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시네리뷰] 엘 시크레토:비밀의 눈동자
깊은 슬픔·깊은 갈망·깊은 절망 모든 울림들 눈빛 하나로 현현

소설은 근본적으로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는 기억과 경험의 재생이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의 전직 법원 검사보 에스포시토(리카르도 다린)는 소설을 쓴다. 그러나 소설은 난관에 부딪힌다. 자신의 삶을 뿌리째 뒤흔든 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제쳐두고 다른 이야기를 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오래전 끔찍했던 그 사건을 다시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에게는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그 기억은 에스포시토에게 지울 수 없는 삶의 진실이자 '두려움(Temor)'이기 때문이다.
25년 전, 젊고 아름다운 한 여성이 강간살해 당한다. 모략에 의해 자칫 미제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은 그녀의 남편 모랄레스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복한 에스포시토에 의해 끝까지 파헤쳐지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이른다. 하지만 부정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은 범인 고메스를 반정부 게릴라 검거에 이용한다는 명목으로 손쉽게 풀어준다. 고메스의 복수로 에스포시토는 절친한 친구 산도발을 잃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마음속 깊이 두렵게 사랑했던 이레네(솔레다드 비야밀)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한다. 이제 반백이 된 에스포시토와 중년의 성숙함이 물씬 묻어나는 이레네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뿐, 시간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은 그 사건처럼, 사랑도 진실도 여전히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에스포시토는 결국 '사건 그 이후'를 추적한다. 외곽 시골 마을에 안착해서 살아가는 모랄레스와 조우한 에스포시토는 결국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서 끝날 듯했던 영화의 이야기는 이 대목에서 극적반전으로 급격하게 치솟아 오른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고 평범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던 모랄레스는, 사실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형벌을 고메스에게 부과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메스를 자신의 가옥에 은밀히 가두고 종신형을 살게 하는 모랄레스의 복수는 소름 돋도록 가혹하다. 감금으로 육체의 자유를 빼앗고, 침묵으로 영혼의 자유를 빼앗는 그의 응징은 그 어떤 복수의 행위보다도 처절하다.
절대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을 잃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정의조차 박탈당한 모랄레스가 선택한 삶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절대악을 응징하는 길이었다. 고메스에게 극한의 고통을 주려 하는 그의 고뇌에서 증오와 복수의 감정은 결국 '사랑'이라는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지순한 사랑은 개인과 국가에 의해 짓밟혔다. 그에게 고메스와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은 결국 동격인 셈이다. 그의 응징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읽히는 까닭은 바로 시대와 절묘하게 만나는 이러한 영화적 상징구조 때문이다.
'두려움(TEMO)'이라는 글자에 'A'를 찍으면 '사랑(TE AMO: 너를 사랑해)'이 된다. 'A'는 마술처럼 사랑을 완성한다. 'A'가 찍히지 않는 낡은 타자기로 써내려간 에스포시토의 소설은 'A'를 손수 그려 넣고 완성된다. 기억과 경험의 재생이었던 소설은 이제 현실을 향해 뻗어간다. 과거와 현재가 드디어 손잡고 화해한다. 진실과 대면한 에스포시토는 모든 주저함과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이레네를 향한다. 오랜 세월을 묻어두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이로써 완성된다.
사람의 눈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진실과 거짓, 사랑과 증오, 순수와 탐욕이 그대로 드러난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빛을 따라가는 영화다. 그윽하고 심오한 인물들의 시선이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사람의 눈빛이 이토록 현저하게 살아 있는 영화는 드물다. 에스포시토와 이별하는 이레네의 깊은 슬픔, 이레네를 바라보는 에스포시토의 깊은 갈망, 사랑을 잃고 텅 빈 시선으로 내려다 보던 모랄레스의 깊은 절망. 이 모든 울림들이 눈빛 하나로 현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진가는 충분하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교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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