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생식기 주인은 명월관 기생 '홍련'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는
일제 강점기 사이비 종교였던 백백교 교주의 머리와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가 보관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 시사저널 > 제1057호(1월26일자)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 등은 '여성의 생식기 보관을 당장 중지하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국과수는 이들 인체 표본에 대해 적당한 절차를 거쳐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백교 교주는 전용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식기의 주인은 누구인지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구전으로는 당시 유명한 기생집인 '명월관' 기생의 생식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생과 동침한 남자들이 줄줄이 복상사를 당했고, 일제가 인체 연구용으로 성기를 적출해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 보관했다는 것이다.
이 생식기의 주인은 누구이기에 이런 비참한 모습이 되었던 것일까. < 시사저널 > 과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추적에 나섰다. 우선 당시 조선과 일본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일본 화가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 1882~1958)에 주목했다. 이시이는 우리나라 근대 화가의 선구자로 알려진 이중섭 선생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918년과 1921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 각지를 돌며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 이시이와 명월관 기생 '홍련'이 사랑에 빠졌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 시사저널 > 과 문화재 제자리 찾기는 오랜 탐문 끝에 일본 마쓰모토시의 시립미술관에 이시이가 그린 '홍련'의 실물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난 4월8일에는 이 그림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을 찾아갔다. 미술관측은 특별관람실에서 '홍련'의 실물 그림을 공개했다.
그림 속의 홍련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함께 갔던 일행이 일제히 '와~' 하는 감탄사를 자아냈을 정도이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어둡고 슬펐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듯했다. 당시 명월관 최고의 기생임을 상징하듯 왼손에는 금가락지 세 개를 끼고 있었고, 옷고름에는 금 노리개가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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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련'의 실물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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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얽힌 일화, 나이, 사망 시점 등 '비슷'
이 그림을 통해서 국과수 생식기의 주인과 명월관 기생 홍련이 상당히 부합한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이 그림은 1918년에 그려졌고, 그림 속 주인공의 이름은 '홍련'(紅蓮)이었다. 그림의 배경으로 볼 때 홍련의 방에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1918년은 이시이가 조선에서 활동할 시기였으며 이때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였고, 이 당시 최고 기생집이 바로 '명월관'이었다. 1909년에 개업한 명월관은 1918년 화재로 소실되기까지 일본과 조선의 고관대작들이 자주 들렀던 곳이다.
당시 명월관의 최고 기생은 '명월이'로 알려진 생식기의 주인공이다. 또한, 국과수에 보관 중인 생식기의 상태 등으로 볼 때 이 기생의 사망 시점도 30대로 추정되고 있다. 명월관 최고 기생이었던 '생식기의 주인공'과 '홍련'을 동일 인물로 볼 수 있는 근거이다.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은 "여러 정황을 보면 국과수에 보관 중인 생식기의 주인공과 홍련은 동일 인물이 확실하다. 불교계는 국치일인 오는 8월29일 일제 피해자 천도를 위한 영산제를 지낼 계획이다. 이때 국과수의 여성 생식기도 장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홍련의 그림을 영정으로 사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쓰모토 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 그림은 1954년에 이시이 선생의 가족들이 마쓰모토 박물관에 기증했다가 2002년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옮겨 왔다. 지금까지 이 그림을 보러 온 한국인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46일본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련'의 실물 그림.일본 마쓰모토·정락인 기자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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