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교의 바스켓 休] '네모난 농구인생' 조우현 은퇴.."이젠 둥글게 살아야죠"

서민교 기자 2010. 8. 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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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중략)/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중략)/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도 몰라~"

유영석 작사·곡의 '네모의 꿈'은 재밌는 가사와 반복된 운율로 딱딱한 세상보다는 부드러운 둥근 세상을 꿈꾸는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네모'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까다롭고 딱딱하다. '네모'하면 떠오르는 농구선수도 있다. 유난히 각진 턱으로 '사각슈터'란 별명으로 코트를 누빈 조우현(34, 전 KCC). 하지만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코트 위에서 볼 수 없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조용히 은퇴를 선언했다.

1999년 드래프트 2순위로 동양(현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프로에 데뷔한 조우현. 중앙대 시절 세계올스타에도 뽑힐 정도로 뛰어난 슈터였던 그는 LG와 전자랜드로 옮겨 다니며 화려한 빛을 보기보단 숱한 불화설로 구설수에 올랐다.

KCC로 이적한 이후 코트 대신 벤치에서 비로소 웃음을 되찾은 그의 농구인생은 생김새만큼이나 네모났다. 그는 오해와 진실의 벽을 허물기도 전에 코트를 떠났다.

한(恨) 많은 농구인생이지만 그는 웃는다. 노래 가사처럼 네모난 코트가 아닌 둥근 세상을 꿈꾸며….

# 은퇴, 내겐 갑작스럽지 않았다

올해 농구대잔치세대였던 이상민과 문경은, 우지원이 줄줄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농구판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조우현의 은퇴는 조용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계약기간도 1년이 남아있었다.

지난달 28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은퇴 얘기를 꺼내자 오히려 당황했다.

"어? 몰래 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저도 몰랐어요. 감쪽같이 넘어갈 뻔 했어요.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저한테 뭐 물어볼 말이 있나요? 그냥 집으로 오셔서 식사나 한 끼 하세요."

다음날 저녁 성북구 하월곡동 자택에서 흰 티셔츠에 안경을 쓴 편안한 차림의 그를 만났다. 아내 정지예(31)씨도 함께 반갑게 맞았다. 시원한 냉커피 한 잔과 함께 은퇴 얘기부터 꺼냈다.

갑작스런 은퇴. KCC에서 재기를 노리던 그는 왜 돌연 코트를 떠났을까? 그의 대답은 또 의외였다. 담담하게 은퇴 이유를 밝혔다.

"저한테는 갑작스런 은퇴가 아니었어요. 2~3년 전 전자랜드 있을 때부터죠. 그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2년 동안 거의 코트에 못 나왔잖아요? 그 시간이 저에겐 생각할 시간을 줬어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됐죠. 워낙 밑바닥을 기었으니 은퇴는 자연스러운 거 아니겠어요? 아내에게도 입버릇처럼 은퇴 얘기를 했었고요."

준비된 은퇴. 하지만 대답이 석연치 않았다. KCC에서 그는 재기가 가능했다. 이미지도 완전 달라졌다. 뛰는 시간은 적었지만, 벤치에서 언제나 웃는 얼굴로 후배들을 격려하며 주축 선수보다 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많았죠. (KCC에서)1년 정도 있으면서 '예전에 착각을 했구나' 생각했어요. 저보다 잘하는 선수도 많았고, KCC 자체가 짜임새가 탄탄한 팀이었기 때문에 '그 틈에 껴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지도자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1년이 남았지만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씩 이해가가 갔다. 그는 2008-2009시즌 KCC에서 프로 첫 챔피언 반지를 끼었다. 주축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무엇보다 값진 순간이었다. 그에게 KCC에서의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가 어렵게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해 2월 시즌 중 부산 원정길에 올랐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내가 8개월 된 뱃속 아이를 사산했다는 것. 은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다.

"안 좋은 일이 있다 보니 연달아 터지더라고요. 둘째 아이가 목에 탯줄을 감고 사산했어요. KCC로 이적한 후 얼마 안돼서죠.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느꼈어요.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요."

