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줌마, 우아하고 엣지있다
'한국 아줌마'는 뻔뻔함과 억척스러움의 대명사다. 지난 4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는 "아줌마라는 말은 푼돈을 아끼고 지하철에서 자리다툼을 하고 보기 싫은 파마를 하고 남의 험담을 좋아하는 수다쟁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도 가정 생활도 척척 해내는 슈퍼 우먼 이미지가 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줌마는 '주책맞은' 이미지다.
그런 대한민국 아줌마를 대표하는 두 여성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9년 미시즈 코리아 진(眞) 이수영(37)씨와 2010년 미시즈 코리아 진(眞) 한기혜(28)씨.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만 봐서는 '아줌마'란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데 막상 아이얘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모습은 영락없이 털털한 아줌마들이다.
아직까지 '미스 코리아'보다 생소한 '미시즈 코리아' 선발대회는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참가자격은 '기혼'이면 된다. 우리는 만 20세~45세 미만으로 나이 제한을 두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나이 제한이 없는 곳도 많다. 미시즈 코리아로 선발되면 한국 대표로 미시즈 월드에 참가하게 된다. 특히 올해 미시즈 월드 대회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기 때문에 의미가 더 각별하다. 2014 동계 올림픽 유치전에서 평창에 패배의 아픔을 안겨줬던 러시아 소치는 2007년 미시즈 월드 대회를 개최해 소치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2009년 베트남에서 열린 미시즈 월드대회에 참가했던 이수영 씨는 "페루 대표의 경우 나이가 50대였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시즈들에게 좋은 일이죠"라고 말했다. 슈퍼모델 출신인 이수영씨는 24세에 결혼해 출산 등으로 활동을 잠시 쉬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등지에서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미시즈 코리아 심사 기준은 수영복 심사나 드레스 심사, 인터뷰 등 미스 코리아와 비슷하다. 다만 가정은 물론 자기 일을 가진 여성들이 많기 때문에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균형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다. 당초 1~2회 대회 때는 수영복 심사가 없었지만 미시즈 월드 대회에 수영복 심사가 포함돼 있어 3회 대회 때부터 수영복 심사가 들어갔다.
결혼 1년 차로 프리랜서 통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기혜 씨는 미시즈 중에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분들이 많다고 말한다. "아줌마하면 새치기 잘하고 뻔뻔하고 그런 이미지인데 한국 아줌마도 우아할 수 있고 멋부릴 수 있고 엣지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처녀 시절 미인 대회 출전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한 씨는 미시즈 코리아에 출전하려던 친한 언니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대신 나왔다가 일등을 거머줬다.
두 사람은 미시즈 코리아나 미시즈 월드에 대해 단순히 '얼굴 예쁜 아줌마' 뽑는 대회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외국에서 미시즈 월드는 미스 월드나 미스 유니버스 못지 않은 중요한 대회로 인식된다고 한다. 미시즈 월드는 1938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시즈 아메리카가 모태가 됐으며 1985년부터 세계적인 대회로 발전했다. "미시즈 월드 수상자들을 보면 헐리우드 배우 등 경력이 대단해요. 외국 드라마만 봐도 아줌마 이미지는 가정 생활도 일도 잘 해내는 그런 커리어 우먼이잖아요"(한기혜씨)

"결혼을 하나의 과정으로만 생각하니까 그렇죠. 외국에서는 우리처럼 결혼하면 죽었다, 다 끝났다고 생각 안해요. 다른 나라 미시즈 대표들은 팔뚝 살이 엄청 찐 여성들도 자신감을 무기로 당당히 무대로 나서죠"(이수영씨)
아직 초기 단계여서 홍보가 덜 되고 참가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점도 있지만 미시즈 코리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도 열정적인 삶을 사는 주부들이 당당함을 뽐내며 즐기는 대회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 두 사람의 바람이다.
한 씨는 "미시즈 코리아 참가자 중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나오고 내년에도 나간다는 분도 계세요. 상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 만나고 합숙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죠"라고 전했다.
실제 긴장되는 최종 입상자 선발 대회 전날에도 일부 참가자들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친목을 다진다. 대회가 끝난 후에도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참가자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한다. 특히 미스 월드와 달리 미시즈 월드는 남편 등 가족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이다.
"미시즈 월드 대회 때 러시아 인근 지역의 대표의 경우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등 온가족이 대회장에 놀러와서 함께 즐기더라구요"(이수영씨)
하지만 아줌마들이 나서는 것에 대한 주위의 편견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한 씨는 "미시즈 코리아 대회 때 행사 버스 운전하시는 분이 친구랑 통화하면서 '무슨 아줌마들이 이런 대회에 나오냐. 주책바가지다'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아줌마는 집에서 밥이나 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한 거죠"라고 털어놨다.
이같은 편견을 떨쳐버리고 미시즈들이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남편의 외조(外助)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외국의 경우 결혼해도 남편들이 '내 와이프가 멋지게 보여야지'라며 적극 밀어주고 홍보도 하는데 한국 남자들은 나서서 부인 자랑을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한기혜씨)
"주위에 보면 남편이랑 싸우고 나오거나 남편이 대회 나가면 가만 안둔다고 해서 출전을 중도 포기한 사람도 많아요"(이수영씨)
그런 면에서 이수영씨는 행운녀다. 그녀의 남편은 미시즈 코리아 대회 당시 김밥 등 다른 참가자들 간식까지 챙기는 등 섬세한 외조로 유명했다. 베트남 대회에도 따라가 이 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는 열성을 보였다. 이같은 든든한 지원 덕에 이수영씨는 한국 대표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활동한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을 좋아하니까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열렬히 환영해주더라구요. 한국을 대표해 80여개국 미시즈들과 함께 세계 대회를 치른 경험은 평생 죽었다 깨나도 다시 못할 것 같아요"라며 이 씨는 짜릿했던 기억들을 전했다.
신수정 기자/ssj@heraldm.com사진=안훈 기자/rosedale@[ 헤럴드경제 모바일 바로가기] [ 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구독신청]-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