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엿보다](12)담배
1970년대에 담배 이름을 이어 붙여 글을 짓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일종의 말놀이인데, 이런 식이다. '새마을에서 단오에 청자를 만나 거북선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개나리 만발한 한산도에서 명승을 구경하고…'. 새마을, 단오, 청자, 거북선, 은하수, 개나리, 한산도, 명승은 70년대에 시중에서 팔리던 담배였다.

1970~80년대 시대상을 이름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담배들.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 광해군 연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은 오래됐어야 400년 전인 셈이다. 정작 광해군은 담배 냄새를 싫어해 조정 대신들이 정무를 논할 때 금연할 것을 명했다고도 한다. 효종 때 조선에 왔던 하멜의 < 표류기 > 에는 '조선 사람들은 담배를 좋아해 아이들도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우며 남녀노소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조선 백성들이 담배를 약으로 썼기 때문이다. 당시 담배는 횟배 앓는 데 특효라고 알려져 있었다.
'골초' 임금이었던 정조는 "마음과 몸에 피로가 쌓인 지 수십 년….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며 담배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물론 담배의 해악이 알려지지 않은 때이다. 고종도 애연가였으나 백성들이 '국채보상운동'을 벌이며 담배를 끊자 금연 결심을 하기도 했다.
1905년 대한제국 궁 내부에서 담배 전매를 하며 자체 기술로 만든 국내 최초 궐련 담배 '이글'을 생산했다. 일제강점시대에는 일본의 '무라이(村井)' 사에서 내놓은 '히로(hero)' 담배가 담배시장을 휩쓸었다. 무라이사는 고종의 초상화를 넣은 '히로' 담배를 내놔 조선인들로부터 '나랏님에 대한 불경'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도 담배는 정부의 전매사업이었다. 따라서 담배 이름이 정부시책 홍보성으로 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1945년 광복 이후 처음 나온 담배가 '승리'인 것도 그런 경우다. 조선군정청 전매국에서 내놓은 10개비들이 승리의 정가는 3원, 당시 쌀 한 가마니가 45원이었다니 무척 비쌌다. 서민들은 대나무 담뱃대에 재서 피우는 '쌈지담배'를 주로 피었다. 1946년에는 민족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민족의 꽃 '무궁화'의 이름을 딴 담배가 나왔다. 1948년 정부수립에 맞춰 새벽 닭 울음을 뜻하는 '계명'이 나왔다.
군용 담배로 유명한 '화랑'은 1949년 국군 창설 기념으로 나왔는데 81년까지 32년간 공급돼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58년 우리나라 첫 필터 담배인 '아리랑'이 나올 때까지 궐련은 모두 필터가 없는 막궐련이었다. 그런 탓에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피엑스를 통해 흘러나와 남대문시장 등에서 팔렸던 양담배가 '담배 중의 담배' 노릇을 했다. 양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전매청으로 끌려가 벌금을 내고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귀한 양담배가 낱개로 팔리면서 우리나라 담배도 길거리 가판대에서 '까치(개비의 잘못된 말) 담배'라 해 낱개 판매를 시작했다.
60·70년대에 많은 담배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또한 시대 분위기 반영이나 정부시책 홍보성이 강했다. 대표적으로 '새마을' '새나라' '희망' '자유종' '상록수' '청자'(이상 60년대), '환희' '한산도' '거북선' '남대문'(이상 70년대) 같은 담배가 있다. 새마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글씨를 써 담뱃갑을 디자인했으며 '협동'이란 문구를 포장에 써 넣었다. 한산도,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충정을 본받자는 의미로 나온 담배다. 고급 담배인 '파고다'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69년에 나온 '청자'는 당시 최고급 담배로 애연가들의 인기를 독차지, 발매 초기 품귀현상을 빚었다. '청자'가 애연가들의 인기를 끌며 전국에 '청자다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기도 했다. 80년대 대표적인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나온 홍보용 담배 '88'과 80년에 나와 2005년 제조가 중단된 '솔'이다. '솔'은 국산담배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450원짜리 최고급 담배로 출시됐지만 94년 오히려 200원으로 값이 내리며 최저가 담배가 돼 농촌용으로 보급됐다. '솔'의 맛을 기억하는 애연가들은 읍면으로 다니며 보루째 사다 쌓아놓고 피우기도 했다. 70년대부터 시작한 담배 수출이 90년대 들어서며 본격화되자 자연히 담배 이름도 온통 외국어 투성이가 됐다.
< 윤성노 기자 ysn04@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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