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개그콘서트' 10주년 개그맨 방담, "우리에게 '개콘'은 OO이다"

2009. 9. 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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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10주년을 맞아 그 주역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만나자마자 서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은 어느새 쌓인 10년이란 시간이 참으로 새삼스러운 모양이었다. 10년 동안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1회 파일럿부터 출연한 '대화가 필요해'의 김대희(공채 14기)부터 '달인' 김병만(17기), '분장실의 강선생님' 안영미(19기),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의 한민관(21기), '독한 것들'의 오나미(23기)가 다 모였다. 글로만 담기가 너무 아쉬웠던 그들의 '개콘'이야기를 따라가본다.

  ▲ 10주년 소감 병만: 얼마나 오래 버틸까 생각도 들었지만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처음 출연은 66회부터 했다. 지금이 510회인가? (일동: 그 정도 될 거다) 매 100회 단위 특집 때마다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다. (김병만은 427회 출연으로 최다출연 기록을 갖고 있다) 쉬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건 나만의 무기인 몸개그 때문인 것 같다.

 대희: 병만이는 짧게 웃기는 것도 잘 하지만 '불청객들' 같은 코너를 봐도 그렇고 연기적인 코너도 잘한다.

 병만: 원래 '달인'의 모태가 옛날 '쇼, 행운열차'라는 쇼에서 했던 '고수를 찾아서'였다.

 대희: 당시 내가 담이(류담) 역할을 했다. 병만: 당시 담이는 수제자 역할을 했었다. 지금의 노우진 역할이었다. 대희: '달인'을 계획한다기에 다시 개콘에서 만날 줄 알았는데 담이랑 만 하고 있더라. (일동 웃음)

 기자: 초창기부터 개콘과 함께 한 멤버 아닌가? 대희: 파일럿부터 함께했다. 10년 할 줄은 몰랐다. 이제 삶의 일부분이 됐다. 병만: 초창기 대희선배는 꽃미남 멤버였다. 대희: 점점 잘 생긴 후배들이 들어오더라. 김인석(알프레도), 이정수(우격다짐) 등이 와서 그 위기를 벗어나려고 택한 게 '집으로'의 바보대구였다. (일동 웃음)

 나미: 중고등학생 때 였다. 처음 생긴 공개코미디라 좋았다. 10주년 무대에서 개그우먼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돼 영광이다.

 대희: 그런 감정 나도 안다. 처음 개그맨이 됐을 때 김한국, 오재미 선배를 실제로 보니까 떨렸다. 동경하던 사람들이 선배가 되니까.

 나미: 김미화 선배님이 10주년을 맞아 오셨는데 여유롭게 연기하시는 것이 좋았다. 영광이었다.

 영미: 내게도 10주년은 의미가 깊다. 개그맨 처음 됐을 때 1년도 못 버틸 거라 생각했다. 19기 동기(강유미,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 황현희, 김대범, 안상태 등) 중 내가 유일하게 캐릭터가 없었다. 내가 좀 외모도 애매하지 않은가. 못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쁘다고 하기도 그렇고. 코너를 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초반에 나만 코너가 없었다. 오래 못 할 줄 알았다.

 병만: 난 영미가 잘 될 줄 알았다. 안타까운 게 19기 중 연기가 제일 나은 거다. 그때 개그우먼 중에서 연기를 낫게 봤는데 나랑 똑같은 입장이라 마음이 갔다. 나도 스스로 '스타성이 없나'하고 생각했는데 영미를 볼 때도 연기도 좋고, 기본도 됐는데 하면서 생각했다. 결국 기회가 오니까 실력이 있으니 기회를 잡더라.

 민관: 1999년, 나는 굴삭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일동 놀람) 공사판에서 전부다 개콘 이야기를 하는 거다. 결국 개그맨이 돼 400회와 10주년을 함께 하게 됐다. 우상이었던 프로그램을 같이 하게돼서 영광이다.

  ▲ 나의 첫 무대 영미: 2004년 'A-Yo'라는 코너로 공채에 붙자마자 무대에 올랐다. 그때 두 무리가 나와서 랩배틀을 벌이는 내용이었는데 망가지는 쪽에 있었다. 웃겨보겠다고 빨간 내복을 입고 콧물 그리고 춤추고 그랬다.

 병만: 그때 끼를 봤다니까. 난 제일 싫어하는 게 예쁜 척하는 애들이다. 대희: 그래서 병만이 나미를 좋아한다. (일동 웃음) 병만: 개콘은 항상 신인들에게 단체무대를 준다. 나 같은 경우에는 2000년 12월 쯤 수근(이수근)과 함께 '대결'이라는 코너로 처음 나왔다. "부모님의 원수"라는 짧은 대사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떨렸던 기억이 난다.

