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 역대 아시안게임 남녀농구 REVIEW

역대 아시안게임 남녀농구 REVIEW
2010년 아시안게임 개막이 눈 앞에 다가왔다. 한국 남자농구는 1970년 방콕, 1982년 뉴델리 이후 아직까지 원정에서 우승을 해본 적이 없다. 여자농구 역시 1994년 이후 金 소식이 잠잠하다. 과연 올해는 동반 우승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즐기기에 앞서, 1954년 제2회 아시안게임 이후 역대 대표팀의 전적과 활약상을 정리해보았다.
# 본 기사는 2007년 3월호 점프볼 잡지에 실렸던 내용을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2회 아시안게임
· 일시_1954년 5월1일~5월9일· 장소_필리핀 마닐라· 감독_이성구· 선수_김정신, 안영식, 최태곤, 이동헌, 전병식, 조병현, 김영수, 안병석, 황태석, 윤명현, 장이진
☞ 제2회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4위에 그쳤다. 전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 출전해 예선 리그 첫 두 경기에서 캄보디아에 89-48, 싱가포르에 69-65로 이겼지만 결승 리그에서는 필리핀(76-52), 중국(56-53), 일본(58-47)에 내리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 대회에서는 필리핀이 우승했다.
제3회 아시안게임
· 일시_1958년 5월24일~6월1일· 장소_일본 동경· 감독_이문호, ·코치_변승목· 선수_조병현, 안영식, 백남정, 이종환, 김영수, 김춘배, 조영호, 김종훈, 강병건, 이광우, 이정하
☞ 필리핀과 일본의 벽에 가로막힌 한국은 두 대회 연속으로 4위에 그쳤다. 결승 리그에서 한국은 태국과 싱가포르에게는 각각 101-91, 91-66으로 이겼지만 필리핀과 일본에게는 내리 지면서 우승 기회를 놓쳤다. 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이 우승했고, 중국과 일본이 2, 3위를 이었다.
제4회 아시안게임
· 일시_1962년 8월24일~9월4일· 장소_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감독_박영대· 선수_김영기, 문현장, 방열, 김영일, 백남정, 김철갑, 이중환, 김인건, 이경우, 이인표, 강태하
☞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 황금세대가 아시안게임 데뷔전을 가졌다. 김영기, 김인건, 방열, 이인표 등이 그들로, 비록 예선 리그에서는 일본에 75-58로 졌지만 결승 리그에서는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65-48로 승리했다. 그러나 숙적 필리핀에 또다시 가로막혀 우승의 꿈은 훗날로 미뤄야 했다.
제5회 아시안게임
· 일시_1966년 12월9일~12월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신봉호· 선수_이인표, 김무현, 김영일, 신동파, 신현수, 이병구, 김철갑, 김인건, 하의건, 이병국, 박한, 최종규
☞ 이스라엘이 가세한 아시안게임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다. 한국은 그러나 예선 리그를 모두 승리하면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숙적 필리핀에게도 마침내 83-82로 승리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홈팀 태국과의 경기 중 난투극이 일어나면서 기권패가 됐고, 결국 3-4위전으로 밀려났다. 한국은 화풀이라도 하듯 일본에 72-60으로 이겨 3위를 차지했지만, 대회내내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과는 멀어졌던 이스라엘에게 우승을 건네줘야 했다.

제6회 아시안게임
· 일시_1970년 12월9일~12월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김영기· 선수_김영일, 이인표, 김인건, 신동파, 신현수, 윤평로, 곽현채, 유희형, 박한, 최종규, 이자영, 추헌근
☞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예선 리그에서 이란, 홍콩을 차례로 꺾은 데 이어 라이벌 필리핀에게도 77-75로 이기면서 청신호를 밝혔다. 결승 리그에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중국에 74-72로 이겼고, 일본도 80-57로 여유 있게 따돌려 우승을 확정지었다. 2위는 이스라엘, 3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제7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74년 9월1일~9월16일· 장소_이란 테헤란· 감독_김영기, ·코치_이인표· 선수_곽현채, 이자영, 이광준, 차성환, 강호석, 이보선, 김경태, 황재환, 최경덕, 유희형, 김동광, 김인진
☞ 1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한국은 B조에서 중국, 이라크와 한 조를 이루었다. 비록 101-93으로 중국에 패했지만 준준결승리그에서의 선전을 바탕으로 준결승에 진출, 다시 한번 중국을 119-114로 따돌려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벽에 또 부딪쳤다. 준준결승리그에서 이미 119-93으로 완패한 바 있는 한국은 결승서 분투했지만 미국 유학파가 많았던 이스라엘에 결국 92-85로 패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스라엘은 이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않았다.