# 잃어버린 2년 그리고 KCC

은퇴 얘기를 잠시 뒤로 하고 예전 얘기로 돌아갔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역시 중앙대 1학년이던 199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최우수선수상과 득점상을 독식하며 중국을 꺾고 한국을 1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첫 대표팀 발탁이었는데 그땐 아무 것도 모르고 한 거죠. 뭐. 중국과 결승까지 가서 우승하고 제가 상을 좀 타긴 했는데…"

청소년대표 얘기를 꺼내자 쑥스러움이 먼저였다. 아내가 옆에서 도왔다. "얼마 전 필리핀을 갔었는데 지금도 다 알아보더라고요." 그가 손사래를 쳤다. "내가 특이하게 생겨서 원래 잘 알아봐."

LG에서의 활약, KCC에서 처음 우승한 기분…. 옛 추억에 빠진 사이 전자랜드에서의 기억은 없었다. 아니, 좋은 기억이 없다고 해야 맞다. 그는 전자랜드에서의 2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전자랜드에 있을 때 2년 정도 코트에 못 나왔어요. 그때 당시에는 부상으로 못 나왔다고 했지만, 사실 부상은 없었어요. 불화설이다 뭐다 이상한 소문이 많이 돌았죠. 말 못할 얘기들이 많아요."

숱한 불화설이 궁금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잘못을 자신에게 돌렸다.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제가 먼저 잘못한 거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선수들이 항상 착각에 빠져 있는 거죠. 나는 잘하는데 왜 이 정도 대우밖에 안 해주냐. 불화가 생기는 이유죠. 힘드니까 운동도 설렁설렁하게 하고…. 그땐 원망도 많이 하고 이해도 못하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저 같은 선수가 제 밑에서 배운다고 하면 이해 못하고 미워했을 것 같아요. 나와서 생각하는 입장과 선수 시절 제 입장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지금은 이해가 가요. 제가 재기를 위한 노력 의지가 더 강했다면 그런 이유로 쓰러지진 않았겠죠."

2008년 강병현과 서장훈의 트레이드 당시 등 떠밀리듯 밀려난 KCC 이적은 그에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제2의 농구인생을 열어준 기회였다.

"KCC 와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전자랜드에서 떠날 때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대신 운동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어요. 단지 팀 분위기가 좋았죠. 많은 활약은 아니지만 잠깐 잠깐 감초 역할을 하는 것도 즐거웠고요. 결국 챔피언 반지를 못 끼고 은퇴를 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않게 우승까지 한 거죠. 허재 감독님도 트레이드로 절 데려와서 살려주셨고, 농구인생을 새롭게 열어주신 것 같아 구단에 감사하죠."

그래도 선수시절에 대한 아쉬움은 짙게 남아 있었다. 잃어버린 2년, 그리고 몇 년을 더 뛸 수 있는 체력, 유독 강했던 농구에 대한 자존심….

"전 욕심이 되게 많은 놈이에요. 미련을 버렸다는 것은 가식이죠. 부상도 없고 몇 년 더 뛸 자신은 있으니까요. 전자랜드에서의 2년은 정말 후회스러워요. 그냥 버렸다는 느낌이죠.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그런 시행착오는 겪지 않을 텐데….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보다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거든요. 절 가르쳤던 지도자께도 마음이 걸리고…."

# 둥근 인생 위한 첫걸음

조우현은 농구선수 가운데 재테크를 잘하기로 유명하다. 소문도 무성했다. '부동산으로 100억을 벌었다' '아파트가 몇 채다' '아내가 어린이집으로 성공했다' '은퇴를 해도 걱정이 없겠다' 등 소문이 소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재테크 비결을 묻자 고개를 흔들었다. 오히려 "차라리 대박이라도 났으면 좋겠어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동안 쌓인 구설수로 아픔이 많아 보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혈압으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10년간 아버지 병수발에만 매달렸다. 그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었다.

"전 어려서부터 어쩔 수 없이 돈 관리를 제가 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요. 남들 하는 것처럼 저축하고 적립식 펀드하고 그랬던 거죠. 집도 의정부에서 전세로 시작해 청약해서 옮겨 다녔고요. 재테크 붐이 불면서 그냥 안 쓰고 모은 거죠. 그런데 음료수를 하나 사도 자꾸 부풀려져 '집을 샀네, 땅을 샀네' 라는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는 지금 차도 없다. 선수시절 타던 고급승용차도 없앴다.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예전부터 '동대문 마니아'라는 그에게는 '검소'라는 단어가 당연하게 붙어 있었다. 아내 역시 결혼 후 명품 핸드백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단다.

