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때 큰 부진.. 아버지 안고 한참 울어"

[백투더스쿨] 황재균의 경기고 시절
올 겨울 사상 최대의 현금 트레이드를 단행한 히어로즈는 두 명의 선수를 '트레이드 불가 대상'으로 못박았다.
내야수 황재균(23)과 강정호(23). 특히 황재균은 롯데 등 여러 팀의 러브콜이 있었으나 히어로즈는 그의 몸값을 '100억원'으로 못박았다.
황재균이 '100억원의 사나이'가 되기까지는 아픔이 있었다. 황재균의 부모가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출신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황재균은 사당초교 6학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았다.
운동선수 출신 부모는 보통 자식들이 같은 길로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만 황재균의 부모는 반대였다. 황재균은 "처음에 테니스를 했고 야구는 정말 억지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황재균이 본격적으로 야구에 재능을 꽃피운 것 경기고 입학 후. 곽연수 당시 경기고 감독의 지도 아래 일취월장하던 황재균은 3학년 때 큰 벽을 만났다.
그 해 첫 출전한 전국대회인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에서 황재균은 그야말로 '죽'을 쒔다. 서울예선부터 방망이가 헛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황재균은 "그때 성적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렇게 야구를 못해본 기억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재균은 대회를 마치자마자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대선수가 되기까지 한번쯤 겪는 좌절을 황재균도 맛봤던 것이다.
황재균은 "그때는 너무 속상해서 야구를 하기 싫을 정도였지만 그때 실패를 계기로 다음 대회부터 안정을 찾았고, 결국 현대에 입단하게 됐다"며 밝게 웃었다.
| 1905년 한국 첫 야구단 창단▲경기고는= 19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야구단을 창단한 경기고는 초창기 한국야구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 학교 사정으로 팀이 해체됐다가 1976년에 재창단해 전국대회를 휩쓸며 '야구 명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승환(삼성) 이동현 오지환(이상 LG) 등을 배출했다. |
성환희기자 hhsu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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