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빈, 사슴의 눈과 야수의 손을 가진 아저씨

2010. 8. 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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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친근한 듯하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이다.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이 단어를 영화 '아저씨'는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영화는 한 소녀를 위한 한 남자의 뜨거운 집념을 담는 동시에 피비린내 나는 비정한 액션을 그린다. 어느 누구에겐 정답지만 또 어느 누구에겐 피 냄새를 훅 끼치는 남자, 아저씨. 영화 '아저씨'는 그런 한 남자에 대한 인간적이면서도 비인간적인 보고서다.

스크린을 여는 남자는 어둠에 절어있다. 컴컴한 전당포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태식(원빈)은 옆집 소녀 새미(김새론)와 유일하게 감정을 나눈다. 어둔 과거가 그의 현재를 삼켜버린 듯한데 아무도 그의 과거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 긴 머리로 한쪽 눈을 가리고 세상의 반만 보고 싶어하는 듯한 이 사내는 원치 않게 비열한 세상 한 가운데로 다시 뛰어든다. 새미의 엄마가 마약 조직의 마약을 가로챘다가 딸과 함께 납치당한 것. 태식은 유일한 친구 새미를 구하기 위해 감춰뒀던 맹수의 발톱을 드러낸다.

태식이 새미를 찾아가는 핏빛 여정을 통해 영화는 태식의 과거를 조금씩 드러낸다. 암흑가의 잘 나가는 킬러였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특수부대 정예요원 출신. 비밀 작전과 관련, 임신한 아내를 잃으면서 그는 세상을 등진 것으로 묘사된다. 어린 새미를 구하기 위해 몸을 기꺼이 던지는 태식의 액션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대목이다.

영화는 시종 어둡고 차갑고 소름 끼친다. 손도끼가 무시로 날아다니고 피와 뇌수가 화면에 질척거린다. '통나무 장사'(장기 밀매)를 하다 마약에까지 손을 댄 만석(김희원) 형제 일당의 행각은 보는 이의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씩 달아놓는다. 아이들을 키워 팔 수 있는 모든 장기는 다 처리하고, 장기를 팔기 전까진 아이들을 마약 공장에 동원한다. 인면수심의 죄악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면서도 내뱉는 소리. "우리를 포함해 여러 명을 살리는 일이니 얼마나 좋아". 스크린은 이들의 악행으로 냉기를 한껏 품는다.

이에 맞서는 태식의 정의감 어린 액션도 진저리가 쳐진다. 브레이크 잃은 폭력의 무한 질주가 영화에 속도감을 더한다. "(태식이 복무하던) 특수부대의 무술시범을 본 국회의원이 쇼크로 기절을 했다"는 대사처럼 쾌감보다 혐오감을 더 불러일으킬 과격한 액션이 숨통을 옥죈다. 그래도 정교하면서도 간결한 배우들의 액션은 시선을 끌어당긴다. 특히 영화 후반부 태식이 만석의 오른 팔과 펼치는 일대일 대결은 오래도록 복기 될 만한 액션의 백미다. 두 배우의 몸에 카메라를 각각 설치해 촬영한 장면이 액션의 긴박감과 실재감을 더한다.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명 잘 만들어진 이 영화의 정점은 원빈의 연기다. 커다란 사슴 눈망울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짐승과도 같은 모습은 그가 새로운 연기 영역에 진입했다는 선언과 다름 아니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만 난 오늘만 보고 산다. 오늘만 보고 사는 삶이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알려주겠다" 등의 대사는 지극히 문어체적이어서 사실감이 떨어지나 기이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첫 단독 주연작으로 원빈은 '꽃미남' 이미지를 가볍게 털어낸다.

바닥을 뒹구는 눈알, 모든 장기를 뺏긴 시체 등 눈을 질끈 감아야 할 모습들이 종종 엄습한다. 간 큰 사람들도 소스라칠 영화로 임신부나 노약자는 관람을 피해야 할 듯. '열혈남아'로 재능을 인정 받은 이정범 감독의 두 번째 영화다. 5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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