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자이니치(在日)

이승철 논설위원 2010. 6. 18.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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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이 일본보다 잘 살게 되면 그때 귀화를 고려해보겠습니다." 지난달 일본을 방문했을 때 통역인 재일동포 3세 서일순씨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동안 숱하게 재일동포를 만났을 때 차마 가슴이 아파서 하지 못한 질문인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중년 여성인 그녀가 먼저 답을 꺼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찡했다.

그녀는 2000년대 초 한국 언론의 통역을 맡았을 때의 일을 소개했다. 친해진 한 기자로부터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은 이유를 질문을 받은 뒤 하루 동안 고민한 끝에 찾은 해답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류 붐에 푹 빠진 일본인 단짝 친구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같은 대답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일본인들의 갖은 차별과 박해 속에서 국적을 지킨 할아버지·할머니, 부모님을 거론하며 "한국이 아직 일본보다 못한 상황에서 귀화를 하면 우리가 못나 그런 것 같아 분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일동포들에게 과연 국적이란 무엇일까.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크게 한국, 북한, 일본으로 나뉜다. 그래서 많은 동포들이 국적 앞에서 갈등을 일으킨다. 조총련 학교에서 대학까지 마친 서씨가 유달리 순수 한국 국적임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월드컵 축구에서 브라질과의 일전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북한의 정대세는 특이하게 국제적으로는 사실상 한국과 북한 국적 모두를 인정받고 있다.

요즈음 일제 강점기에 끌려온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스스로를 '자이니치(在日)'라고 부른다.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었던 재일동포들이 자이니치라는 용어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일본인에 따라서는 다소 멸시의 뜻을 담아 사용하지만 이제는 자이니치라는 말이 일본에서 대세로 굳어지는 듯하다. 자이니치라는 용어 속에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해방 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른바 '재일 코리안'들과도 구분된다.

1980년대 한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90년대 말 일본으로 건너간 신명직 구마모토 가쿠엔 대학교수는 저서에서 자신을 '감히' 자이니치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재일 코리안과 남북한, 재일 코리안과 일본, 그리고 재일 코리안 내부의 3색 경계를 언급하면서 경계를 넘어설 것을 역설했다. 통역인 서씨가 말한 귀화조건이 신 교수의 주장과 맥이 통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경계가 허물어져 서씨가, 또 정대세가 국적을 갖고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그날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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