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려야 교사 권위 산다?
언론 "체벌금지 때문에 교권추락"…곽노현 교육감 '때리기'
[미디어오늘 김상만 기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체벌전면금지 조치 때문에 교사폭행 사건이 급증하는 등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학교 체벌 부활을 부채질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교권침해 기사를 문화일보와 헤럴드경제 등이 받아쓰더니 급기야 정치권에서 학교 체벌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연합뉴스는 24일 < 물건 던지고 차 망가뜨리고…끝모를 교권추락 > 제목의 기사에서 체벌 금지 후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무시한 사례가 줄을 잇고 그 정도도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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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남녀공학 중학교 교실에서 학생이 여교사를 상대로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근거로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 조치를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이 동영상은 경찰수사 결과 4년 전 발생한 일로 체벌 금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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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는 기사에서 △여자 담임선생님의 배를 (발로) 차고 도망가면서 '때리려면 때려봐. 신고할테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꾸중한 교사의 차를 송곳으로 뚫고 동전을 던져 차 유리를 깨거나 △치마가 긴 학생에게 주의를 준 다음날 부모가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고 수표를 내미는 등 교권침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밝힌 교권침해 사례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교권침해 상담자료에 기초한 것이었다.
연합뉴스의 이 기사는 석간인 문화일보가 그대로 받아쓰면서 증폭됐다. 특히 문화일보는 교권이 무너진 원인의 책임자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을 직접 겨냥했다.
문화일보는 24일자 6면 < 여교사에 "어쩔래, XX야"…학부모는 교사 뺨 때리고 수표… / 교권 더 떨어질 곳도 없다 > 기사에서 "최근 들어 일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 방침을 밝힌 지난 9월 이후 학교 현장의 교권 추락 현상이 두드러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와 문화일보의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학생들에 의한 교사폭행이 급증하는 등 교권이 추락하고 있으며, 원인은 일선 학교의 체벌전면금지 방침 때문이고, 따라서 교권추락의 책임은 전적으로 체벌을 금지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기사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한데 사실전달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교권추락의 원인이 체벌 전면금지 방침 때문이라고 주장하려면 이 조치가 강제조항으로 실시되기 시작한 11월 이후 교사폭행 사건이 이전과 비교해 얼마나 증가했는지 따져야 하는데 기사에서 제시된 폭행사례는 체벌 전면금지 조치 이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체벌 금지 이전에 발생한 사례를 갖고 그 원인이 체벌 금지 때문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치마가 긴 학생에게 주의를 주자 다음날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를 폭행하고 수표를 내밀었다는 서울의 한 중학교의 사례는 지난해 9월 전교조 교권상담실을 통해 들어온 전화상담 사례다.
심각한 것은 해당 자료를 최초로 받은 언론사 기자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24일 "연합뉴스 기자에게 자료를 넘겨주면서 해당 자료는 체벌금지 이후 수집한 것도 아니고, 따라서 교권침해 원인이 체벌금지 때문이라는 근거자료도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전했다"며 "이 자료는 이런 사례가 교단에 있었다는 정도만 말해줄 뿐"이라고 말했다.
교총 관계자도 "체벌 금지가 상당부분 교권 침해와 인과관계에 있다는 게 교총의 입장"이라면서도 "언론사에 제공한 자료가 올해 11월 이후 발생한 피해 사례들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들이 교사 폭행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그 원인의 책임자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을 지목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수언론의 '진보 교육감 때리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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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12월24일자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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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일부 언론에서 체벌 전면금지 이후 황폐화된 교권침해 사례로 꼽은 '여교사 성희롱 영상' 역시 경찰조사 결과 4년 전인 2006년 7월에 벌어진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도 서울이 아닌 경남 김해였다. 결국 곽 교육감의 체벌 금지 조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셈이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최근 교사들을 희롱하거나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도 않고 체벌 금지가 원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일부 언론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마저 진보교육감을 흠집내기 위한 이념투쟁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대표는 24일 당5역 회의에서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학생의 교사 폭행과 각종 희롱사건과 관련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 금지를 시행한 후 교육현장이 엉망이 되고 있다"며 "체벌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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