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만진 장님이 만든 코끼리는

2010. 10. 22.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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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눈 갤러리, '장님코끼리 만지기'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 일화에서 유래한 이 말은 전체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이 아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삼청동 정독도서관에서 삼청파출소 사이길에 있는 갤러리 '우리들의 눈'에서 열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전을 보고 나면 이 말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예술협회는 지난해 7월 맹인모상 일화에서 착안해 진짜 시각장애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천혜광학교 학생 33명은 광주 우치동물원을 찾아 실제 코끼리를 만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수의사와 조련사의 도움을 받아 코끼리를 직접 만져보기도 하고 타보기도 한 뒤 학교에 돌아와 손의 느낌을 되새기며 옹기토와 조합토로 코끼리를 만들었고 이번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의 느낌으로만 상상해 만든 코끼리는 어떤 모양일까.

빛조차 구별할 수 없는 전맹(全盲) 상태인 김선도(중등 2) 학생이 빚은 코끼리는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 코끼리와 흡사하다. 큰 귀와 기다란 코 등 코끼리의 특징을 잘 짚어낸 작품이다.

코끼리를 만지다 그만 코끼리 코에 손이 쑥 들어가는 경험을 했던 박민경(초등 3) 학생은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코가 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코끼리를 만들었다.

전시장 한편에는 퀼트 기법으로 만든 코끼리도 놓여 있다. 이야기로만 들은 코끼리의 피부가 매끄러울 것 같았지만, 실제 만져보니 까칠까칠했던 느낌을 인상적으로 기억한 학생이 아버지의 양복 재질과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실제 양복 옷감으로 만든 코끼리다.

학생들의 작품이니만큼 아무래도 작품의 수준은 엉성하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베토벤이 위대한 음악을 만든 것처럼 보지 못한다고 미술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엉성한 작품은 프로 작가의 멋진 작품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최재훈 큐레이터는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편견이 없어 오히려 더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했다"며 "보는 게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하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시 제목의 '장님'은 시각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해 잘 쓰이지 않지만 갤러리측은 원래 맹인모상 일화를 떠올리기 쉽게 해당 단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11월20일까지. ☎02-733-1996.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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