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요리'에서 '오늘의 커피'까지

변진경 기자 2010. 8. 2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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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이 고이게 만드는 한국의 음식 만화가 늘고 있다. 전설 속 음식이나 요리 장인을 등장시키는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음식 이야기를 다뤄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음식 만화의 세계.

세상만사 가운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만 한 게 없다. 그런데 그 재미가 만화 속 그림에 녹아 있으면 또 얼마나 즐거울까? 〈미스터 초밥왕〉이나 〈심야식당〉 같은 일본 만화를 떠올리는 당신, 멀리 갈 것 없다. “우리나라 음식 만화라곤 〈식객〉밖에 없잖아?”라고 묻는 당신, 깜짝 놀랄 것이다.

국내산 음식 만화는 의외로 수가 많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식객〉(허영만)을 비롯해 중화요리 만화 〈짜장면〉(박하·허영만→박하·김재연)과 〈차이니즈 봉봉클럽〉(조경규), 순정 만화에 음식 이야기를 버무린 〈스위트 레시피〉(윤이현)와 〈키친〉(조주희), 구체적인 요리 방법을 담은 〈AB화실의 요리조리〉(박무직)와 〈자취요리 대작전〉(박성린), 어린이를 위한 요리 만화 〈수리수리 맛소금〉(박무직)과 〈천마초의 기상천외 요리대회〉(오수), 인터넷 웹툰으로 연재된 〈팬더댄스〉 시리즈·〈오무라이스 잼잼〉(조경규)·〈코알랄라〉(얌이), 커피를 다룬 〈루디’s 커피의 세계, 세계의 커피〉(김재현)·〈오늘의 커피〉(기선)와 막걸리 만화 〈대작〉(이종규·김용희)·〈술술술〉(가리·홍동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것들 가운데 최근 인기를 끄는 한국 음식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은 ‘평범함’이다. 만화 속에는 더 이상 비기(秘技)를 지닌 요리 장인이나 전설 속의 음식을 찾아다니는 순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바그너의 곡 ‘발퀴레의 비행’을 지휘하는 주빈 메타(인도 출신의 지휘자 이름)의 왼손의 떨림을 떠올리게 하는군!”(〈신의 물방울〉 대사 가운데)과 같은 호들갑스러운 맛 묘사도 필요치 않다. 아주 평범한 사람(혹은 동물 캐릭터)이, 모두가 알고 있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맛을 만화로 표현하는데, 그런데도 이 만화들은 ‘대단히 맛있다’.

<돌아온 팬더댄스> 4화 ‘지구 최후의 날’의 한 장면. 등장 캐릭터 팬더댄스(아래)와 왕구리(위)가 대게가 나오기 전 기본 상차림을 보고 환호하고 있다.
<차이니즈 봉봉클럽>의 주인공 은영양이 정성을 다해 짜파게티를 볶고 있다.
‘만만한 음식’들에 경의를 표하다

평범하지만 맛있는 만화는 ‘식신(食神)’ 작가들에게서 나온다. 특히 〈팬더댄스〉 시리즈와 〈차이니즈 봉봉클럽〉·〈오무라이스 잼잼〉 등을 그린 만화가 조경규씨(36)는 오는 가을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될 〈차이니즈 봉봉클럽-대망의 베이징 편〉의 취재를 위해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이사를 갈 만큼 음식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는 온 세계 음식 서적과 식당 홍보용 인쇄물을 탐구하고, ‘맛있는 게 약이다’ ‘한끼 한끼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자’라는 식철학과 ‘먹지 않은 것과 맛없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라는 그림 철학으로 무장했으며, 국립국어원이 내세우는 ‘자장면’ 대신 비빌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한 ‘짜장면’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그런 만화가에게서 나오는 음식 만화가 맛없을 리 없다.

독자들의 식욕을 자극해 ‘야식 테러 만화’로 불리는 웹툰 〈코알랄라〉 역시 ‘남의 이목이나 평가에 신경 쓰지 말고 맛있게 먹는 게 제일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만화가 얌이씨(30)가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도시락 365일〉이라는 컬러 요리 서적에 심취하기도 한 그는, 분신 같은 캐릭터 코알라를 내세워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먹고 “코알랄라!”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그의 만화에는 꼭 소재가 되는 음식의 실물 사진들이 뒤따르는데, 모두 얌이씨가 직접 사 먹거나 만들어 먹은 것들이다.  

<자취요리 대작전>의 뒤표지 삽화. “이 책은 냄비 받침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박성린 작가(34)의 〈자취요리 대작전〉은 레시피 전달에 좀 더 충실한 만화책이다. 박씨가 라면부터 김구이·달걀찜·제육볶음·고등어 자반구이·고추장아찌·갈비찜까지 95가지 음식 요리법을 만화로 그리는 데에는 룸메이트 7~8명의 식사를 함께 맡았던 자취생 시절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박씨는 만화를 그릴 때 레시피의 정확함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사람들 간에 의견이 분분한 요리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가령 라면을 끓을 때 면을 꺼냈다 넣었다 할 것인지 그냥 끓이다가 중간에 찬물로 조금 식혀야 하는지, 수프를 먼저 넣을 것인지 나중에 넣을 것인지에 대해 주변 사람과 늘 활발한 토론을 한단다. 

