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에 감성돔 횟집 생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컨테이너 부두에는 재고가 가득했다. 부두 노조의 한 노동자는 "이제 더 쌓을 데도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열흘밖에 일하지 못했다"라며 한숨을 쉰다. 전세계를 덮친 경기 침체 여파이다. 느린 것, 힘없는 것, 작은 것을 짓밟으며 거침없이 진군하던 시장의 단일화·세계화·신자유주의가 비틀거리자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광양제철소의 모습이 어쩐지 위태해 보인다. 힘든 건 광양제철소만이 아니다. 광양만을 빙 둘러싼 여천공단, 태인단지 등에 솟은 숱한 굴뚝 중 상당수가 불길한 침묵을 지킨다. 연기 없는 굴뚝은 푸른 남해 바다와 유난히 불화한다.
광양제철소 소본부에는 광양만에 공장이 들어서기 전과 후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이 걸려 있다. 보잘것없는 어촌에 전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제철소가 들어섰다는 것을 내방객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겠지만 눈길은 자꾸 제철소 자리에 있던 김밭으로 달려간다. 이곳 광양 김에 맛을 들인 뒤 다른 곳 김을 먹으면 종잇장을 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던가. 연녹색으로 빛났다던 그 김이 강철의 가치를 앞지르는 시대가 오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4대강 정비사업이라는 외투를 걸치긴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기어이 대운하를 팔 모양이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부인하지만 4대강 정비사업은 대운하 건설의 첫 단계와 정확하게 겹친다. 외투만 벗어던지면 대운하는 금세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환경의 무한한 가치에 일찍 눈을 뜬 다른 나라들은 방조제를 트고 제방을 헐어내는 마당인데 대한민국만 거꾸로 가려 한다(17쪽 상자기사 참조). 멀리 갈 것도 없이 섬진강과 그 물이 흘러내리는 남해의 광양만만 들여다봐도 대운하의 미래는 어둡다. 인간이 섣불리 물길을 다스리려고 할 때 자연은 반드시 보복한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지리산을 휘돌아 265개 지류를 모아 225km를 흘러 광양만에 이른다. 대운하 건설 예정지라는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과 더불어 남한의 5대강이라고 부른다. 수계의 72%가 험산을 끼고 돌아 가장 잘 보존돼 왔다고 알려졌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이 병들었다. 광양만은 날로 오염되고, 섬진강 하류는 바다로 변해간다. 강에서 도다리·감성돔·고등어가 잡히고, 특산품이던 재첩 수확량은 급감했다.
바다 속이 텅 비어버렸다
12월14일 광양시 어촌계장 황교영씨(45)가 모는 1.35t짜리 소형 어선을 타고 광양만 입구에 들어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입구에는 당연히 기수역이 있어야 했다. 염생식물과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온갖 생명이 숨쉬는 갯벌, 이 기수역은 바다의 자궁이다. 바다 생물의 70%가 이곳에 알을 낳는다. 하지만 광양만에서는 기수역을 찾아볼 길이 없다. 정중앙에 600만 평의 광양제철소와 부두가 자리 잡고 그 옆으로 율촌 산단, 여수국가산업단지, 하동 화력 등이 빽빽이 들어섰다. 이미 광양만 연안 면적의 30%가량이 매립됐지만 앞으로도 남해조선특구, 하동조선 항만개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물고기가 알을 낳을 만한 습지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어촌계장 황씨는 광양만 입구에 들어서면서 "이곳 바다는 텅 비었다"라고 말했다. 1985년 '제철'(이곳 사람들은 광양제철소를 이렇게 부른다)을 짓기 시작하기 전 그의 부모가 어장을 할 때는 도다리가 지천이었다. 5kg 이상 나가는 가오리, 3kg이 넘는 농어 같은 '괴물'도 예사로 잡혔다. 전어철에는 배가 가라앉을까 무서워 더 잡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제철이 생기고 나서 사정은 해가 다르게 나빠졌다. 물이 더럽혀지자 숭어같이 흐린 물에서 잘 사는 고기가 늘어났다.
그는 엊그제 숭어 100kg을 잡아 남해 어판장에 갔다가 겨우 9만2000원을 받았다. 기름값도 못 건졌다며 앞으로 숭어를 잡으면 바다에 던져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기수역 개펄에서 자라던 김·굴·우럭조개·바지락·낙지·백합조개 등도 씨알이 말랐다. 더러운 물을 좋아하는 모시조개만이 판친다. 봄·여름에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김을 기르고, 짬짬이 물고기를 잡아 이곳에서는 한때 '강아지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녔으나'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제철소가 생겨 나라는 잘살게 됐는지 알 수 없으나 이곳 어민은 불행해졌다.
