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야 산다(?)..대학로 누드 연극 돌풍

연극은 관객 앞에서 직접 배우가 연기를 한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난다. 배우가 옷을 벗을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 베드신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연극 무대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대 위에 선 예술이라고 하고 바깥에서는 외설이라고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객석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요즘 대학로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이른바 '누드 연극' 얘기다.
24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 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논쟁'.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사랑의 맹세를 잘 지키는 지를 실험하기 위해 20년 동안 격리되어 자란 두 쌍의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가 처음으로 자아를 깨닫고 이성을 만나 벌어지는 감정의 혼돈을 그린다. 문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녀 모두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등장한다는 것. 다시 말해 옷을 입지 않은 알몸으로 관객 앞에 선다. 비록 왕의 정원이라는 배경 탓에 밝은 조명이 비춰지지만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단지 옷을 입지 않은 것뿐만이 아니라 남녀 간의 육체적 교감도 피할 수는 없다.
'논쟁'은 지금 대학로를 휩쓸고 있는 누드 연극 혹은 알몸 연극의 대표주자. 지난 8월 처음 무대에 오른 이래 날마다 전회 매진 사례를 기록해 현재 극장을 옮겨 3차 공연 중이다. 이 공연을 보려면 표를 살 때 20세 이상 성인임을 입증하는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연을 보러 오는 이들은 3040 남성들. 흔히 연극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알려진 '아저씨'들이다. 누드 연극이 예술적 표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연출진의 주장과 달리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를 알려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23일부터 한 달간 한성아트 홀에서는 '논쟁'보다 더 야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진다. '교수와 여제자'라는 제목부터 성적 암시를 풍기는 작품으로 예술집단 참이 공연한다. 엘리트 교수와 그의 여제자가 벌이는 부적절한 관계를 실화를 토대로 극화해 남녀간 성행위에 대한 묘사도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화끈한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연출의 변도 공개된 바 있다. 역시 19세 이상만 볼 수 있다.
관객이 요구한 더욱 강한 노출
누드 연극이 물론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와는 노출의 비중이 훨씬 늘었고 노출을 대하는 태도도 훨씬 당당해졌다. 잠깐 누드로 등장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극 내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배우들이 무대를 누빈다. 브로드웨이에서나 볼 수 있던 출연진의 올 누드도 이제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고 할 정도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쉬쉬하며 보던 관객들도 이제는 대놓고 노출을 요구한다. 심지어 개그맨 백재현이 연출했던 뮤지컬 '오! 제발'은 광고와는 달리 노출 수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관객의 거센 항의를 받고 5일 만에 막을 내리기까지 했다.
물론 벗는다고 다 외설은 아니다. 11월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일본 작품 '나생문'처럼 성폭행이라는 소재가 극의 전개를 위해 필수적인 작품도 분명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은 극중 무사의 아내가 산적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는데 이를 무사와 산적, 무사의 아내가 각각 다른 시각으로 풀어낸다는 줄거리. 따라서 다소 선정적이라 할지라도 성폭행 장면을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이른바 작품성 외에 젊은 남녀의 벗은 몸과 그들의 움직임을 영상이 아닌 '실제상황'으로 보고 싶다는 관객의 열망과 그것을 자극하는 극단의 의도도 누드연극 붐의 또다른 축이다. "노출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작품을 위해 불가피한 장치"라는 말로 예술을 주장하면서도 외설 시비를 완벽하게 비껴갈 수 없는 것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대학로의 현실이기도 하다.
'교수와 여제자'의 포스터는 아예 '모 교수의 은밀한 수업을 폭로합니다'라는 선정적인 문구까지 들어가 있으며 아예 예술 대 외설 논쟁을 불러 일으켜 스스로 이슈를 만들겠다는 저의(?)도 엿보인다.
예술이니 외설이니 하는 논란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화와 인터넷 등에서 보여지는 선정적인 장면들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대학로의 누드 연극 붐이 뒤늦게 선정적인 장면을 '라이브'로 보여줘 관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인터넷 상의 음란 콘텐츠를 경계하는 것 못지 않게 비판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벗겨서 된다면 누구나 벗길 수 있다. 하지만 벗긴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영화나 인터넷 등 앞선 매체들이 이미 수 차례 보여주었다.
[김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99호(09.10.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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