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아리랑]카프 대표작가 민촌 이기영(상)

"춘원이여, 연애소설이나 쓰시라"
당신이 현 문단의 인기적 작가임에아마도 누구나 이의가 없으리라그러나 대가엔 부주(腐柱)가 위험하다이광수의 옛날의 지위는 당신 차지다그런 것이 역사적 필연성이니당신은 반드시 역사에 감사하여서다시 더 참다운 역사성에 충실하여라소극적 만네리즘에 자경자숙하여라
당신의 문학적 본령은 '고향'이 대표한다그러나 < イロハ > 판은 번역이 표열하여원작의 향기를 석사(惜死)하고 있는 듯하다'고향'이 만부나 팔렸다 하니조선적 인세의 박수(薄酬)를 위안하여라당신이 어른된 문학적 '고향'이어길 수 없는 카프의 요람이어든그 시대의 정신을 새롭게 발휘시켜라당신의 '서화'를 낭화(狼火)로 연소시켜라
시절은 이제야 맥추(麥秋)를 엿보는데당신의 '맥추'를 수확하여라당신의 '어머니'는 아직도 소녀기니무어라 비평할 시기가 상조이나흥미를 노리는 통속적 자장가를 경고하라고리끼의 '어머니'를 숙독하여 배우라애기를 키우는 '어머니'엔모성애가 생명이고'어머니'를 키우는 작가에는현실적 사회애가 좋은 젖이다
'이기영(李箕永)'이라는 제목 아래 쓰여진 김용제(金龍濟) 시이다. < 문단 풍자시 > 라는 큰 제목 아래 모두 9명 시인·작가·평론가들 이름이 올라 있으니, 이기영, 백철(白鐵), 임화(林和), 장혁주(張赫宙), 박영희(朴英熙), 한설야(韓雪野), 엄흥섭(嚴興燮), 유진오(兪鎭午), 이북명(李北鳴)이다. < 비판 > 1937년 9월호. 제1회 '국어문예총독상'을 받은 시인 겸 평론가 금촌용제(金村龍濟)가 풍자시로 다루고 있는 문인들 가운데 친일 상채기가 없는 이는 딱 둘밖에 없다. 이기영과 한설야. 두 사람에 '낙동강' 작가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를 넣어 '카프 트로이카'라고 불렀을 만큼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스스럼없는 사이였다.
이기영은 1895년 충남 아산(牙山)에서 충무공 이순신 12대 손으로 태어났다. 4살 때 천안으로 이사하여 서당에 다니며 진서 공부를 하다가 11살 때 부친과 최승희(崔承喜) 남편인 안막(安漠) 아버지 안기선, 무관학교 출신 심상만을 일으킨 이로 하여 세워진 영진학교에 들어갔다. 20살에 무과급제하였으나 벼슬자리를 못 얻어 서울 대가댁 출입을 하며 양반상놈 가리지 않는 어씁(호협)한 무가 기풍으로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미워하며 죽어도 술을 안 먹는다고 마음 다졌다.
한설야·조명희와 함께 '카프 트로이카'
1908년 14살 때 2살 위인 한양조씨와 혼인을 하였으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억지로 한 혼인이었으므로 부인한테 정이 없어 뒷날 다른 여자와 살게 된다. 15살 때 아버지가 뽕빠져 큰고모댁 행랑살이를 하였고 가정교사로 들어가 살며 학교를 마친 것이 16살 때였는데, 아버지가 부잣집 사둔 마름 노릇을 하여 살아갔다. 17살부터 23살 때까지 책방 점원, 막일꾼패 통역과 날품팔이, 행상, 광부, 유성기 약장수를 하며 집을 나가 마산, 부산, 인천까지 갔다가 아버지한테 붙들려 왔다. 진서와 왜글·왜말에 횅하고 고대소설·신소설을 두루 읽다가 기독교에 끌리게 되는데, 새로운 학문과 알음알이에 목말라 하던 젊은이에게 기독교는 어지러운 세상을 건질 수 있는 구멍수로 보였다. 예수교 여학교 선생을 하다가 3·1운동 물너울에 휩쓸렸고 1922년 일본 동경으로 가 세이고쿠(正則) 영어학교에 들어가 영어를 배우며 러시아 소설들을 골똘히 읽기 비롯한다. 그리고 기독교와 연줄을 끊는다.
