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전자제품 '퍼지 이론'으로 만든다
[쇼핑저널 버즈] 주변을 둘러보면 가깝게는 PC부터 냉장고, TV, 세탁기, 공기청정기, 에어컨, 식기세척기, 휴대폰 등 갖가지 전자제품이 둘러싸고 있다. 당연하지만 이들 전자제품은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개발된 것들이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전자제품 없이 살아가기 어렵고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전자제품이라 하더라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져야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예컨대 날씨가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설정온도를 낮춰야 한다. 반대로 날씨가 춥다면 에어컨 설정온도를 높이거나 전원을 꺼야 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행동이고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논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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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구체적인 논리 과정을 거쳐보면 '날씨가 덥다→에어컨 설정온도를 얼마나 내려야 하는가?→적절히 에어컨 설정온도 내림' 과정이 머릿속에서 이뤄진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에어컨 설정온도를 얼마나 내려야 하는지 판단하는 과정이다. 사람마다 더운 정도나 원하는 냉방온도가 다르므로 딱히 정답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전자제품은 'Yes' 혹은 'No'로만 판단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 불확실하고 애매한 상황을 가능성에 비춰 판단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나나 두개를 사오거라"라고 말하면 아들은 정확하게 바나나를 2개만 구입하면 된다. 하지만 "바나나 두어개를 사오거라"라고 말하면 잠시 머릿속으로 몇 개를 사와야 하는지 망설이게 된다. 그 이유는 '두어개'라는 애매함 때문이다. 물론 바나나가 몇 개인지 아버지가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았지만 대충 두 개나 세 개 가운데 아무거나 선택하면 되므로 그리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전자제품은 이런 애매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PC를 비롯해 2진법을 사용하는 반도체 기반 전자제품은 무조건 바나나가 두 개 아니면 세 개로 딱 부러지게 명령을 나려야 한다. 당장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기 위해 명령어를 입력하면 이를 진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물어본다. 전자제품에게 '대충'이란 것은 없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거짓말을 못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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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제품이 사람과 함께 보다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애매한 명령이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대충 에어컨 좀 시원하게 틀어봐",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줘", "빨리 옷을 세탁했으면 좋겠어" 등 사람이 평소에 사용하는 애매한 표현을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퍼지 이론'이다.
퍼지 이론은 어떤 현상의 불확실한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지난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자데 교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퍼지 이론은 퍼지 집합, 퍼지 논리, 퍼지 숫자 등의 개념으로 나눌 수 있으며 에어컨, 자동차, 세탁기,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 휴대폰 등 각종 전자제품에 널리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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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밥솥,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공기청정기 등 퍼지 이론은 생활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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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이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퍼지 이론 자체가 애매한 표현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져봐야한다. 앞서 예로 들었던 '바나나 심부름'을 퍼지 이론으로 풀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바나나 두 개를 사던 세 개를 사던 크게 상관하지 않겠지만 두 개를 구입할 확률이 더 높아야 한다. '두어개'라는 말이 숫자 3보다는 숫자 2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수학적으로 2일 가능성은 1.0, 3일 가능성은 0.5라고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두어개'라는 퍼지 집합에 2는 1.0, 3은 0.5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보다 애매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라"라고 말했다고 가정했을 때 애매한 단어는 '시원하다'일 것이다. 이 단어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아버지가 만족할 수 있을까?
■ 자동차, 컴퓨터, 로봇 등 활용분야 넓어퍼지 이론이 적용된 에어컨을 아들이 '자동' 모드로 설정했다면 일단 에어컨은 '시원하다'의 기준을 먼저 찾는다. 일반적으로 에어컨은 18℃ 이하로 온도를 내릴 수 없으므로 센서로 현재 온도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현재 온도가 30℃라면 에어컨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바람세기를 높이고 온도설정은 18℃까지 내릴 것이다. 그 이유는 바람세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온도설정이 낮으면 낮을수록 시원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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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풀어 설명하면 현재온도가 30℃일 때 설정온도를 28℃로 맞추면 시원함을 느낄 가능성은 0.25, 25℃라면 0.5, 20℃일 경우에는 0.75가 된다. 반대로 설정온도가 35℃라면 시원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퍼지 집합에 포함될 가능성은 0이다. 에어컨은 가능성이 0인 설정온도보다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18℃를 선택한 것이다. 이 가능성은 센서를 통해 파악한 현재온도에 따라 기준이 수시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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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이론을 활용해 만든 제습기 |
세탁기라면 어떨까? 가장 깨끗하게 세탁을 하기 위해서는 물의 특성은 물론 온도, 세제농도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파악해야 한다. 만약 세제농도와 물 온도가 높다면 세탁기는 그만큼 세탁시간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세제농도, 물 온도가 높으면 세제가 잘 풀어져 세탁이 더 잘 이루어져서다. 뒤집어 말하면 세제농도, 울 온도가 낮을 경우 세탁기는 세제가 세탁물에 더 빨리 침투할 수 있도록 세탁코스와 시간을 늘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자동설정 모드로 맞추고 촬영할 경우 휴대폰 카메라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의 세기에 따라 노출제어를 스스로 맞춘다. 이때 가능성의 기준은 전문가가 사진을 촬영한 데이터를 미리 입력해 둘 수 있다. 자동차에 장착된 자동변속기도 운전습관이나 속도에 따라 스스로 학습 데이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기준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변속을 한다.
이처럼 퍼지 이론이 적용된 전자제품은 단순히 상황에 따라 적절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른 답을 내놓는다. 누적된 데이터에 따라 사람처럼 고민하고 맞느냐, 틀리냐가 아닌 중간 답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현재 퍼지 이론은 비행기, 선박, 지하철, 엘리베이터, 자동차, 로봇, 휴대폰, 에어컨, 세탁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컴퓨터도 개발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기계를 만나는 일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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