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물<22>"오빠, 이상해요. 내가..!"

【서울=뉴시스】원작 박인권·글 유운하
◇제4화 곰탕 삼대<22회>
약간의 술기운이 남겨진 소영의 단내 나는 열기가 입가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타이밍은 적절했다.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386세대도 아니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정조(貞操)라는 말은 골동품이 돼 박물관에 진열되어질 단어가 돼 버린지 오래다.
성(性)에 대한 감정이나 욕구도 일종의 음식처럼, 허기질 때나 영양상의 필요로 즐겨 찾듯 몸이 원할 때 교류해야 할 정신과 육체의 아름다운 결합이다. 남과 여의 섹스는 서로 원할 때는 그 자체로 이상적이고 숭고하다.
적어도 하류의 제비 도(道)에는 그렇게 명시돼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소영의 심신은 달궈진 쇠가 찬 물에 담겨지기를 간절히 원하듯이 열정적이다. 이런 순간 제비는 절대 상대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오빠, 이상해요. 내가......!"
단내가 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그녀의 젖가슴에서 아프리카 초원에서나 들을 수 있음직한 북소리가 쿵쿵 들려왔다. 심장의 널뛰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몸은 가련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소영은 소위 성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였기에 막연한 두려움과 동경으로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류는 손끝으로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예고하는 일종의 신호였다. 비록 영정 사진이지만 망자가 보는 앞에서 손녀와의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꺼림칙하기보다는 부끄러웠다.
"너무…무서워…."
소영의 몸은 더욱 더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행위를 접하게 되자 그녀는 두려움에 숨을 죽였다. 하류의 손가락이 비단 뱀처럼 기어서 그녀의 젖가슴을 파고드는 순간에 소영은 "아하!"하는 신음과 동시에 그대로 까불어지고 만다.
"이런?"
실소가 튀어 나왔다. 결국 하류는 기절해 버린 소영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망자의 사진을 제 자리에 바로 놓았다. 망자도 웃고 있었다. 한바탕 사랑 놀음이 해프닝으로 마무리 돼 버렸다. 잠시 이성을 잃은 행동에 민망해 하는 소영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류는 백마강의 대물바위를 찾아갔다. 깊은 어둠속의 천년 암벽은 장엄하고 육중했다. 그 대물바위에서 하류는 옷을 벗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추웠지만 하류는 고대의식을 치르는 제사장이 돼 부여의 마지막 밤을 영험하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차가운 바위덩어리의 음기가 발바닥 아래 용천을 뚫고 제비의 칼인 회음을 통과해 정수리 백회에 이르기까지 뜨겁게 용솟음 쳤다.
"부여의 제비가 이제 대붕이 돼 날게 될 것이다!"
벌거벗은 나체로 음산한 골짜기의 바위덩어리 위에서 백마강을 굽어보는 하류는 정상인은 분명 아니었다. 광기(狂氣)에 휘감긴 대물인간은 이윽고 서리처럼 하얀 입김을 토해냈다. 뿌옇게 새벽 물안개가 강변 주변의 대물바위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류의 손가락이 안개 위에서 그림을 그려냈다. 거기 단 한 차례 스쳐 지나갔던 소녀의 영상은 환영이 돼 떠올랐다. 그 아스라한 환상은 하류의 벌거숭이 알몸을 휘감았다. 몰입된 경련이 폭죽이 돼 세포 하나하나에서 터져 나왔다. 하류의 대물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우!"
대물 야수가 내지르는 쾌감의 단말마가 백마강의 수면 위로 메아리가 돼 질주해 나갔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음이 방안의 공기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었다. 서울서부지검 5층의 복도 끝 방에서 들려오는,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이구아나과에 속한 변종입니다. 캐나다 남부에서 남아메리카 남단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전 대륙에서 목격할 수 있는 유린목의 대표적인 종이죠."
검사 하도야는 7평 남짓한 검사 수사관실의 한 옆에 비치된 소형 유리관에 손을 넣고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 안에는 형체가 기괴한 푸른색의 이구아나 한 마리가 하도야가 내밀고 있는 종이를 열심히 갉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종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수표였다. 액면가 무려 2억원의 은행 마크가 선명한.
"이 자식이 보통 돈 킬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예 머니 킬러란 예명을 지어줬죠. 지금까지 합치면 그동안 한 50억쯤은 족히 처먹을 겁니다. 주인은 박봉에 오금을 못 펴고 살고 있는데 말이죠."
검사 하도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액을 포식하는 이구아나를 주시한다. 그의 눈초리는 뱀의 그것처럼 때로는 사악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영민해 보였고 코와 입술도 균형을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호남아적인 풍모였다. 하지만 냉랭한 실내의 분위기에서는 전혀 호감을 느낄 수 없게 싸늘했다.
"자네…선배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낡아 보이는 가죽의자에 불안정한 자세로 앉아 있던 갈색 외투의 중년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꺼냈다. 매우 심기가 불편한 모습이었다.
"스폰서 검사님으로 선배를 존경해 본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경멸하지도 않습니다. 내 업무에 지장만 초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배달은 사양입니다."
"이봐, 하도야!"
"하검사라고 불러 주시지요. 여긴 24시간 휴식이 없는 근무처이니까요!"
"더럽게 꼬이고, 고집불통인 거 안다. 그러나 조직을 위한 조직다움도 필요한 거야. 그게 이러한 집단에서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거, 절대 사법연수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법률이라는 걸 넌 대체 언제쯤이나 깨달을 거냐? 이 꼴통 놈아!"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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