNC를 이용해 도광판에 세밀하게 선을 그어 빛을 균일하게 퍼지게 하는 특허를 화우테크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대표는 이 같은 제안을 거절했다.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되긴 싫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광판 기술을 이용해 광고용 라이트 패널을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결국 자사 특허를 이용한 라이트 패널 제작사업에 뛰어들었다.

2000년 라이트패널 개발에 성공한 유 대표는 패널에 사용되는 광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기존 라이트 패널에 사용되던 광원은 냉음극형광등(CCFL)이었는데 두께가 두꺼워 예쁜 디자인이 쉽지 않다는 게 단점이었다. 이때와 맞물려 부각을 받은 것이 LED였다.

이미 CNC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던 유 대표는 LED라이트 패널에 주목하고 수익의 대부분을 쏟아 부으며 개발에 착수했다. 2005년 상장하면서 벌어들인 20억원의 금액도 개발비에 재투자했다.

2006년 LED라이트 패널 개발에 성공한 그는 광원인 LED가 조명으로도 사용가능하다는 판단에 LED조명사업에도 발을 담갔다. 당시 LED는 표준도 정해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무리한 영역 확장이라고 내부 임직원들이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LED가 조명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현재 화우테크는 CNC와 루미시트에서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다. 다만 LED조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성과가 더 좋았다. 국내의 경우 아직 정책적 지원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하고 있다. LED조명 보급이 확대되고 있고 정부도 밀고 있어 성장성은 충분하다는 전망이다.

유영호 대표는 "세계 일류상품은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최고인 상품"이라며 "이 같은 상품을 만들기 위한 화우테크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사업파트너들로부터 꾸준한 신뢰를 쌓아 '세계 1위 LED조명 기업'이란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leeyb@fnnews.com이유범기자

■유영호 화우테크놀러지 대표이사 약력 △53세 △충남 논산 △교보생명 입사(1985년) △화우기계 설립(1989년) △화우테크놀러지㈜로 법인전환(1999년) △차세대 세계 일류상품 및 생산기업 선정(2007년) △무역의 날 '3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2008년) △iF 디자인상/굿디자인상 수상(2008년) △대한민국 녹색기후상 기업부문 우수상 수상(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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