제7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74년 9월 1일~9월 16일· 장소_이란 테헤란· 감독_이상훈 · 코치_정주현· 선수_조영순, 김채순, 조명옥, 윤선자, 강현숙, 김은단, 이옥자, 신인섭, 유쾌선, 윤정로
☞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은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아시안게임이었다. 문화혁명 이후 문호를 열지 않았던 중국이 단절을 풀고 참가한 첫 대회였다. 중동국가인 이란까지 가세했다. 북한도 아시아경기연맹에 가입하면서 이 대회에 선수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대회. 한국은 예선전에서 중국(84-71)을 대파하고, 일본과 두 번째 경기를 가졌으나 종료 직전 버저비터를 허용해 70-71로 석패했다. 이 패배로 한국은 북한(81-63), 이란(74-43)을 연파하고도 3승 1패로 2위에 머물렀다. 일본은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제8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78년 12월9일~12월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이경재, ·코치_김무현· 선수_김동광, 최부영, 이수기, 박인규, 조명수, 황유하, 이충희, 신선우, 박수교, 김형년, 이문규, 하동기
☞ 모두 14개국이 출전했고 한국은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바레인과 C조에 속했다. 이 대회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 사상 처음으로 2미터4의 장신선수인 하동기(당시 삼일실고)씨가 출전했다. 대표팀은 예선리그를 전승으로 이겼고, 결승리그에서도 일본(85-76)과 북한(51-37, 기권승)에 이겼지만 높이를 자랑하던 중국에 91-71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제8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78년 12월 9일~12월 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정주현 코치_신동파· 선수_강현숙, 조은자, 김경숙, 이향주, 정미라, 조영란, 홍혜란, 홍영순, 정희숙, 박찬숙, 최승희
☞ 한국을 위한 대회였다. 대회전부터 정주현 감독과 신동파 코치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던 한국은 예선리그 첫 경기에서 말레이시아에게 무려 88점차로 승리를 거두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일본(63-48), 태국(97-49)도 제친 한국은 결승에서도 중국을 77-68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4경기에서 모두 완승을 거둔 한국은 74년 대회에서 은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달래며 아시아 정상에 복귀했다.
제9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82년 11월19일~12월4일· 장소_인도 뉴델리· 감독_방열, ·코치_· 선수_박수교, 이민현, 신동찬, 이충희, 박인규, 이영근, 신선우, 이장수, 조명수, 임정명, 박종천, 안준호
☞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13개국 가운데 바레인, 쿠웨이트와 B조에 속하게 된 한국은 일본전(91-90)을 제외한 대부분 경기를 완승하며 결승까지 무난한 행보를 보였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는 이충희와 신선우의 활약에 힘입어 시종 리드를 지킨 끝에 85-84로 승리하면서 금메달의 감격을 안았다.
제9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82년 11월 19일~12월 4일· 장소_인도 뉴델리· 감독_신동파, ·코치_조승연선수_홍혜란, 홍영순, 박찬숙, 권명희, 박양계, 성정아, 김영희, 방신실, 박진숙, 차양숙, 김화순, 우은경
☞ 정미라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컴퓨터 가드' 박양계가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고교생 성정아도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했다. 그러나 한국은 '필승상대'였던 중국이 진월방(216cm)을 내세우면서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일본, 북한, 중국, 일본, 인도 등 5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한국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중국은 한국을 75-67로 누르고, 일본에도 101-35로 승리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박찬숙이 뛴 마지막 아시안게임이기도 하다.
제10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86년 9월20일~10월5일· 장소_서울· 감독_김인건, ·코치_정광석· 선수_이충희, 박인규, 허재, 김현준, 이문규, 김성욱, 한기범, 고명화, 이원우, 이민현, 김유택, 임정명
☞ 박수교, 신선우, 신동찬 등을 대신해 김현준, 허재, 이원우 등 새 얼굴이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연대, 고대가 아닌 중앙대 선수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는 허재와 김유택이 처음이었다. 골밑에는 김유택이 등장했다. 8개국이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첫 6경기를 무난하게 이기면서 우승을 예고했으나, 결승전이었던 중국과의 일전에서 77-74, 3점차로 분패했다. 한국은 전반을 45-38로 뒤진 후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으나 끝내 뒤집기에 실패했다.