하지만 이들 만화책이 전하는 레시피는 다소 독특한 구석이 있다. 콩나물국을 끓이기 전 “콩나물은 원래는 다듬어야 하지만 자취생에게 그런 정성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 그냥 먹어도 괜찮다”라고 넘어가거나〈자취요리 대작전〉, ‘짜파게티’와 ‘3분 짜장’을 섞은 ‘특제 짜파게티’를 만들 때 “건더기가 부족하다고 야채나 고기를 손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스턴트에 신선한 재료를 추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 인스턴트는 최대한 인스턴틀리하게 먹어야 진정한 인스턴트라고 할 수 있다”라고 조언을 하는 것〈차이니즈 봉봉클럽-더 맛있는 서울 편〉이 그렇다.

게다가 이 만화들이 소재로 삼는 음식은 스팸·양념치킨·사발면·마가린·무말랭이·맛동산·달걀 프라이·어육 소시지 그리고 슈퍼에서 파는 빵, 바나나맛 우유, 자판기 커피, 뽑기(달고나), 솜사탕 등 소소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다루는 작가들은 식품첨가물이나 원산지에 관대하고 공산품의 특정 상표명을 언급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들은 원산지, 칼로리, 콜레스테롤, 유기농, 저농약, 무색소, 무항생제, 무방부제 따위의 기준에 따라 ‘고르고 고른 음식’이 아니라 항상 곁에 있는 ‘만만한 음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웰빙과 슬로 푸드를 추구하는 독자라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코알랄라> 6화 ‘라면편’의 한 장면.
‘수다’를 부르는 국내산 음식 만화

하지만 그게 또 매력이다. 보기 만만한 만화에서 먹기 만만한 음식을 다루니, 독자들은 그저 입맛 다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바로 ‘실천’과 ‘참여’다. 〈식객〉을 보고 매생이국을 만들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스위트 레시피〉의 미소년 남자 등장인물이 가르쳐주는 ‘쌀밥 짓기’나 〈차이니즈 봉봉클럽〉에서 전수하는 ‘짜파게티 맛있게 끓이기’ 정도는 얼마든지 따라해볼 수 있는 것이다.

얌이 작가는 “〈코알랄라〉를 그릴 때 독자들이 ‘맛있을 것 같고 만들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이 숫자를 보면 위축되기 마련이라 레시피에 분량을 쓰지 않을 때가 많고, 대체할 수 있는 재료가 있으면 꼭 써주는” 편이다. 〈자취요리 대작전〉의 박성린 작가는 “비전문적인 나 같은 사람이 만화로 요리법을 제시하면 독자들도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가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루디’s 커피의 세계, 세계의 커피>의 한 장면. 주인공 루디가 만든 커피의 향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참여’가 가장 빛날 때는 음식 만화가 인터넷을 만났을 때다. 〈코알랄라〉나 〈오무라이스 잼잼〉처럼 웹툰으로 연재되는 만화는 독자들의 피드백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진다. 만화가 다루는 음식이 특별한 것이 아니기에, “맛있겠다~” 정도가 아니라 “나도 먹어봤는데…”로 시작하는 구체적인 경험담이 올라온다. 클램차우더 수프 레시피를 알려주면 “그럼 전 감자수프 레시피를 소개하겠다” “거기에 베이컨과 골파를 넣으면 아웃백 베이컨 감자수프가 된다”라는 독자 댓글이 주르륵 달린다. 추억의 과자 ‘뽑기’가 소재로 등장하면 똥과자, 국자, 때기, 달고나, 뽑기, 띠기, 퐁퐁, 오리띄기처럼 각자 고향에서 불렀던 명칭을 공유하고 컵라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각자 먹어본 최고의 컵라면에 대한 일대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작가들도 독자들과 음식 수다를 즐긴다. 얌이씨는 독자들의 댓글 참여에 대해 “마치 방에 모여서 음식 얘기로 잡담을 나누는 것 같아 흥미진진하다”라고 말했다. 조경규씨는 〈오무라이스 잼잼〉을 연재할 때 중국 ‘짝퉁’ 과자를 상품으로 내걸고 우리나라를 대표할 과자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댓글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독자들은 닭발맛 과자, 김치부침개맛 과자, 반찬 없을 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두부과자와 어묵과자 같은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조씨는 “그날 그날 올라오는 댓글이 웹툰을 하는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음식 만화가 더 훈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식을 만들고 먹는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자취생 음식을 해먹다가 가슴 두근거리는 이성 친구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결국 둘이 결혼해 집들이 음식을 마련하는 데까지 발전하는 〈자취요리 대작전〉이나 하루 다섯 끼를 먹는 4인 가족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오무라이스 잼잼〉, ‘넌 지금 살아 있지 않냐’고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 만큼 맵고 짠 장례식장 육개장처럼 우리 삶 속 구석구석의 음식 이야기를 엮은 〈키친〉까지, 모두 음식 위에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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