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59> 태조무열왕 비의 귀부와 이수

2010. 11.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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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에는 신라시대 무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무열왕의 능(陵)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비가 있다. 이 비가 바로 국보 제25호인 신라태종무열왕릉비(新羅太宗武烈王陵碑)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 몸체인 비신은 없어지고 비의 받침인 귀부와 머리돌인 이수만 남아 있다. 다만 머리돌인 이수의 중앙에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 썼다는 太宗武烈大王之碑(태종무열대왕지비)라고 한자를 새겨 두었기 때문에 비석의 주인공이 무열대왕임을 알게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귀부에 대해 "조각된 돌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신라인의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며 "이 비는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라고 안내문에 밝혔다.

태종무열왕릉이라고 여겨지는 무덤 뒤로 무열왕릉에 버금가는 크나큰 무덤 4기가 일렬로 마련되어 있다. 말하자면 무열왕릉을 포함 모두 5기의 대형무덤이 나란히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열왕릉을 제외한 4기의 무덤은 누구의 무덤이며 무엇 때문에 같은 지역에 일렬로 함께 마련되었을까.

무열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 묘로 마련된 것인지 아니면 이 가운데 제일 높은 위치에 마련된 것이 무열왕릉인지 밝혀진 바 없고 단순히 왕릉 비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무덤을 왕릉으로 보아 지금에 이르고 있지는 않는지 이 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거북은 장수를 상징하는 신화와 전설상의 신령스러운 동물로 기린 봉황 용과 더불어 4령(四靈)이라 불린다. 그리고 5,000살 먹은 거북은 신귀(神龜)라하고 1만 살 먹은 거북은 영귀(靈龜)라고 한다. 그래서 비의 받침으로 거북을 주로 써왔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귀부의 조각에 있다. 즉 자세히 보면 앞발의 발가락은 다섯인데 뒷발가락은 넷이다. 무엇 때문에 뒷발은 네 발가락으로 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거북의 등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으면 뒷발의 발가락 하나를 안으로 집어넣고 버틴다는, 즉 무거운 비석과 이수를 받치기 위해 발가락 하나를 집어넣었다는 견해와 거북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뒷발의 마지막 발가락을 지렛대처럼 하기 위해 안으로 꺾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무열왕릉비의 작은 파편 2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점은 1936년 왕릉 근처에서 발견되어 비석은 이미 일제강점기 이전 의식적으로 파괴한 것으로 짐작될 뿐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무열왕릉비는 661년에 섰다. 거북을 바탕으로 한 비석의 받침과 용트림을 새긴 이수가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다. 비석의 이 같은 제작형식은 조선시대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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