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이즈의 날] 차별과 편견이 만든 '사회적 죽음'

#A씨는 HIV 감염 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모 정신과에 입원을 하게 됐다. 그 곳에서 HIV 감염이유로 격리가 되었고 다른 병실 환자들과 다른 색깔의 식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A씨는 입원 이후 우울증이 더 심해져서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병을 치료하려고 입원한 병원에서 오히려 마음의 병이 더 깊어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대 대학생인 B씨는 HIV 감염사실을 병원에서 확인했으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와서 검사를 받겠다고 의사에게 말하자 의사는 지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B씨는 HIV 감염 사실을 끝내 믿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을 범죄자로 취급한 의료인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 치료를 거부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같은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 환자 본인은 정신적인 충격과 함께 우리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부딪히게 된다. 오늘(1일)은 세계에이즈의 날.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 실태와 개선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한 '2008년 에이즈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조사'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의식과 부정적 인식은 미국, 영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가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미국과 영국은 20% 미만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0%로 10% 이상 차이를 보였다. '자녀와 같은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의견도 44%로 미국보다 30%나 높았다. '에이즈 감염인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33% 이상이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 '아프냐'는 질문에도 가슴이 '덜컥'
에이즈 감염인들은 누가 '아프냐'고 묻기만 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말한다. 에이즈 치료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얼굴색이 바뀌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등 외형변화가 나타나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눈치 채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톨릭의대 감염내과 강문원·김상일 교수팀이 에이즈 감염인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가 치료 중 발생하는 '외모의 변화'가 가장 두렵다고 답했다. 두 번째 역시 외모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피부의 변화'(38%)였으며 '우울증 또는 불안'(36%)이 그 뒤를 이었다.
혹시 감염 사실이 알려질까 감기 진료조차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의료보험 조회를 하면 쉽게 감염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건강검진에서 감염 사실이 밝혀지면서 직장을 잃는 사례도 많다.
◆ 감염 사실 알리지 않고도 보험혜택 가능
다행히 현재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가 에이즈 감염인 인권 보호에 발 벗고 나서는 중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사로부터 희귀난치성질환자로 확진을 받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등록을 하는 희귀난치성질환자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등록이 되면 희귀난치성질환자는 외래 또는 입원 시 진료비를 10%만 부담하게 된다.
에이즈도 희귀난치성질환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진료비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공단에 등록을 해야만 했다. 문제는 등록을 할 경우 에이즈 감염사실이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한에이즈예방협회는 공단과 보건복지가족부에 수차례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지난 9월 22일, 공단에 등록하지 않고도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질병관리본부의 공문이 내려온 상태다.
이인규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지원팀장은 "공단에 등록을 하면 의료보험 내역 조회 시 에이즈 감염 사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등록대상에서 제외시키되 혜택은 동일하게 적용받도록 진정서 제출했다. 이에 따라 등록이 불필요하게 됨은 물론 기존에 희귀난치성질환자로 등록했던 에이즈 감염인도 질병관리본부 측에서 자진 삭제키로 했다."고 말했다.
◆ "에이즈, 당뇨병보다 관리 쉬운 만성질환"
아직 남은 과제는 있다. 이인규 팀장은 "이 같은 제도 변화가 각 병원 및 환자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아 의사가 진료 도중 환자에게 희귀난치성질환자로 등록하라고 권유해 등록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질병관리본부가 종합병원 등에 더 홍보를 많이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에이즈 감염에 대한 사회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방지환 국립의료원 감염내과 교수는 "치료제를 복용할 경우, 에이즈 감염인의 수명은 일반인과 비슷하며 외형도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더구나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일상생활을 같이 하는 것만으로 감염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난희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회장도 "에이즈는 당뇨보다도 관리하기 쉬운 질병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 의학적으로는 만성질환 대열에 당당히 들어섰다"면서 "감염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차별과 편견은 이들을 생물학적인 죽음에 이르기 이전에 사회적인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만큼 모든 이들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미 MK헬스 기자 lsmclick@mkhealth.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바일로 읽는 매일경제 '65+NATE/MagicN/Ez-I 버튼'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