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더 모먼트] 갈라스의 제기차기와 맨시티의 즉흥 환상곡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기자= 프리미어리그는 주말에만 하는 거라 알고 있을 몇몇 팬들에겐 아쉽게도 지난 주말이 3라운드 경기였다. 클럽대항전에 출전 중인 팀들의 경기를 뺀 6경기는 이미 주중에 열렸고 번리가 맨유를 잡는 등 화제거리 만발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빅 재미는 3라운드에 있었다. 갈라스는 새로운 슈팅을 창조했고 맨체스터 시티는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 앞에서 멋진 즉흥 환상곡을 연주해 보였다. 'EPL 더 모먼트(the moment)'가 어쩌면 별 의미 없이 스쳐갈 지 모르는 3라운드의 중요한 순간들을 짚어봤다.
갈라스, 골은 민망해도 세레모니는 폼 나게
지난 1라운드에서 '보은과 화해의 골'로 선정됐던 아스널의 수비수 윌리엄 갈라스가 또 뽑혔다. 현재 갈라스는 시즌 개막 후 치른 3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며 '골 넣는 수비수'의 진가를 발휘 중이다. 그런데 에버턴과의 리그 개막전에서의 시원한 헤딩 골 이후 나온 두 번의 골은 자신이 넣었다고 하기 다소 민망하다.
우선은 주중에 있었던 셀틱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이다. 0-0 상황이던 전반 42분 아스널은 셀틱 진영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캡틴' 파브레가스가 빨랫줄 슈팅을 날렸다. 공은 상대 페널티박스로 들어가 세트피스를 준비하던 갈라스에게 쭉 날아왔고 피한다는 것이 그냥 갈라스의 등을 후려갈기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터키와의 3,4위전에서 송종국의 중거리 슛이 차두리의 엉덩이를 맞고 들어간 것과 비슷한 궤적. 차이라면 터키전의 골은 차두리의 엉덩이가 아닌 송종국의 몫이 됐고, 셀틱전의 골은 파브레가스의 몫이 아닌 갈라스의 등짝이 됐다는 점이다.
주중에 보여준 등짝 슛에 이어 갈라스는 또 하나의 창의적인 슈팅을 만들어냈다. 포츠머스와의 홈 경기 후반 6분. 2-1로 앞서가던 아스널은 미드필드 왼쪽 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아르샤빈이 감아 찬 공은 페널티 박스의 판 페르시의 머리와 베르마엘렌의 발을 거쳐 갈라스의 발 앞으로 정확히 배달됐다. 절호의 찬스를 잡은 갈라스는 마치 발로 제기를 차듯이 공을 걷어 올리고 안면으로 밀어 넣는 행운의 스리 쿠션 골을 창조했다.
셀틱전에 이번에도 황당한 득점 후 뻔뻔하게 멋진 골 세레모니를 펼치는 갈라스에게 모여든 동료들은 다시 한번 킬킬대며 웃었다. 베르마엘렌은 아예 드러누운 채 일어나질 못했다. 시즌 초반 3경기에서 12득점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는 아스널로선 골 장면이야 웃기지만 전방위 득점이 가능하다는 데서 환영할 만한 갈라스의 제기차기 골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은 엉망이어도 세레모니는 멋드러져야 한다는 사실!