"성격의 교리란 게 논리적으로도 모순되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목사를 위시한 소위 교역자란 자들의 행실이 그야말로 양의 털옷을 입은 승냥이와 같았다. 한번 그 속을 알게 된 나는 날이 갈수록 예수교에 대하여 환멸과 반항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회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소위 선교사란 자들은 종교의 탈을 쓰고 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제국주의 앞잡이들이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예수교의 위선적 흑막이 더욱 똑똑히 보이어서 마침내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나뿐 아니라 속을 모르고 믿었던 당시 청년들도 교회를 차차 멀리 하였다."
이기영은 고국에서부터 알고 있던 홍진유(洪鎭裕)와 동경에서 만나 한 셋집에서 밥을 끓여먹으며 고학을 한다. 대서업자한테 글씨품을 팔며 세이고쿠 영어학교 야간을 다니다가 귀국한 것은 1923년 동경대지진을 겪으면서였다. 귀국하기 전 조선 유학생들 모임에서 조명희와 만나게 되는데, 사회주의 운동가로 나서는 홍진유와 함께 이기영 삶에 대수로운 동무가 된다.
홍진유가 얻어다 주는 '자본주의의 기구'라는 팸플릿을 처음 읽어보고 맑스주의 책들을 즐겨 읽었으며, 러시아문학을 알게 된다. 푸시킨, 고골리,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홉, 고리키 작품을 읽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고리키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때 속마음이다.
"참으로 쏘비에뜨문학은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 바꿔놓게 하였다. 나는 그때까지 계급사회의 모순을 분명히 해명하지는 못하였다. 이 세상이 옳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과학적·이론적으로 그 원인을 해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운애가 낀 먼 산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유심론의 너울이 가리어서 나의 심안에 계급사회의 윤곽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쏘비에뜨문학-프롤레타리아 문학작품과 사회주의 서적을 읽어감에 따라서 나는 계급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러시아 작가 고리키에 빠져들어
귀국하여 습작을 시작한 이기영은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 개벽 > 지 현상문예에 3등으로 입선하여 소설가 길을 걷게 되니, 1924년 30살 때였다. 포석 뒤스름(알선)으로 < 조선지광 > 사에 들어갔고, 동경에서 출옥한 홍진유가 귀국한다. 단편 '가난한 사람들' '오남매 둔 아버지' '외교관과 전도부인' '고난을 뚫고' '원보'를 발표, 1928년 무정부주의자 연합기관인 '흑기연맹사건'으로 징역을 살던 홍진유가 병사하고, 8월 21일 포석이 소련 연해주로 망명한다. 단편 '제지공장촌'을 발표하고, 1931년 제1차 카프사건으로 전주형무소에 갇혔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나고, < 조선지광 > 폐간으로 일자리를 잃고 < 중외일보 > 휴간으로 장편 < 현대풍경 > 연재가 끊어지면서 몹시 가난에 시달린다.
1925년 봄에 < 조선지광 > 에 한설야의 평론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당시 반동문학의 두목격인 이광수와 노자영 등의 문학을 비판한 것으로서 주목을 끌었다. 이 글을 보고 포석은 "됐소. 패기 있는 신진이 나왔소!" 하며 의미 있는 미소를 띠었다. 그후 얼마 안 되어 설야가 서울 청진동에 있는 < 조선지광 > 사에 나타났다.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양복을 조촐하게 입고 있었다. 그때 조명희, 최서해, 나 세 명이 그를 만났다. 조명희와 나는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 포석이 말을 이었다.