"은퇴하고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적응을 못하겠더라고요. 직장을 잃었으니까요.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눈을 뜬 거죠. 아쉬운 것은 없어요. 적응해 나가야죠. 선수시절 화려한 생활은 다 해봤잖아요."

아내의 스트레스는 더했다. 남편의 유명세가 오히려 10년 전 순수하게 시작한 어린이집도 그만두게 만들었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경기장에 초청한 게 화근이 됐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주변 구설수에 결국 아이까지 잃었다.

아내 정지예씨는 "오해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상업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상한 소문과 스트레스로 정말 힘들었어요. 산부인과 선생님이 '아이가 스스로 목을 감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 잃고 다 그만 두고 집에서 내조만 했어요."

그의 은퇴와 동시에 수입은 없는 상태. 아내는 아쉬움도 많았다. 1년을 남겨두고 왜 은퇴를 했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제가 힘들어서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많았거든요. 이젠 집에서 남편 내조만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은퇴했다고 집에 와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라고요. 그 뒤로 병원에서 일주일 내내 있었던 것 같아요."

은퇴 후 그는 집밖을 맴돌았다. 산도 다녔다. "예전부터 은퇴 얘기를 많이 해서 편하게 생각했는데, 아내 생각은 달랐던 거죠. 명퇴하신 분들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처음에는 미워서 어디가나 묻지도 않았어요. 혼자 산에 갔다고 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파서 신랑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려고 해요. 이젠 신랑의 마음도 뜻도 다 이해해요."

# "눈높이 지도자 되고 싶어요"

조우현의 꿈은 지도자다.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도 시작했다.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대학원도 다닐 계획이다. 대학시절 받아놓은 교원 자격증도 있다. 지방 중고교를 찾아 농구특강도 하고 있다.

"목표는 크게 잡으라고 하잖아요? 물론 프로 감독이 되는 게 꿈이죠. 그런데 해야 할게 많아요. 어린아이들 가르치면서 경험을 많이 쌓고 싶어요. 어떤 위치라도 상관없죠. 아무 것도 모르니까 엄청 노력을 해야죠."

지도자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운 것은 KCC에서다. "선수에 대한 미련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이상하게 벤치에서 후배들 모습 보면서 조언해주는 것이 재밌었다는 거예요. 남들이 보면 '오버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제 경험에서 나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구나'라고 느꼈어요."

그가 꿈꾸는 지도자는 눈높이 교육이다. 감독이나 코치, 체육교사, 어떤 것을 하든지 '조우현 스타일'로 하겠다는 것.

"아기자기하게 제 나름대로 잘하고 싶어요. 선수시절 제가 못했을 때 지도자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거든요. 친구 같은 코치, 때로는 형이나 아버지 같은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 공부를 해야죠. 준비도 안하고 불러주기만 바란단 얘기는 듣기 싫어요."

그는 선수시절부터 지독한 징크스가 있었다. '웃으면 게임을 망친다.' 네모난 얼굴형에 인상까지 쓰고 있으니 이미지가 강하게 박힐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네 살 된 첫째 딸 소현이도 길 잃으면 "우리 아빠 조우현이요"가 아니라 "우리 아빠 네모네요"라고 말한단다.

네모난 농구인생. 이제 그의 인생 제2막은 둥글게 굴러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제 얼굴이 딱 봐도 강하잖아요? 제가 웃으면 하체에 힘이 풀려서 몸에 힘을 많이 주고 운동을 해야 하거든요. 이젠 힘줄 일 없으니까 웃으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야죠. 걱정은 되도 은퇴 결정 후회는 안 해요. 하하."

※ 바스켓 休(휴)… 농구전문지 「점프볼」에서만 볼 수 있는 농구인들의 진솔한 뒷이야기와 농구팬들의 휴식과 같은 공간이 되는 코너입니다.

# 사진 문복주 기자

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0-08-03 서민교 기자( 11coolguy@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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