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특별대담 "유능한 큐레이터 더 많이 나와야죠"
■한국현대미술, 이제 세계중심으로 간다! 그 중심에 선 독립큐레이터 김선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내 미술계 '숨은 최고 파워'와의 본격토크대담=서준호(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재학, 사진 왼쪽)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는 6월 말 미국의 정상급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과 휴스턴미술관에서는 대규모 한국 현대미술전이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사람은 큐레이터인 김선정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김 교수는 9월에는 경복궁 앞 기무사터에서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미술제를 또다시 여는가 하면, 한진해운 하이트 경방 등 기업의 아트프로젝트를 컨설팅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 열릴 한국 현대미술전 준비는 끝났는지, 어떤 전시인가요.▶거의 끝났어요. 한국 미술은 꽤 경쟁력을 지녔는 데도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마침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과 휴스턴미술관(MFAH)에서 제안이 들어왔어요. 5년을 조사연구하고 준비한 대형 전시인데, 한국 작품이 이처럼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에요. 미국 큐레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현지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꾸몄어요. 카탈로그도 예일대 출판부에서 나와요.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죠.

-해외 미술계를 많이 돌아보는데 우리 미술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작가들이 맨주먹으로 뛴 것에 비하면 성과가 큰 편이죠. 중국?일본 미술보다 낫다는 평가가 적지 않아요. 그러나 한국 미술 전체를 체계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죠. 한국 작품을 세계에 적극 소개할 중량급의 큐레이터와 평론가, 네트워크를 만들어 세계 중심부에 우리 미술을 꾸준히 선보이는 게 시급합니다.
-백남준 선생님 때문에 큐레이터가 되셨다고요?▶맞아요. 미시건에서 대학원(서양화 전공)을 마치고, 1991년 뉴욕서 변호사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왔는데 어느날 백 선생님이 '큐레이터를 해보라'며 휘트니미술관에 인턴십을 주선해주셔서 엉겁결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선생님은 저의 멘토예요. 그때 선생님께서 이야기한 것을 다 이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많죠. 선생님은 작가로서도 위대했지만 우리 미술계를 위해서도 정말 많은 걸 하셨어요.
-오래전 '쌍용 스카티' 광고를 찍으셨죠. 당시엔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대단히 생소했을 땐데.▶광고를 찍게 된 건 부모님(김우중 전 대우 회장, 정희자 필코리아 회장)이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 독립하라'며 거의 도움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부모님께서 워낙 유명해서 그 광고로 저 역시 유명인이 돼버렸죠. 방송 MC며 '세계미술기행' 등 제안이 많았지만 제가 워낙 끼가 없어서인지 인기(?)는 그저 잠깐이었어요.
-세계 유수의 미술관, 비엔날레에서의 전시는 왜 중요하죠. 크리스티, 소더비 같은 경매에선 한국 미술이 제법 부각됐잖아요.▶미술시장과 미술현장의 균형있는 발전이 좋은 미술시스템을 만드는데, 이제까지는 미술시장이 이를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비엔날레와 미술관 전시, 좋은 비평이 동반돼야 제대로 뻗어 나갈 수 있어요. 훌륭한 작가가 많이 나와 '코리아'라는 국가 브랜드가 예술적 가치를 지니게 되면 똑같은 수출상품도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가장 소홀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사실 현지와의 소통이 중요한데, 우리는 '국내용 전시'를 들고 나간 측면이 많아요. 외국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담론과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우리 걸 담아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양파 껍질처럼 다양한 내용을 품은 전시를 좋아합니다.
-교수님이 발굴해 세계적 스타가 된 작가가 많죠. 아트선재센터를 거쳐간 일련의 작가를 '김선정 사단'이라고 부르던데.▶1990년대 남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 덕분에 김수자 이불 서도호 같은 뛰어난 작가와 일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그들로부터 '새로운 미술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고,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가 전진기지가 되었죠. 우리는 미술뿐 아니라 영화?음악?공연과의 협업도 시도했고, 주차장이나 남이 쓰지 않는 공간을 활용해 프로젝트도 펼쳤어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길 꿈꾸는 미래 작가에게 꼭 해주고 싶으신 말은요?▶급하게 서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빨리 유명해지고 싶고,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면 더 중요하고, 더 큰 걸 놓치게 돼죠. 힘들더라도 천천히 '자기만의 길'을 가는 게 정말 중요해요. 긴 호흡으로 자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실험하는 작가들이 나중엔 월드스타가 되더라고요. 또 우리는 그동안 부정하는 역사였는데 앞으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문화, 즉 지속가능한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달이 가정의 달이었죠. 교수님께서 이렇게 국제무대를 누비게 된 건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가요?▶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자주 다녔고, 이런 경험이 습관이 돼버렸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다녀 낯선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별 두려움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됐어요. 일에 푹 빠져 지내야 직성이 풀리는 건 아무래도 부모님, 특히 아버지 영향 때문이겠죠.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해요.
-교수님은 국제적 네트워킹이 막강하신 것 같아요.▶저는 작가들과 일하는 게 좋아 큐레이팅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작가들이 외국 큐레이터 만날 때 자원봉사로 통역도 하고, 밤새워 토론을 하며 몸으로 부딪혔어요. 얼마전 신문에서 명동과 동대문 상인도 영어?일어?중국어를 한다는 걸 봤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학원만 미국에서 했어요.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산 경험도 없고요. 하지만 필요한 말을 하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일어도 따로 배웠고요. 큐레이팅을 위한 공부도 틈틈이 합니다.
-기업 사이에서 '미술문화사업을 시작하려면 김선정에게 자문을 구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문을 많이 한다는데.▶좀 많이 하는 건 사실이에요. 너무 싼 값(?)에 일을 맡으니까 자꾸 들어오나봐요(웃음). 그동안 대림 애경 에르메스코리아 한진해운 등의 아트컨설팅을 해왔고, 요즘은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와 청담동의 하이트맥주가 사옥에서 컬렉션을 기반으로 펼치는 아트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의 설렘을 즐기는 편이죠.
-큐레이터가 된 후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작가 전시였던 '코리아아메리카코리아'전을 성사시켰을 때요. 주한 미국대사관이 전액 후원했는데, 전시를 본 많은 큐레이터가 호평을 해줘서 신이 났었죠. 그리고 1995년 '싹'전, 처음으로 혼자서 큐레이팅한 전시였어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플랫폼도 애착이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가와 멋진 전시를 만들어야죠.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세요? 기획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요.▶늘 허둥지둥 살아서 휴가는 거의 꿈도 못꿔요. 대신 출장길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죠. 취미요? 글쎄.. 백화점이며 서점 같은 곳의 디스플레이 보는 걸 좋아해요. 참 신통치 않죠? 일 하고, 전시 구상하고, 작가들 만나고, 그런 순간들이 제일 행복하죠. 아, 예산이 부족해서 피를 말릴 땐 빼고요. 그런데 빠듯한 예산으로 엎치락 뒤치락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젠 이골이 났어요. 노하우가 생기니까 어떤 일이 닥쳐도 요즘은 별로 겁이 안나요. 하하.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