멀리 하동화력이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지점까지 오자 부표 두 개가 떠 있다. 제철소와 산업단지에서 만드는 제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는 항로를 알려주는 표식이다. 광양만에는 항로가 5개 있는데 전체 길이가 50km를 넘는다. 대형 컨테이너선이 다녀야 하므로 수심 25m 내외로 준설했다. 지름이 900m 이상인 배 선회장도 5곳이다. 광양만은 수심이 고작 5m 내외이므로 엄청난 규모의 수조가 생긴 셈이다. 이런 거대한 물웅덩이에 쌓인 유기물이 광양만 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다. 어민은 항로를 만드는 준설 강관에 홍합이 다닥다닥 붙었다가(이상하게 홍합 종패는 강관을 좋아한다고 한다) 폐사하는 바람에 항로 바닥이 다 썩었다고 증언한다.
어부로 잔뼈가 굵은 사람도 광양만에서는 때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물고기가 잡힌다.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다. 먼 나라에서 철광석 연료나 석탄을 가득 싣고 오는 화물선은 항해하는 동안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배가 뒤집어지지 않도록 미리 바닥의 탱크에 물을 가득 채운다. 하역하고 나면 물을 항구에 뿜어내 버린다. 그 때문에 수천km 떨어진 곳에 사는 물고기가 광양만에 방류되는 것이다. '병어처럼 생겼지만 조금 다르고 미끌미끌하고 냄새가 나서 먹기 힘든 이상한 고기'가 최근에는 많이 잡힌다고 한다. 화물선이 옮기는 물고기는 요즘 새롭게 주목되는 바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범인 중의 하나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 같은 신문에는 잘 나지 않지만 이곳 광양만에서 어민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3년 전에는 어민이 어선 200척을 끌고 나가 광양만을 가로막고 해상 시위를 했다. 어민이 선상 시위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그 탓에 광양시 어민회장 김영현씨를 비롯한 어민 몇 명이 옥살이를 했다. 광양시 어민회와 인근 농민은 12월8일에도 상경해 포스코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어민은 쓰레기 매립장, 원료 부두, 석탄 야적장 등에서 광양만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원천 차단하고, 광양만에 기수역을 조성해 염해를 방지할 근본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포스코 측은 광양만 오염이 그리 심하지 않으며, 제철소가 오염과 염해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어서 갈등의 골이 깊어간다.
농어민의 불만은 폭발 직전
섬진강의 염해는 심각하다. 김영현 회장의 고향은 행정적으로 내수면과 해수면을 가름하는 지점인 섬진대교에서 15km쯤 상류에 있는 돈탁마을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는 이곳에서 매일 잉어를 100~150마리 잡았다. 1급수에서 잡은 이곳 잉어회는 인기가 높아 수입이 좋았다. 얼마나 생명력이 왕성한지 짚에 싸서 섬진강 물에 적신 다음 2시간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부산 외가에 가져가도 잉어는 살아 펄펄 뛰었다. 겨우 4~5년 전만 해도 그는 재첩을 잡아 연매출 10억원은 거뜬히 올렸다.
강의 생태계는 급속하게 변했다. 이제 잉어는 화개장터 상류에나 가야 구경한다. 강에서는 감성돔과 도다리, 고등어가 올라온다. 개체수도 적고 씨알도 잘아 그나마 상품성이 없다. 강바닥은 불가사리, 강물 위는 해파리가 점령해간다. 올해에는 생전 처음 적조가 덮쳤다.
주 수입원이던 재첩 어획량도 급감했다. 12월13일 돈탁마을에서 배를 타고 바닥에서 긁어 올린 재첩 분류작업을 하던 동네 아낙은 폐사해 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재첩 무더기를 보여주면서 "이걸 어디 가서 보상받을 방법이 없겠느냐"라고 하소연했다. 이 마을 건너편 경상도 땅인 하동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999년에는 재첩을 잡아 19억2000만원 소득을 올렸으나 올해는 겨우 4억3200만원을 벌었을 뿐이다. 하동군 특산품이던 은어·황어도 자취를 감추었다. 섬진강 양쪽 광양군과 하동군 사이 강물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부표가 떠 있는데 예전에는 재첩을 조금이라도 더 캐려고 밤에 몰래 부표를 상대쪽으로 밀어놓곤 했다. 그러나 재첩이 줄어들자 요즘에는 부표에 신경을 쓰는 이조차 없다.
