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전용도로에 "자전거만 없었다"

【서울=뉴시스】서상준 기자 = 수년째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하던 윤 모씨(서울 은평구.38)는 최근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오토바이와 부딪혀 병원 신세를 졌다. 그 후 부터는 자전거 대신 자신의 승용차로 출퇴근하고 있다.
윤씨는 "차가 밀려 자전거를 이용할 때보다 출근시간이 20분이나 늦어지고, 기름 값도 부담되지만 사고로 다치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며 "위험천만함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전거 도로 정책이 '초점'을 잃어가고 있다. 매연이나 차량정체, 교통사고 등 도심 교통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자전거 도로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종로구 안국역~경복궁역 자전거 전용도로 구간. 이 곳은 주인을 잃은 지 오래다. 주인 없는 자전거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점령하고, 가끔 불법 택시 승강장으로 쓰이고 있다.
하루 이용자는 겨우 수십 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오토바이나 일반 차량 몸살에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다. 자전거 도로를 옆에 두고 인도로 다녀야하는 웃지 못 할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인 양호열씨(21.가명)는 "(자전거 도로가)더 위험한데 어떻게 다니겠냐"면서 "(오토바이를 손으로 가리키며)저 길 봐라. 경찰이 있는데도 '쌩쌩'달리는데. 여기가 오토바이 도로지, 자전거 도로가 맞냐"고 비꼬았다.
이런 비판이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서울시가 자전거도로에 대한 수요조사 없이 일방적으로 도로 설치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안국~경복궁역 구간(2.4㎞.사업비 3억5000만원)'은 청와대 지시로 '모양새만 갖췄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 관계자는 "(자전거 도로 개설할 때)시에서 수요조사 한 적은 없다"면서도 "당장 (자전거)이용자가 없다고 해서 전시행정으로 보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국~경복궁역 구간이 특히 이용자가 적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 곳은 자전거 사업을 시작할 때 청와대 측에서 요청해 온 시범사업 구간이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결국 청와대 눈치 보느라 예산만 낭비한 셈이다.
자전거 도로 폭(2.2m)이 넓어, 기존 교통정체를 더 유발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국~경복궁 구간'만 보더라도 이 구간은 상습 정체 지역이어서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 시 교통체증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미리 예견했었다.
알고보니 당초 시에서 관계기관과 사전 협의 없이 '양방통행 도로'를 설치했다가, 안전을 문제삼은 경찰과 의견이 엇갈려 일방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성급한 행정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실제 많은 운전자들이 "자전거 도로가 생긴 후부터 차량정체가 훨씬 심해졌다"고 푸념했다.
현재 서울시의 자전거 도로 총 길이는 약 800㎞에 달한다. 이 가운데 650㎞가 보행자 겸용도로이고, 100㎞ 한강 주변 구간, 나머지 60㎞가 자전거 전용도로이다.
ssj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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