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눈물의 비디오' 제일은행, '먹튀 악몽'에 시달리다.
1929년 창립한 SC제일은행이 ‘투기 자본’과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먹튀는 ‘먹고 튄다’의 속어로, 기업을 인수한 뒤 기술과 수익을 챙겨 본국으로 철수해버리는 해외 자본을 가리키는 조어. SC제일은행은 지난 1999년 해외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에 인수된 데 이어, 2005년에는 스탠다드차타드에 다시 인수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먹튀라니? 뉴브리지캐피탈과 달리 스탠다드차타드는 전 세계에 500여 지점을 가진 160여 년 전통의 영국계 글로벌 금융기관이다. 투기 자본으로 매도당할 은행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먹튀 논란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스탠다드차타드도 투기 자본?
‘먹튀 논란’이 벌어진 직접적 이유는 SC제일은행이 최근 들어 보유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각했기 때문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2005년, 당시 제일은행(이후 SC제일은행으로 개명)을 인수한 뒤 35건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모두 3000억여 원 규모였다. 2005~2006년 인수 초기에 판 것은 합숙소나 사택이었다. 3억~4억원대 규모. 그런데 2007년부터 대형 물건을 내놓더니, 지난 한 해 동안 서울 개포동 등 24개 지점의 토지와 건물을 팔아 무려 2264억원을 챙겼다. SC제일은행은 이렇게 매각한 지점을 다시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에 일부 정치권과 사회단체, SC제일은행 노동조합 등이 격렬히 반발하고 있는 것은 ‘투기 자본의 악몽’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선진 금융기법 도입’ 등의 명분을 내걸고 제일은행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에 팔았다. 사모펀드는 기업을 싸게 사서 구조조정 등으로 기업가치를 올린 뒤 되팔아 고수익을 챙기는 업종이다. 사모펀드로서는 기업을 높은 가격에 빨리 팔아치우면 그만이다. 인수되는 기업의 체질이나 장기적 성장 따위에는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뉴브리지캐피탈이 제일은행을 인수한 뒤 전념한 사업 부문은 부동산 금융과 고금리 가계대출이었다.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 비중은 크게 줄었다. 이 사모펀드는 직원들에게 거리와 아파트를 누비며 부동산 대출을 권유토록 했고, 고객들에게 ‘계좌 유지 수수료’를 물렸다. ‘돈 안 되는 고객은 오지 말라’는 소리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국내 3대 은행으로 기업금융의 대명사였던 제일은행은 이 과정에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가계대출 전문 은행으로 전락했다. 인수되기 전인 1999년 총여신 중 24%에 불과했던 가계대출이 2005년에는 80%로 늘었다. 뉴브리지캐피탈은 이런 식으로 1조2000억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뒤 빠져나갔다.
다른 해외 투기 자본이 저지른 악몽의 기억도 생생하다. 예컨대 사모펀드 BIH는 2000년대 초·중반 피인수 기업인 브릿지증권의 배당률을 70%까지 높여 거액을 챙겼다. 사옥을 헐값 매각한 뒤 무상감자(자본금을 줄이면서 그 차액을 주주에게 지급. 예컨대 자본금 100억원을 50억원으로 ‘감자’한 뒤 차액인 50억원을 주주에게 배당)로 거액을 챙겼다. 브릿지증권은 원래 ‘자기 소유’였던 사옥을 빼앗긴 뒤 같은 건물에 세를 들어 영업을 해야 했다. 껍데기만 남고 다 털린 경우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SC제일은행 측의 부동산 집중 매각에 짙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0월11일에는 SC제일은행 노동조합, 투기자본감시센터 등과 함께 국회에서 ‘SC제일은행, 3000억원 보유 부동산 매각대금 용처 밝혀야’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SC제일은행은 ‘답변서’를 통해 “2005~2010년 부동산 매각 건수와 같은 35개의 점포에 3000억원을 재투자했다”라고 주장했다. “한동안 한국 현지화를 위한 노력 및 내부 조직 정비로 국내 시장 투자에 소극적이었으나, 2008년 점포망 재구축 사업을 추진하여 현재까지 신설 60개, 이전 28개의 점포 사업을 추진 중이다”라는 것이다. SC제일은행은 또한 “전산, 증권사 설립, 브랜딩 투자금으로 2452억원을 투자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원일 의원은 SC제일은행 측의 답변에 대해 “세부 내용이 없고, 신규 부동산 구입 여부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점포 수 현황 자료와 숫자도 맞지 않는다”라고 반박한다. 유 의원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의 점포 수는 2004년 406개에서 2010년에는 404개로 오히려 2개 줄었다. 또한 전산 등에 거액을 투자했다고 하지만 “최근 SC제일은행은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전산 투자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고 2년 연속 지적받은 바 있고, 실제 다른 은행들이 갖춘 차세대 전산 시스템조차 도입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부동산 헐값 매각’ 의혹도 제기했다. SC제일은행 측이 지난해 10월 매각한 개포동 지점의 가격은 95억원이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평가한 감정 가격은 115억원(내부 감정가는 93억원)이었다(왼쪽 표 참조). 더욱이 매입자가 개포동 지점을 담보로 SC제일은행으로부터 다시 70억원을 대출받았다. SC제일은행으로서는 매우 불리한 부동산 거래를 한 것이다.
제일은행의 눈물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봄, 제일은행 직원 4000여 명이 감원당하면서 ‘눈물의 비디오’라는 영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폐쇄 직전 서울 강남 테헤란로 지점 직원들의 하루를 잔잔하게 담은 작품이다. 퇴직당하는 직원들이 간간이 등장해 “남은 사람들이 잘해달라”며 울고, 가족들을 걱정하며 울고, 이를 보는 사람들도 울었다. 그러다보니 원제(‘내일을 준비하며’)와 관계없이 ‘눈물의 비디오’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퇴직자들이 부탁하고 간 제일은행은, 해외 자본이 번갈아 경영한 10여 년 동안, ‘먹튀 논란’으로 떠들썩한 금융기관이 되었다. 시장점유율도 총여신 기준 5.55%(3월 기준)로 시중은행 7개(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외환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꼴찌는 한국씨티은행 3.81%). 떠나간 사람들의 눈물은 보답받지 못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