대지를 가르는 남자, 칼튼 콜
지난 시즌 초보 감독 지안프랑코 졸라와 함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칼튼 콜의 활약에 웃고 울었다. 체격 조건과 운동 능력만 뛰어난 공격수에서 골 감각에 충실한 대형 스트라이커로 거듭나고 있는 콜은 토트넘과의 홈 경기에서 완벽한 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후반 3분 히메네즈가 헤딩으로 내준 공을 수비수를 등진 상황에서 돌아서며 호쾌한 왼발 터닝 슛으로 연결했고 공은 그대로 쭉 뻗어가며 쿠디치니가 지키는 토트넘의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불과 5분 뒤 콜의 주체할 수 없는 힘은 어이 없는 실점을 만들었다. 토트넘의 드로인 공격을 차단하고 반격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콜은 웨스트햄 수비라인으로 백패스를 했는데 이것이 수비로 복귀하던 상대 공격수 저메인 디포의 발 앞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한 것이다. 그야말로 대지를 가르는 침투 패스. 발신자 부담의 택배를 받은 디포는 강력한 슛으로 웨스트햄에게 실점을 선사했다. 홈에서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가던 웨스트햄은 동점골을 내준 뒤 흔들렸고 결국 아론 레넌에게 추가 골을 내주며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날 대표팀의 공격 자원인 콜과 디포를 체크하기 위해 업튼 파크를 찾은 파비오 카펠로 대표팀 감독으로선 콜의 과감한 터닝 슛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침투 패스를 보며 그를 어떻게 삼사자 군단에서도 활용해 먹을까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물론 패스만큼은 절대 전방으로 보내게 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만.
오아시스를 흥분시킨 맨시티의 즉흥 환상곡
개막전에서 2-0으로 승리한 데 이어 주중에는 유럽 최강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비록 최정예 멤버는 후반에 나왔지만…) 1-0으로 이기며 심상치 않은 파장을 일으킨 '갑부군단' 맨시티가 리그 2연승을 달리며 시즌 초반 상콤한 출발을 알렸다.
올 여름 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가는 대대적인 물량 공세로 럭셔리 쇼핑을 마친 맨체스터 시티는 울버햄프턴과의 2라운드 경기에 입이 떨 벌어지는 공격 라인을 내세웠다.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카를로스 테베스, 호비뉴에 스티븐 아일랜드와 숀 라이트 필립스가 지원하는, 축구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공격 조합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공격 플레이는 무르익은 조직력보다는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한 모습이었다. 비록 한 골에 그쳤지만 호비뉴, 웨인 브릿지, 테베스, 아데바요르로 이어진 공격 루트는 게임 속의 그것과 같았다. 축구에서 조직력만한 기술은 없다고 하지만 개인의 기량 수준이 너무나 높을 때는 조직력을 초월한 특별한 것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맨시티는 보여줬다. 마치 경지에 도달한 연주자들이 각자의 애드리브로 하나의 멋진 즉흥 연주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이날 시티 오브 스타디움에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형제가 카메라에 잡혀 눈길을 끌었다. 맨시티의 열혈 서포터로 알려진 갤러거 형제는 현재는 결혼한 루니의 여자친구 콜린이 루니를 위해 선물한 기타에 사인을 부탁하자 300만원이 넘는 고가 기타를 맨시티의 상징인 하늘색으로 칠한 뒤 맨시티 응원가를 적고 "생일 축하한다, 스폰지밥"이라는 축하 코멘트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형제지만 매번 불화를 일으킬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사람은 각자 따로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경기 후 BBC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맨시티를 응원했던 지난 30년 간은 정말 비참했다. 이젠 런던 사람들이 비참해지는 꼴을 보고 싶다"라며 스타 군단으로 대변신 후 정상에 도전하는 맨시티를 보는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맨시티는 후반 들어 완벽한 전주에 이은 하일라이트 부분에서 화음을 맞추지 못해 추가 골 기회를 놓쳤다. 아일랜드와 아데바요르, 호비뉴, 크레이그 벨라미가 마지막 슈팅 찬스에서 작은 컨트롤 미스를 범한 것. 만일 크로스바를 맞고 나온 케빈 도일의 슛이 골로 연결됐다면 맨시티는 무승부를 거뒀을 수도 있다. 맨시티가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하루 빨리 잘 짜여진 협연이 필요하다는 걸 마크 휴즈 감독도 깨달았을 것이다.
사진=세레모니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는 갈라스, 맨시티의 즉흥 연주자들, 그리고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 ⓒMatt West/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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