 대희: 병만이 처음 왔을 때. 수근과 죽도를 들고 회의실에 노크를 하는 거다. 그래서 "들어와" 그랬더니 신발을 벗고 오는 거다. 회의실 입구에 약간 턱이 있는데 신발을 벗어야 하는 줄 알았나보다. (일동 웃음) 그리고 개그를 보여주고 검은 비닐봉지를 쓰는 게 있었는데 코너가 끝난 후 비닐봉지를 쓴 상태에서 PD의 지적을 받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기자: 10년 산증인의 첫 무대는 어땠나. 대희: 1999년 3월에 데뷔해서 5월에 처음 연습에 들어가 7월에 파일럿을 올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전부터 새벽까지 개그를 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첫 녹화 10분 전에 전유성, 김미화, 백재현 선배를 비롯한 모든 멤버 그리고 제작진이 종교를 초월해 대기실에서 기도를 했다. 그 때 가슴이 찡했다. 당시 이상봉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사이버 의상을 입고 정신없이 코너를 했었다. 개인당 코너가 10개가 넘었었다.

 민관: 나는 2006년 6월 '봉숭아학당'을 통해 처음 무대에 올랐다.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약해지지 말라우!"를 밀었다. 너무 긴장해 침이 마르는 거다. 끝나고 분장실로 가는데 다리가 풀렸었다.

 기자: 그 때 '북에서 온 사람이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 민관: 정말 그 관련 모임에서 단체로 쪽지가 왔다. '힘들면 연락해라'라는 내용이었다. 나미: 첫 무대가 '사랑이 팍팍'이라는 코너였다. 끝나고 동기들과 커피숍에 가 개콘을 틀어달라고 한 뒤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마치 우리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 나의 실수담 병만: 몸개그가 많아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 '무림남녀'라는 코너를 할 때 각목으로 버스표지판을 만들어 휘두르는 부분이 있었다. 같이 연기했던 김민정이 톱질이 미쳐 안 된 각목으로 진짜 때린 거다. 뒷목을 만져보니 진짜 피가 났다. 감독님이 아시면 혼날 것 같아서 숨기고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민관: 내가 NG를 낸 적은 없었다. '로얄패밀리' 코너 할 때 병철이(송병철)가 7번 연속 NG를 낸 적이 있다. 한 번 NG가 나면 관객들은 "괜찮아"하면 좋아한다. 하지만 연속으로 나니까 관객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결국 8번 만에 대사가 성공하자 관객들이 환호했다.

 (막간을 이용해 김대희와 김병만이 갑자기 새 코너 회의를 한다. 아이디어는 떠오르면 바로 대화를 직성이 풀리는 천생 개그맨들이다.)

  ▲ 슬럼프 기자: 개그맨으로서의 슬럼프는 없었는가. 병만: 고정코너를 오래하다가 다음 코너를 짤 때 악몽도 꾸고 그런다. 대희선배도 공감할 거다. '대화가 필요해'를 장시간 하다가 내릴 때 스트레스가 크다.

 대희: 8개월 동안 악몽을 꾸고, 술에 취해 병만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병만: 나도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달인'을 이기는 코너를 짜야하니까. 석 달 했던 코너하다 넉 달 코너를 짜긴 쉽지만 기록을 갖고 있는 코너를 하다가 다른 코너를 해야하니 기대치를 이기기가 버겁다.

 대희: '대화가 필요해' 마지막 회의를 12월 초에 했는데. 작가와 배우 셋이 테이블에 앉았다. 내가 "오늘이 마지막 회의다"라고 하는데 갑자기 봉선이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동민도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제일 선배인데 울 순 없잖나.

 병만: 개그맨으로서 마음이 아픈 건 개그맨들 모두가 다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게시판의 악플을 볼 때 힘이 빠진다. "그렇게 해서 먹고 살고 싶냐"는 글을 보면 마음이 제일 아프다.

 영미: 나의 경우에는 '고고 예술 속으로'가 끝나고 슬럼프가 있었다. 끝나고 동기인 유미(강유미)와 많이 비교되는 거다. 유미는 어제 나왔는데 너는 왜 안 나오니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댓글에서 "안영미는 강유미 덕이다"라는 글을 보고 작가실에서 사람들 다 있는데 펑펑 울기도 했다. 원래 코너가 끝나면 조금은 쉬어도 되는데 대중은 개그맨은 계속 나오길 원한다. 그 점이 힘들었다.

 병만: 그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기다린다는 뜻도 된다. 인지도가 생기니까 힘들어진다. 나도 수근과 비교가 많이 됐다. 우린 라이벌이 아니라 각자 가고픈 길이 따로 있다.

 대희: 나는 준호(김준호)와 그랬다. 

 ▲ 개콘 인기의 원동력은 병만: 3사 프로그램이 모두 다 경쟁이 있지만 그나마 개콘이 경쟁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소속사가 달라도 코너를 위해서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아이템을 공유하고, 재밌겠다 싶으면 주고 그런다. 선배지만 후배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대희: 무한경쟁이라 살벌하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끈끈한 정이 강하다. 민관: 혼자 할 때는 많이 힘들었는데 병만선배가 챙겨줬다. 정말 후배들을 아우르고 챙기는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다. 계약을 처음으로 병만선배 회사와 했는데 계약서를 아예 안 읽었다. 해코지를 안 할 분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 대신 계약조건이 위약금이 있는 게 아니라 위약검(劍)이 있다. 그걸로 베는 거지. (웃음)

  ▲ 놀라운 캐릭터 영미: '깜빡홈쇼핑'을 했던 안상태다. 바보는 바보인데 또 다른 바보를 만들어냈다. 눈빛도 정상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안 보지 않나.