바닷물에 3년마다 한 마을씩 함락
돈탁마을 한 주민의 표현에 따르면 "바닷물은 3년마다 한 마을씩 공략해 함락시킨다". 섬진강을 따라서 자연부락이 1km마다 형성돼 있는데 하류부터 중마동, 망덕, 오추, 사평, 돈탁, 중도, 다압이 차례로 바닷물 벼락을 맞았다. 이에 따라 기수역을 좋아하는 재첩 산지도 계속 상류로 이동했다. 현재 바닷물은 섬진강 전체 길이의 10분의 1가량인 25km까지 쳐들어온 상태이다. 다압에서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로 유명한 화개장터까지는 고작 4km이므로 조만간 화개장터에서 감성돔 횟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섬진강으로 쳐들어온 바닷물은 지하로 스며들어 갑자기 농민의 뒤통수를 쳤다. 섬진강변에는 하우스 농가가 많은데 과거에는 200평 기준 시설 원가가 32만원 정도였으나 요즘은 86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나마도 과거에는 한 번 투자하면 10년은 쓸 수 있었으나 이제는 3년밖에 쓰지 못한다. 파이프가 염분 때문에 금세 녹슬기 때문이다. 관정을 파는 비용이 뛴 게 시설비가 오른 원인이다. 예전에는 10~20m만 파도 민물이 콸콸 쏟아졌지만 지금은 100~200m를 파야 간신히 농사지을 만한 물이 나온다. 논농사·밭농사 비용도 200평 기준 35만원에서 120만원으로 뛰어올랐다. 염해를 입은 섬진강 유역에 목매달고 사는 농어민이 5만여 명인데 그들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당하는 처지이다. 섬진강에는 265개나 되는 지류가 실핏줄처럼 뻗어 있어 1309.7㎢에 이르는 강 유역으로 점차 피해가 번질 염려도 있다.
초당대학교 조기안 교수에 따르면 섬진강에 바닷물이 유입되는 원인은 두 가지이다. 강 하류와 광양만에서의 대량 준설 및 골재 채취로 인한 수심 저하, 그리고 과도한 매립으로 인한 조수위의 상승이 첫 번째 이유다. 광양제철소 측이 부지 조성을 위해 970만t, 광양시와 하동군이 합쳐서 2580만t 등, 그동안 3550만t의 골재를 섬진강 하류와 광양만에서 채취했다.
섬진강이 염해를 입는 두 번째 이유는 중상류에서의 취수량 증가이다. 영산강이 수질 관리에 실패해 5급수로 전락한 이후 섬진강 댐에서 영산강 유역 식수를 댄다. 게다가 중류 수어댐은 하루에 공업용수 25만t을 광양제철소와 여천공단 등에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하류로는 물을 방출할 여력이 없다. 상류와 하류에서의 협공으로 섬진강은 몸살을 앓는다.
문제는 상황이 더욱 나빠지리라는 점이다. 공단 증설로 매립지가 불어나고 공업용수 수요도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전세계의 강이 대부분 갈수 현상에 시달리는 판이다. 12월16일에는 곡성군에서 섬진강 유역 지자체장이 모여 섬진강환경행정협의회 정기총회를 열었으나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영산강유역 환경청장이 "좀더 근본적이고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라고 되뇌었을 뿐이다.
대운하에 섬진강의 경험을 대입해보면 어떨까. 큰 배가 드나드는 항로를 준설하면 낙동강 하구 기수역은 초토화할 것이다. 을숙도 갈대밭과 철새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컨테이너선이 드나들 수 있도록 수심 25m 정도로 수백km를 준설한다면 바닷물은 과연 어느 정도나 치고 올라갈까. 광대한 면적의 강 유역 지하수가 바닷물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한강이나 영산강, 금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모든 강의 생태계가 뒤집힐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 물 부족 시대에 식수와 농·공업용수를 다 충당하고도 그 깊은 수로에 댈 만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재앙은 이런 정도의 빈약한 상상을 훨씬 뛰어넘으리라는 것이다.
광양·문정우 대기자 /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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