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양감을 잊은듯..구리선의 유려한 드로잉
일우스페이스 정광호 작품전
"아니, 이런 조각도 있었다니! 한 점의 '선(線) 드로잉' 같네."지난봄 대한항공(회장 조양호)이 서울 서소문빌딩 1층에 개관한 일우(一宇)스페이스에서 이색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가늘고 부드러운 구리선을 공들여 엮어가며 형상을 빚어내는 조각가 정광호(51)의 작품전이 개막된 것. 개관전으로 '배병우 사진전'과 일우사진상 수상작가 '백승우 초대전'을 개최했던 일우스페이스는 세 번째 전시로 구리선 조각 작품을 만드는 정광호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속이 훤히 비치는 금속작품 18점이 나왔다. 너무 투명한 나머지 속이 있는 대로 비쳐 보이지만 그의 작품은 엄연히 조각이다. 그러나 '가장 조각 같지 않은 조각'이기도 하다. 미술계에선 따라서 '비(非)조각적 조각(non-sculptural sculpture)'이라 부른다.
오는 9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조각전에는 정광호의 대표작 18점이 나왔다. 가는 구리선을 일일이 엮고 이어붙이며 나뭇잎, 꽃, 항아리,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낸 정광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그윽하다.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지는 작품은 작가가 가는 선을 무수히 이어붙이며 마치 구도하듯 작품을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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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선을 망처럼 연결해 만든 정광호의 'THE LEAF 83230' |
구리철사의 엮임으로 구현된 작품은 목조나 석조 조각에서 중요시된 입체감보다 '선의 요소'가 부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작품 내부와 외부의 상호관계를 조화시키며 선의 운율이 공간 속에 그려지는 드로잉처럼 펼쳐진다.
특히 일우스페이스의 눈부시게 흰 대리석 전시공간 속에서, 정광호의 작품은 '공간에 그려진 드로잉'으로 다가온다. 즉, 입체와 평면이라는 장르의 고정된 벽을 허물며, 전시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작품이 되는 '확장된 조형미'를 선사한다.
또 그의 조각은 조명에 의한 반사, 즉 그림자가 포인트다. 구리선은 전시공간의 벽면이나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움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선과 면, 유기적 곡선과 그림자가 이뤄내는 감각적인 형태는 정광호 조각의 묘미다.
항아리 같은 입체를 만들어도 정광호의 조각은 속이 있는 대로 들여다 보인다. 조각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양감(mass)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 가뿐하고 투명한 나머지, 조각이 지녀야 할 '덩어리'감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것. 때문에 그의 '비(非)조각적 조각'은 조각, 회화, 설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성과 관련해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일정한 공간 속에 구현되지만 구체적인 매스를 지니지 않고 부단히 선으로 환원된다"며 "입체적이면서도 동시에 평면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작가는 "그간의 나뭇잎이나 꽃, 항아리 작업에 이어 요즘은 물고기와 문자, 산수풍경으로 주제를 크게 넓히고 있다"고 밝혔다. 종전 그의 작업이 도를 닦으며 제작한 듯했다면, 신작들은 좀 더 가볍고 다양하며 움직임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02-753-6502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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