 민관: 등장하면 웬만한 가수보다 환호성이 컸다. 병만: 내 생각에는 연변총각 때 열기가 제일 컸다. 민관: 나도 북한 개그를 좋아해서 '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 있다. 대희: '사바나의 아침'의 심현섭, 연변총각 강성범, 안어벙 안상태 등 많은데 10년을 보니 뭐가 최고인지 이야기하기 곤란하다.

 나미: 안상태 선배다. 대학로에 처음 가서 선배와 안어벙 쇼를 했다. 근데 선배의 결혼기사가 난 거다. 마침 당시 결혼상대자 나이가 22살이었고 나도 그랬다. 집이 시골이라 전화가 와서 "너 안어벙이랑 결혼하냐"고 그러더라. (일동 웃음)

 ▲ 아이디어 뱅크 병만: 아이디어는 좋은데 빛을 못 본 사람이 노우진과 류담이다. 추구하는 개그가 맞는 사람들도 호흡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준호·대희선배가 추구하는 게 비슷한데 준호선배와 나는 안 맞는다. '요상한 가족'이란 코너를 유세윤까지 넣어서 했는데 쫄딱 망했다. 받쳐주는 개그는 대희선배, 류담, 윤형빈, 유상무 등이 잘 하는 것 같다.

 대희: 받치는 것은 내가 11단이라면 상무는 8단이다. 류담은 받치는 것만 강하다. 요즘 드라마에 가니까 빛이 나더라. 연기파로 받치는 것은 상무다. 류담은 '달인' 때 보니까 정말 잘 받치더라.

 영미: 개그우먼 중에서는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같이하는 김경아, 정경미가 잘 해준다. 기자: 박준형도 잘 받치기로 유명하지 않나? 병만: 굉장히 기획적인 개그맨이다. 그런 기질은 배워야 할 점이다. 우리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하는데 항상 광고를 염두에 둔 코너를 짠다.(일동 웃음) 나는 '불청객들'하면서 인기는 있었지만 어두운 분위기라 광고가 잘 안 들어왔다.(웃음)

 대희: 받치는 역할이 정말 크다. 웃기는 사람만이 기억되지만 중요한 역할이다.  ▲ 10년 후의 모습 대희: KBS 희극인 실장을 하지 않을까? (웃음) 희극인협회 회장? 영미: 여자 김준호, 김대희가 되고 싶다. 큰 역이 아니더라도 후배들과 코너도 짜고, 내가 짠 코너를 같이하고. 그리고 될 수 있다면 개그우먼은 장수하지 않는다는 틀을 깨고 싶다.

 민관: 김준호 선배같은 연기자 되고 싶다. 후배를 받치면서도 웃기는 게 좋아보인다. 병만: 다른 활동을 해도 개콘에 머무르는 게 좋다고 본다. 개콘을 완전히 떠났던 친구들은 점점 쇠퇴하는 것 같다. 이미지를 갑자기 연기자로 바꾸려하면 문제가 된다.

 대희: 나도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에서 조연하다가 8개월 만에 돌아왔다. 가고싶은 분야는 다 다르겠지만 우선은 기본인 개콘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겸하는 게 좋다. 뿌리가 개콘이고 가지가 버라이어티나 연기다.

 나미: 개콘 지킴이가 되고 싶다. 병만: 얼른 시집가라. 나미: 영미선배 말처럼 개그우먼 수명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 

 ▲ 나에게 있어 개콘이란? 병만: 학교다. 하루라도 쉬면 학교를 안 나간 기분이 든다. 집에서 쉬는 건 쉬는 게 아니다. 10년 더한 후 개콘에 있었던 경험을 책으로 써보고 싶다.

 대희: 내 인생 4분의 1이다. 지금 서른여섯이니 반올림하면 마흔. 그 중 10년이니 4분의 1이다. 나중에는 개콘에서 배웠던 노하우로 코미디영화를 해보고 싶다.

 민관: 든든한 스폰서다. 개콘에서 이름을 알렸고 선후배를 만났다. 영미: 에너지다. 에너지를 관객에게 주기도 하지만 받기도 한다. 개콘을 할 때 가장 살아있는 걸 느끼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해피바이러스를 모든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미: 제2의 고향이다. 작가실에 가면 다 언니, 오빠 삼촌 같고. 며칠 만에 가도 반갑다. 뼈를 묻고 싶다.(일동: 너무 가식적 아닌가?)

 병만: 백재현 선배가 그랬다. 단역이 됐든 쉬지마라. 쉬지 않으면 기회가 온다고. 기자: 여러분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10년이 즐거웠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웃음을 책임져 달라. (일동 박수)

< 글 하경헌·사진 이석우기자 > [스포츠칸 연재만화 '명품열전' 무료 감상하기]- 경향신문이 만드는 生生스포츠! 스포츠칸, 구독신청 (http://smile.khan.co.kr) -ⓒ 스포츠칸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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