"이광수도 더 쳐야 하며 김억이도 쳐야겠소" 하며 그는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었다. (…) 그러나 카프 창건 직후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발전의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들은 우익 부르주아 반동작가들, 소위 '순수문학'파들, '해외문학'파들과 싸워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맑스주의의 탈을 쓴 아나키스트들과도 싸워야 하였고 이들과 타협한 대열 내에 잠입한 기회주의자들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설야와 나)
이광수 소설 '혁명가의 아내' 비판
이기영한테 '민촌(民村)'이라는 아호를 지어준 것은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였다. 1927년 단편집 < 민촌 > 이 나오면서 이기영 이름이 문학동네에 크게 새겨지게 되었을 때, 벽초가 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그럼 민촌으로 하지" 해서 된 것이었다.
카프 대표작가였던 민촌이 ''혁명가의 아내'와 이광수' 라는 글을 쓴 것은 1933년이었다. < 비판 > 4월호에 실린 것으로, 알맹이만 추렸다.
이 소설에는 요부와 같은 여류혁명가라는 여주인공인 방정희가 있고 알부랑자 비슷한 혁명가 공산이라는 부주인공이 있는데 이야기의 줄거리를 추려보면 이 소설의 제목과는 놀랄만치 엉뚱하게 그저 추잡한 치정관계를 추악하게 그린 것뿐이다.
방정희라는 모여자고보를 졸업한 신여성이 학비의 보조를 받은 강의사(그때는 의전 학생이었다)와 연애를 하다가 삼방약수터에서 공산을 처음 만나가지고 그의 혁명가적(?) 인물에 홀딱 반해서 공과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거를 하게까지 되었는데 공의 사상에 감화가 되어서 자기도 첨단적 여류혁명가가 되었다 한다. 그런데 공산의 폐결핵이 점점 심해져서 와병하게 되자 장근 일 년 동안을 성적으로 주린 그의 아내 방정희는 성욕을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다 죽어가는 병부를 어서 죽으라고 날마다 두어 숟갈씩 떠먹게 하는 구미 당길 약병을 발길로 차서 엎질러 버렸다. 그래서 풍파가 났다. 그때 마침 공산에게 정맥주사를 놔주러 오는 그 이웃에 살던 의전학생 권오성을 그 전부터 욕심내고 있던 방정희는 그날 밤에 병부의 옆에서 자다가 병부가 낮에 싸움한 탓으로 피를 많이 쏟고 병세가 덧쳐서 마취약을 먹고 혼도한 틈을 타 미리 자기의 금침을 펴놓고 의전학생을 재워둔 건넌방으로 살짝 건너가서 겨울의 긴긴밤이 일분과 같이 짧도록 간통의 단꿈을 꾸었다. 그 후로 남편의 병세는 더한 데다가 정희는 의전학생 권오성에게 아주 정신이 빠져서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남편의 간호도 부주의하였고 따라서 공산이도 정희와 권오성과의 불순한 관계를 눈치채게 되자 중병에 상심까지 더하게 된 공산은 마침내 그 이듬해 정초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부상을 당한 정희는 남편의 시체를 파묻고 오는 길로 바로 며칠 있다가 온양온천으로 권오성과 같이 미진한 육욕을 채우러 밀행하였는데 육적 향락이 불과 일주일에 자기의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정희는 그만 낙담실색해서 정부 권오성에게 폭행을 하다가 권이 발길로 차는 바람에 정희는 다량의 하혈을 하고 유산까지 하게 되었다. 이 꼴을 본 권오성은 대경실색해서 치료약재를 사러 간다고 그 길로 도주해버렸다. 그래서 정희는 할 수 없이 공산의 동지인 여와 어멈의 구호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공교히 치료를 받게 된 의사가 옛날 정희의 첫 애인이던 강의사였다. 그래 그에게 지성껏 치료를 받았지만 정희도 또한 그 길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 이 소설의 종말이다.
민촌이 춘원에게 하는 타이름이다."쥐는 쥐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제격에 들어맞는 법이다. 작자는 여실하게 부르조와 연애소설이나 쓰던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비위에 맞는 강담소설이나 쓸 것이지 아예 이와 같은 무모한 경거망동의 만용은 부릴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념론자이기로 이만한 이해관계는 구별할 만한 두뇌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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