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 이어짐)
그렇다면 이런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채점관들은 과연 어떤 원칙에 따라 선수들의 우열을 판정할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얼마나 효과적인 타격, 테이크다운, 그래플링 기술을 성공시켰는지 여부다. 예술적인 디펜스나 전체적인 경기운영은 위에서 말한 부분이 동일하다고 보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즉, 아무리 디펜스 잘해봤자, 타격이나 테이크다운에서 밀렸으면 결코 경기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없다.
'효과적인 타격'을 판단하는 우선 기준은 상대에게 준 데미지다. 점수를 따기 위한 속보이는 타격보다는 상대의 무릎이 꺾일 정도로 충격을 주는 제대로 된 타격이 당연히 점수를 얻는다. 소위 잽 100방보다는 제대로 들어간 훅 한 방이 더 이익이라는 얘기다. 물론 자잘한 연타라 해도 상대에게 충격을 주었다면 역시 점수를 얻는다. 참고로 출혈 여부 및 그 양은 전혀 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런 원칙은 테이크다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단순히 상대를 넘어뜨려 가드 안쪽으로 들어가는 기본 테이크다운보다는 호쾌한 슬램이 더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
경기가 주로 어떤 상황에서 진행되었는지도 중요하다. 경기 내내 양 선수가 스탠딩 상태에서 공방을 펼쳤다면 당연히 스탠딩 상태에서 누가 앞섰는지가 중요해진다. 혹시 마지막 십여 초를 남겨놓고 게임이 그라운드로 옮겨 가 전세가 역전되었다고 해도 이는 큰 의미가 없다. 반대로 경기가 그라운드에서 주로 진행되었다면 그라운드 파이팅의 우세 여부가 중요해진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 마지막 결론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순간의 임팩트에 흔들리지 않고 한 라운드 5분 전체를 모두 따져서 우열을 가려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라운드 종료 전 10초가 채점관들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채점관들은 최대한 그런 어필에 흔들리지 않고 '나무보다는 숲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점수는 웬만하면 '10대9'로 우열이 가려지며,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입히며 그 라운드를 완전히 지배했을 때' 비로소 '10대8'이 나온다. '10대 7'은 원칙상으론 가능하지만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얼마 전 펼쳐졌던 케인 벨라스케즈vs브록 레스너 전. 만일 레스너가 1라운드를 버텼다 해도 그 페이스대로였다면 채점관들은 10대8로 벨라스케즈에게 아주 유리한 1라운드 스코어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편에서 얘기한대로, 아무리 꼼꼼히 따져본다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모든 이들이 만족하는 판정을 내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일부 격투팬들은 UFC의 라운드별 채점제 자체를 비판하며 과거 프라이드의 전체 경기를 고려한 채점제가 낫다고 주장하지만, 그 방식이라 해도 이런 논란은 영원히 계속될 수 밖 에 없다. 과거 프라이드 시절에도 '퀸튼 잭슨vs무릴로 닌자', '댄 핸더슨vs곤도 유키' 등 판정 논란을 불러온 경기들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던가.

(퀸튼 잭슨vs무릴로 닌자 전의 모습. 잭슨은 이번 마치다 전 때와 마찬가지로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자신이 밀린 경기였다는 걸 인정했었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오히려 심판 시스템만 놓고 본다면 필자는 미국이 일본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격투기를 관리하는 체육위원회가 없기 때문에 대회사가 직접 심판들을 관리한다. 물론 모든 심판들이 한 단체에만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혹시 한 단체에만 소속되어 있는 심판이라 해도 다들 입을 모아 심판단은 대회사 측과 100% 독립된 조직이라 얘기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 생기는 문제들 중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여기는 게 K-1의 '노 클린치 룰'이다. K-1 대회 때마다 일본 심판들은 경기 전 룰 미팅에서 "클린치 절대 하지 마세요. 이번 대회부터 클린치하면 무조건 감점입니다."라 목청 높여 강조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베테랑 선수들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팀 동료들 및 신인 선수들에게 귀띔한다.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어쩔 수 없을 때는 그냥 클린치 해." 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클린치 때문에 실격패를 당하는 건 고사하고 감점을 받는 경우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제재를 받는다고 해 봤자 감점 혹은 파이트 머니 삭감 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구두 주의가 고작이니, 심판들은 목만 아프고 선수들은 귀만 따가운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K-1에서 클린치 관련 주의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 중 한 명인 세미 슐트. 하지만 사실상 모든 선수들이 클린치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프라이드 시절에는 링 줄을 잡는 동작이 비슷한 문제점으로 꼽혔다. 종합격투기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하는 게 상대를 넘어뜨리는 테이크다운인데, 이를 방어하는 사람이 공방 중에 링 줄을 잡으면 중심을 유지하는 데 상상 외로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프라이드 심판진들은 노골적으로 링 줄을 계속 잡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경고를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잘 아는 효도르나 실바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반칙을 교묘히 활용해 상대의 테이크다운을 차단하곤 했다.

(프라이드 시절, 링 줄을 잡고 상대방을 짓밟는 동작으로도 악명이 높았던 반델레이 실바)
하지만 비슷한 부분인 '펜스 잡기' 파트에서 미국의 UFC 심판진은 굉장히 엄격하게 룰을 적용한다. 만일 선수가 테이크다운 방어 혹은 넘어진 상황에서 일어나기 위해 철창 펜스를 잡는 반칙행위를 하면 한번 경고를 주어진 다음 곧바로 감점이 이뤄진다. 가장 좋은 예는 과거 티토 오티즈와 라샤드 에반스의 '이례적인' 무승부 경기로, 에반스의 테이크다운을 방어하던 와중에 펜스를 잡았던 오티즈에게 주어진 감점 때문에 동점이 되며 나온 결과였다.

(티토 오티즈vs라샤드 에반스 전의 모습)
여하튼 어떤 시스템을 갖다 붙이건 간에 이번 잭슨vs마치다 전 같은 미묘한 승부에서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판정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솔직히 필자는 경기를 중계하며 료토 마치다가 1점정도 앞선 경기라 채점했지만, 현지 채점관들이 잭슨의 계속된 전진에 점수를 준 것이라면 그 판단에 대찬성이다. 물론 료토 마치다처럼 예술적인 카운터 파이팅을 펼치는 것도 나름 묘미가 있지만, 결국 격투기의 인기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카운터와 백스탭보다는 선제공격 및 전진에 어드밴티지를 줘야 한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필자의 견해일 뿐이고, UFC 심판들이 앞으로 비슷한 경기가 또다시 펼쳐졌을 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해 판정을 내릴 것이란 보장도 없다. 결국 앞으로 이런 일은 또 발생할 것이고, 팬들은 그때마다 치열한 논쟁을 벌일 수 밖 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경기 판정 결과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의견을 제시한 두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잭슨과 마치다가 곧바로 재대결을 가질 일은 없다. 난 확실히 잭슨이 이긴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1~2라운드를 잭슨이 확실히 가져갔으니까." -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
"잭슨이 그저 계속 전진했다고 해서 그에게 승리를 준 것은 분명 옳지 않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파이터로서 참 입맛이 쓰다. 종합격투기는 복싱과 분명 다른데, 복싱에서 넘어온 대부분의 채점관들은 불행히도 이 스포츠를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전 UFC 라이트헤비급&헤비급 챔피언 랜디 커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