제10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86년 9월 20일~10월 5일· 장소_한국 서울· 감독_조승연, · 코치_신현수· 선수_김화순, 김영희, 성정아, 최경희, 문경자, 이형숙, 이미자, 김은숙, 이금진, 우은경, 조문주, 서경화
☞ 박찬숙이 84년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조문주가 새롭게 합류했다. 그러나 박찬숙이 빠진 한국은 '안방' 서울에서 중국에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예선 첫 경기에서 일본(76-63)을 가볍게 누르고, 말레이시아도 116-31로 대파했으나 중국에게 14점차 패배를 당했다. 한국은 성정아, 조문주, 김화순, 최경희, 이형숙 등을 주전으로 내세웠으나 중국과의 결승에 앞서 성정아가 무릎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홈에서 눈물을 삼켰다. 중국이 우승을 차지했고, 일본이 3위에 올랐다.
제11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90년 9월23일~10월8일· 장소_중국 북경· 감독_김인건, ·코치_정광석· 선수_이원우, 강동희, 이충희, 정재근, 표필상, 이민형, 김현준, 허재, 김진, 최병식, 김유택, 서대성
☞ 세대가 변하면서 현대와 삼성, 고대와 연대로 양분화 되는 경향이 있었던 대표팀 선수들의 구성도 바뀌게 된다. 상무, 중대, 중소기업은행, 기아자동차 등 다양한 소속의 선수들로 대표팀 진영이 갖춰졌다. 대표팀 막내는 연세대 재학 중이었던 정재근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북한과 B조에 속한 한국은 결승리그에서 일본에 94-91로 패해 1~4위 결정전에서 중국과 만나게 됐다. 당시 홈팀이었던 중국에 전반을 44-39로 리드했으나 92-88로 역전패 당해 3위에 그쳐야 했다. 우승은 중국, 준우승은 필리핀이었다.

제11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90년 9월 23일~10월 8일· 장소_중국 북경· 감독_정주현 , ·코치_최경덕· 선수_정은순, 유정애, 최경희, 이형숙, 정미경, 하숙례, 임애경, 이강희, 천은숙, 서경화, 성정아, 조문주
☞ '슛도사' 김화순이 88년 은퇴했다. 그 자리에는 하숙례, 서경화, 정은순 등 신예들로 채워졌다. 특히 87년도 여고생 신분으로 대표팀에 뽑혔던 정은순이 아시안게임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은 예선리그에서 2m의 장신 이경숙을 앞세운 북한에 70-67로 신승했지만 일본(97-72)로 대파했다. 중국과의 예선전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은 채 15점차로 졌던 한국은 결승전에서만큼은 실력을 발휘하며 77-70으로 승리해 우승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을 제패했다. 성정아와 조문주가 중국의 정하이샤를 번갈아 맡았고, 정은순도 루키다운 기치를 발휘했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준우승, 대만이 3위, 일본이 4위에 올랐다. 이 대회를 끝으로 성정아, 이형숙, 정미경이 은퇴를 선언했다.
제12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94년 10월2일~10월16일· 장소_일본 히로시마· 감독_이인표, ·코치_김동광· 선수_이상민, 강동희, 김영만, 김승기, 서장훈, 허재, 문경은, 오성식, 정재근, 전희철, 김유택, 현주엽
☞ 12명의 선수 중 무려 7명이 대학생이었고, 2명이 군인신분이었다. 삼성과 현대 소속 선수가 없이 치러진 최초의 아시안게임이었다. 9개국이 출전했고 한국은 B조였다. 예선을 전승한 한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을 101-63으로 대파, 결승에 올랐으나 중국에 100-71로 대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12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94년 10월 2일~10월 16일· 장소_일본 히로시마· 감독_정주현, ·코치_김태환· 선수_윤영미, 한현선, 이희주, 전주원, 유영주, 박현숙, 손경원, 하숙례, 천은숙, 정선민, 정은순, 조혜진
☞ '90년대 트로이카' 정은순-유영주-전주원의 탄생을 알린 대회였다. 한국은 90년대 초반 등장한 세 선수를 앞세워 90년 대회에 이어 아시안게임 2연패를 차지했고, '숙적' 일본의 안방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짜릿한 1점차 승리(77-76)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선전에서 중국을 30점차로 대파했던 한국은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고의로 일본에게 지며 결승 상대를 일본으로 골랐다가 혼쭐나기도 했다. 한국이 1위, 일본과 중국이 2,3위를 나눠가졌다.
