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공정여행 메콩강을 가다](1) 베트남 소수민족이 사는 '반젠마을'
ㆍ만남과 소통 나눔이 있는 진짜 '삶의 맛'
ㆍ현지식 함께 하며 주민들과 트레킹
ㆍ전통문화 체험하고 여행소감 나눠
'공정여행'이 대안여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행사가 정한 일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다 '사진만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닌, 경험하고 공유하는 '진짜' 여행.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 환경을 존중하고 여행 과정의 소비를 지역 경제로 돌리는 책임여행이다. 아시안브릿지가 주최하고 경향신문사가 후원한 공정여행 프로그램, '착한 여행-메콩강 시리즈'에서는 이달 베트남, 라오스에 다녀왔으며 8월에는 캄보디아를 찾는다. 기자의 동행 체험기를 통해 공정여행이란 무엇인지, 공정여행을 통해 접한 아시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반젠 마을의 시장을 찾은 여행팀이 몽족 상인들과 물건 값을 흥정하고 있다.지난 10일 새벽 5시 베트남 북서부 산간지역 라오카이의 기차역. 전날 밤 수도 하노이에서 야간 열차로 출발, 9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했다. 여기서 자동차로 갈아타고 다시 1시간을 달렸다. 베트남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가 1920년대 관광지로 개발, 유럽과 아시아 등에서 매년 약 10만명이 찾는 관광지 사파에 다다랐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사파 시내 호텔에 묶으며 서구풍의 카페와 상점을 찾는 관광을 즐긴다.
기자가 동행한 여행팀은 사파에서 머물지 않고 자동차로 다시 45분 거리인 '반호' 코뮨 속 '반젠' 마을로 향했다. 반젠 마을은 베트남 소수민족 중 '따이'족이 많이 사는 곳으로, 베트남 지방정부와 국제 시민단체가 협력해 '책임여행지'로 개발한 곳 중 하나다. 험준한 산악지대에 살아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정치·사회적으로도 고립돼 있는 소수민족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관광업으로 부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정부와 기업형 관광업체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닌, 현지 주민이 직접 참여해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소득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반젠 마을로 가는 길에는 높은 산 아래 계곡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과 산 등선에 층층이 조성된 계단식 논이 보인다. 물소 등 위에 올라 타거나, 등에 바구니를 짊어지고 가는 다양한 소수민족과도 마주치게 된다. 여행팀은 이 길을 거쳐 반젠 마을 이장인 따오 아 밍의 집에 도착했다. 하룻밤 민박하기로 한 집이다. 46가구 500여명이 사는 반젠 마을은 2005년부터 책임여행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장의 동생인 따오 아 빈은 "마을 운영위원 5명을 포함한 마을 주민들이 민박 운영법, 관광 가이드하는 법, 요리하는 법, 가게 운영하는 법 등을 정부로부터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민박이나 상점을 운영하거나 작은 노천온천탕 같은 시설을 만들어 관광객을 받는다.
여행팀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트레킹에 나섰다. 다양한 소수민족, 베트남 전통 집, 물소, 전통 약초 등과 마주치며 산길을 올랐다. 트레킹 후에는 마을의 '멍런 유치원'에 가서 여행팀 14명이 각각 이름표가 달린 나무를 마당에 심었다. 나무심기 행사는 한국에서 베트남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상쇄할 만큼의 환경보전 활동을 한다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유치원의 작은 운동장에 나무 14그루가 다 심어지자 참가자들은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후에 다시 와서 나무가 얼마나 자랐는지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나무를 심으니까 반젠 마을에 대해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소수민족이 사는 작은 산속 마을이지만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는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발전소를 세우기 위해 포클레인 등이 동원돼 파헤쳐진 산등성이가 적지 않았다.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 외부자본도 소수민족 고유의 생태계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고 한다. 소수민족들은 외부와 고립돼 있어 정보가 적고 권리인식이 낮은 데다 아직 자급자족 경제 중심이어서 외부 자본이 저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급자족 경제체제로 살다가 관광지화로 인한 시장경제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서 일부 소수민족은 가치관의 변화를 겪기도 한다. 반젠 마을에 살고 있는 5개 소수민족 가운데선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는 따이 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민박이나 상점 등을 운영하는 이들은 관광객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하지만 일부는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히는 것을 단호히 거절할 만큼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다.
여행팀은 반젠 마을을 방문하기 전 시민단체 씨럼을 방문해 소수민족 현황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다. 뜨란 띠 호아 사무처장은 "소수민족의 전통 수공예품을 보고, 물건이 별로라는 표정을 짓거나 값이 비싸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자존감이 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젠 마을에서 때로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소수민족과 마주치면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그들이 부른 값에, 무조건 사줘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반젠 마을에서의 식사는 소수민족들이 매일 먹는 현지식을 함께 했다. 닭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죽순 볶음 등이 나왔다. 여행객들은 따이족 전통 부엌에서 그들을 도와 함께 식사준비를 할 수 있다. 이날 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여행객과 반젠 마을 공연팀이 민박집의 가장 큰 방에 모였다. 반젠 마을 공연팀은 전통 악기 연주와 함께 모자춤, 촛불춤, 부채춤 등을 선보였다. 여행팀은 답가로 '한오백년' '아리랑' 등을 불렀고 마을 어린이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온 색연필과 교과서 등을 선물했다. 마을 운영위원장인 따오 득 쿠엔은 "예전엔 전통 춤의 가치에 대해 잘 몰랐는데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우리 문화도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책임여행지로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반젠 마을은 소득도 높아졌다. 개발 이전엔 가구당 한 달 평균 소득이 10만동(8000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40만동(3만2000원) 가까이 된다고 한다.
여행팀은 일정 마지막날인 13일 하노이에서 반젠 마을 등의 책임여행 개발에 참여한 느쿠엔 뚜 호아 쿠엉 하노이대 관광개발과 교수 등과 소감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쿠엉 교수는 "과거엔 사파에서도 몇몇 지역만 관광으로 인한 소득을 얻었지만 지금은 다른 지역도 고르게 이익을 얻고 있다"며 "소득이 높아지면서 소수민족 자녀들에게 교육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행팀은 "화장실이나 샤워시설 등을 현대식으로 설치하지 말고 소수민족 전통 그대로 남겨 놓았으면 좋겠다" "수공예품보다 약초나 전통 차 같은 제품을 상품화하는 게 좋겠다" 등의 의견을 전했다.
< 하노이·사파(베트남) | 글·사진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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