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영화' 닮은 이명박 정부 날치기 뒤처리

2010. 12. 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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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언론에 전해진 청와대 비밀회동…여당 지도부도 "보이지 않는 손" 우려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사퇴 쇼는 조폭영화 흉내 내기이다. 고흥길 의장의 행동은 마치 보스가 저질러 놓은 잘못을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똘마니들의 충성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고흥길 정책위의장 사퇴를 '조폭영화'에 비유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출신 여권 고위인사가 어쩌다가 조폭영화에 뛰어들게 됐을까. 사건이 벌어진 지난 주말, 즉 이명박 대통령이 외국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12월 11일로 돌아가 보자.

동아일보는 12월 13일자 1면과 3면 기사에서 중요한 '팩트'를 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귀국하던 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정책위의장, 원희룡 사무총장 등 당 핵심 관계자가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명박 대통령과 비공개 만찬을 갖고 한나라당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을 논의했다는 게 동아일보 설명이다.

▲ 동아일보 12월 13일자 1면.

청와대 비밀회동에서 대책회의를 연 바로 다음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우선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한나라당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형님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고향 후배이자 포항지역 국회의원인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혔고, "제 사퇴로 이 사태가 일단락 되기를 바라며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병석 의원은 '형님예산' 비판을 반박하면서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 형님예산이라는 이름으로 특정지역에 대한 예산특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면서 "'형님예산'이라는 이름의 정치공세로 나와 포항시민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사퇴로 이번 사태가 일단락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병석 의원은 형님예산 비판에 제동을 걸었다. 한나라당 당사에서 벌어진 연이은 기자회견은 12월 12일 벌어진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귀국 직후 청와대 비밀회동 다음날 벌어진 일이다.

권영철 CBS 선임기자는 < 한나라당은 왜 자중지란에 빠져드나? > 라는 기사에서 "이병석 의원은 자신의 기자회견이 '지도부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퍼즐이 맞춰지는 모습이다.

이병석 의원의 기자회견이 지도부 요청에 의한 것이라면 12월 11일과 12일 벌어졌던 일들은 별개의 사건이 아닌 연관성이 있는 사건으로 보인다. 청와대에서 당청 지도부 회동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 대책논의가 이뤄졌으며, 고흥길 정책위의장 사퇴와 이병석 의원 기자회견이 이어졌다는 시나리오다.

▲ 이상득(사진 오른쪽) 전 국회부의장과 박희태 국회의장. ⓒ연합뉴스

그런데 왜 고흥길 정책위의장일까.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사퇴한다는 소식을 한 언론은 < 속보 > 라며 긴급 타전했지만, 국민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건일까. 한나라당을 책임지는 안상수 대표나 원내사령탑인 김무성 대표도 아니고 왜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고 나섰을까.

정말로 그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일까. 야당에서 보스 보호를 위한 '꼬리자르기'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동 없는 사퇴 카드는 다시 한 번 국민을 우롱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아일보 보도처럼 청와대가 개입된 비밀 회동에서 수습책이 논의됐고 12월 12일 여당 정책위의장 사퇴와 포항 국회의원 기자회견이 열렸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모른 채 '적당히 정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제1야당 대표가 나서서 '독재 정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보수신문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형제에 불똥이 튈까봐 꼬리 자르기에 나서는 모습은 되레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오죽하면 여권 지도부도 고흥길 정책위의장 사퇴에 의문을 제기하며 '보이지 않는 손'을 공개 석상에서 거론하고 나섰을까.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예산 파동의 책임자로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이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그런 일각의 지적이 있다. 과연 당이 의원들의 중지를 모아 독자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지, 소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독자성을 잃고 끌려 다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어 "야당이 청와대를 물고 늘어지는 마당에 이 시점에 당청회동을 해서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했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한나라당의 지지는 국민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 지난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4대강 날치기 예산 무효 서명운동 및 촛불집회' 현장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출처-민주당

한나라당의 최근 모습은 대통령 형제를 보호하려다 집토끼, 산토끼 모두 놓치는 모양새다.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서 선거는 어떻게 치르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당의 지도부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더더욱 맹종의 대상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총선과 대선은 당이 치르는 것이지 청와대가 치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야당은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은 날치기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제가 얼치기 정권이라고 한다. 안보무능, 서민경제 파탄 정권, 민주주의 학살 정권에 이어서 이제 이명박 정권은 얼치기 정권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최후의 운명을 우리는 곧 목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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