제13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1998년 12월6일~12월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최부영, ·코치_진효준· 선수_서장훈, 현주엽, 이은호, 김주성, 강동희, 이상민, 김병철, 문경은, 정재근, 추승균, 김성철, 조상현
☞ 프로무대 출범 후 첫 아시안게임이었다. 김주성(중대), 김성철(경희대), 조상현(연대)이 대학생 신분으로 대회에 출전한 가운데, 프로무대는 아시안게임을 맞아 브레이크 타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B조에 속했다. 준결승에서 카자흐스탄을 101-64로 격파하면서 전승 행진을 달렸던 한국은 그러나, 중국과의 결승에서 112-92로 패배, 또다시 높이의 벽을 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제13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1998년 12월 6일~12월 20일· 장소_태국 방콕· 감독_김재웅, · 코치_박명수· 선수_홍정애, 정선민, 이종애, 김계령, 유영주, 조혜진, 장선형, 이은영, 전주원, 김지윤, 양희연, 박정은
☞ 정은순이 빠진 골밑은 허전했다.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였던 정은순이 1998년 3월 결혼을 하면서 대표팀 자리를 고사했고, 그 자리는 김계령이 메웠다. 그러나 김계령은 당시 숭의여고를 갓 졸업한 새내기였다. 또한 유영주가 무릎 부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었고 그를 대신해 경기에 나선 조혜진, 장선형, 이은영 등은 무게감이 떨어졌다. 더욱이 전주원도 대회 4일 전에야 팀에 합류하는 등 악조건의 연속이었다.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대만(71-49), 카자흐스탄(70-51), 태국(94-51)을 연파했으나 준결승에서 중국(73-80)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아시아에서 열린 각종 대회에 참가해 우승과 준우승을 번갈아 했던 한국이 처음으로 차지한 '3위'였다. 결승에서는 일본이 중국을 93-69로 이기고 우승컵을 안았다.
제14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2002년 9월28일~10월14일· 장소_부산· 감독_김진, ·코치_박건연· 선수_서장훈, 김주성, 이규섭,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문경은, 전희철, 추승균, 현주엽, 조상현, 방성윤
☞ 82년 이후 20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2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서 한국은 일본, 몽고와 한 조였고, 몽고와의 예선전에서는 한국의 아시안게임 사상 최다득점(145점)을 올리며 선전했다. 준결승서 필리핀을 이상민의 버저비터로 69-68로 극적으로 따돌린 한국은 결승서 중국을 맞아 연장접전 끝에 102-100으로 승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제14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2002년 9월 28일~10월 14일· 장소_한국 부산· 감독_이문규, ·코치_서동철· 선수_정선민, 이종애, 김계령, 홍현희, 장선형, 박정은, 이언주, 변연하, 전주원, 이미선, 김영옥, 김지윤
☞ 홈에서 중국에 역전패를 당하며 8년 만에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한국은 예선리그 4승 1패로 준결승에 올라 대만(94-68)을 꺾고 결승전에 올랐지만 중국에게 4점차로 아쉽게 패했다. 전반을 7점차로 뒤지다 후반전에 역전을 만들어 종료 2분여 전까지 7점차로 리드했던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역전패를 당해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중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가 참가했고 중국이 우승을 차지했다.
제15회 아시안게임 (남자)
· 일시_2006년 11월 30일~12월 15일· 장소_카타르 도하· 감독_최부영, ·코치_이민현, 강정수· 선수_김승현, 양동근, 김태술, 방성윤, 김성철, 양희종, 이규섭, 송영진, 하승진, 서장훈, 김주성, 김민수
☞ 대표팀 사상 최장신 선수 하승진(223cm)이 출전했고, 그 외 2미터대 선수가 세 명(서장훈, 김주성, 김민수)이 나섰다. 또, 세대교체를 통해 대표팀의 얼굴이 전격 교체됐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사상 가장 저조한 성적인 5위에 그쳤다. 중동세에 밀렸기 때문인데, 이란과 요르단, 중국에 패하면서 5~8위 순위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승은 중국이 차지했고, 개최국 카타르는 2위에 올랐다.

제15회 아시안게임 (여자)
· 일시_2006년 11월 30일~12월 15일· 장소_카타르 도하· 감독_유수종, ·코치_이옥자, 김영주· 선수_박선영, 최윤아, 김지현, 김은혜, 변연하, 김정은, 김세롱, 신정자, 김계령, 홍현희, 양지희, 강영숙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세대교체를 단행해 젊은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지만 예선 첫 경기에서 한 수 아래라고 여겨지던 대만(73-80)에 덜미를 잡힌 것을 비롯해 준결승에서 중국(53-77)에 힘없이 무너졌고, 3-4위전에서는 일본(70-74)에게까지 일격을 당하며 노메달 수모를 당했다. 중국 우승을 차지했고, 대만이 2위, 일본이 3위를 차지했다.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0-11-09 손대범, 이선영 기자( sondaebu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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