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미의 명랑한 경제]'신화고', 현실에도 있다

2009. 2. 19. 16: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아이뉴스24 >

인기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명문가 자제들만 다니는 신화고의 F4(꽃미남 4총사, 구준표·소이정·윤지후·송우빈)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 사이다. 다들 구준표의 집안이 소유한 신화재단 소속 신화 유치원을 졸업하고, 신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신화고에 입학했다.

윤지후의 첫사랑 민서현(한채영 분)도, 초반에 등장했던 오민지(이시영 분)도, 서민 주인공 금잔디를 괴롭히는 진선미 시스터즈도 마찬가지다. 중학교까지 적어도 10년, 고교시절을 더하면 13년을 한 데서 부대낀다. 선대의 인연을 더하면 역사는 더 장구해진다.

아이들의 배경은 막강하다. 구준표(이민호 분)는 글로벌 기업 신화그룹의 후계자다. 윤지후(김현중 분)는 전직 대통령의 손자이고, 소이정(김범 분)은 국보급 도예가 집안의 자제다. 송우빈(김준 분)은 부동산 재벌 일심건설의 2세다.

가십에서만 등장할 뿐 주변에선 만나볼 수 없는 아이들. 신화고엔 그런 학생들이 모여 있다. 금잔디처럼 이사장 발탁이 아니고서는 서민들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설사 입학을 한대도 금잔디가 그랬듯 생활은 고달플 것 같다. 끼니마다 호텔식 뷔페 급식을 먹을 수도, 유럽으로 2천만원짜리 수학여행을 갈 수도 없을테니까.

물론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다. 영국 이튼스쿨 등을 떠올려봐도 꽃남 속 신화고 얘기엔 극적 과장이 버무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는 고려대의 특목고 우대 논란을 보면 현실에도 신화고는 엄존하는 게 아닌가 묻게 된다.

고대가 특목고 출신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특목고 학생은 내신 7~8등급까지도 합격했지만, 일반고 출신은 내신 1~2등급을 받고도 낙방한 사례가 속속 드러났다. 같은 학교 학생 사이에서도 교과·비교과 성적이 보다 우수한 학생이 낙방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 합격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대의 전형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고대는 요지부동이다. 사정 기준을 속시원히 밝히지 않고 있다. 결국 대입을 관장하는 대학교육협의회가 나서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야당은 진상조사에 나서겠단다. 사안은 송사로 번질 참이다. 시·도 교육위원들이 모여 집단소송을 하기로 했다.

한 사립대학의 입시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까지 비화한 것은 '교육'이 계층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개발 드라이브 시대를 거치며 우리는 가난한 수재가 명문대를 졸업하고 중산층에 진입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기회와 혜택을 나누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회지도층이 배출됐다. 계층간 교류가 이뤄지고 중산층이 두터워졌다.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다. 강남의 선택받은 아이들 뿐 아니라 산간오지의 수재들도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건. 하지만 요사이 대학은 '개천의 용종(龍種)'을 문전박대하고 있다.

물론 특목고에 입학한 학생들이 고교 진학과정에서 좁은 문을 통과했으리란 걸 모르지 않는다. 일반 고등학교 진학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래보다 뛰어난 어학 실력에 남다른 사회봉사 경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특목고에 진학하지 않은 뛰어난 학생을 차별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특목고 진학에는 실력 뿐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 절실하다. 고대의 특목고 편애 의혹에 역성들 만한 여지가 없는 이유다.

기숙사비와 급식비, 수업료를 포함한 특목고의 1년 학비는 최소 700만원. 해외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연간 학비가 2천만원에 이른다. 진학 시험 준비를 위한 사교육비는 별개로 친 금액이다. 손꼽히는 천재이거나 최근 조선족 소녀의 사례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학비를 충당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아이들 중 상당수는 영어유치원과 명문 사립초등학교를 거쳐왔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이태원 소재 유치원 서울국제어린이조기학교(ECLC)는 연간 학비가 1천500만원 수준이다. 웬만한 사립대학보다 비싼 수업료다.

유치원을 졸업하면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의 아들과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아들이 다니는 영훈초등학교나 강남의 계성초등학교 입시에 열을 올린다.

영어를 한국어처럼 가르치는 이들 초등학교에 다니려면 연간 700만~800만원의 학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스쿨버스 이용비나 급식비 등은 별도다. 추첨제 입학이지만 매번 집안 배경을 보고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뒷말이 나돈다. 명문가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방과후 스쿨버스는 대개 강남행이다.

이미 개교한 청심 중학교 외에 올해부터 대원, 영훈 등 국제중학교가 속속 문을 열면 이제 이 코스에 국제중 과정이 추가될 것이다. 이들 학교의 국제전형에 지원하려면 부모와 함께 자녀가 최소 22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하면서 현지 학교를 다닌 경험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국내에 남아 조기유학을 뒷바라지 했다면 자격 상실. 중산층 '기러기 가정' 아이는 원서를 낼 수 없다.

고대 특목고 우대 논란은 결국 영어유치원과 사립 초등학교, 특목고를 거쳐온 아이들에겐 활짝 열려있는 문이 공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 앞에선 닫혀버리는 기막힌 현실을 문제삼고 있다.

인정한다. 명문대 졸업장은 어느 사회에서든 위력적인 품질보증서다. 그러니 너도나도 명문대 입시를 위해 뛰자는 게 아니다. 그래서 명문대의 문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너비로 열려있어야 한다는 거다.

계층간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점점 '개천에서 난 용'이 드물어진다. 용이 나지 않는 개천은 절망으로 마를 것이다. 개천이 마르면 강물이 마르고, 종래엔 가뭄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진다. 나라의 인재풀(Pool)이 얕아진다는 얘기다.

고대가 자랑하는 동문 이명박 대통령은 알려진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고학했다. 상고 출신인 그가 만약 지난해 고대 수시 전형에 지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특목고 우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고대는 자교 출신 첫 대통령을 다른 대학에 양보해야 했을지 모르겠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IT는 아이뉴스24연예ㆍ스포츠는 조이뉴스24새로운 시각 즐거운 게임, 아이뉴스24 게임메일로 보는 뉴스 클리핑, 아이뉴스24 뉴스레터(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